지난 2005년 11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이 개봉했다. 최고의 희극배우 짐 캐리의 연기변신이 돋보였던 <이터널 선샤인>은 짐 캐리 외에도 <타이타닉>의 케이트 윈슬렛, <스파이더맨>의 커스틴 던스트 등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터널 선샤인>은 리얼리즘이 떨어진다는 비판 속에서 전국 17만 관객으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이터널 선샤인>은 영화 팬들 사이에서 명작으로 불리며 꾸준히 입소문을 탔고 개봉 10주년이 된 2015년 11월 국내에서 재개봉됐다. 10년 만에 다시 관객들을 만난 <이터널 선샤인>은 37만 관객을 동원하며 <타이타닉>이 가지고 있던 역대 재개봉 영화 흥행 기록을 경신했다. <타이타닉>에 출연했던 케이트 윈슬렛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로 한국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개봉 영화 흥행기록을 갈아치운 셈이다.

이처럼 정식 개봉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영화도 시간이 흐른 후 여러 이유로 영화 팬들 사이에서 재조명되곤 한다. 2004년에 개봉해 전국 78만 관객에 머물렀던 이 영화 역시 개봉 당시 신예였던 두 주연배우들이 훗날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로 성장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바로 레이첼 맥아담스와 라이언 고슬링의 초기작이었던 아름다운 멜로영화 <노트북>이다.
 
 세계적으로 1억1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노트북>은 국내에서도 두 번에 걸쳐 재개봉했다.

세계적으로 1억1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노트북>은 국내에서도 두 번에 걸쳐 재개봉했다. ⓒ (주)퍼스트런

 
악녀로 출발해 '로맨스 퀸'으로 성장

귀여운 외모와 아름다운 미소로 유명한 배우 맥아담스는 고등학교 때까지 피겨스케이트 선수로 활약하다가 대학시절부터 연극무대에 오르며 배우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던 2002년 맥아담스는 코미디 영화 <핫칙>에 출연해 심술꾸러기에 공주병을 가진 도도녀였다가 좀도둑과 몸이 바뀌는 제시카를 연기하며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분량은 크지 않았지만 맥아담스라는 신예의 등장을 세상에 알리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맥아담스는 2004년 <핫칙>의 이미지를 이어가는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에서 노스쇼어 고등학교의 도도한 퀸카 레지나 조지를 연기했다. 아프리카에서 성장한 순진한 소녀 케이디(린제이 로한 분)를 괴롭히는 악녀 역할로 맥아담스는 악녀 전문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맥아담스는 불과 두 달 후에 개봉한 영화 <노트북>으로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노트북>에서 가난하지만 적극적이고 건강한 청년 노아(라이언 고슬링 분)와 사랑에 빠지는 순수한 소녀 앨리를 연기한 맥아담스는 특유의 사랑스런 연기로 많은 관객들을 설레게 했다. 29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노트북>은 세계적으로 1억1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확실한 대표작이 없었던 두 신예배우 맥아담스와 고슬링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맥아담스는 <노트북> 이후 <시간 여행자의 아내>, <굿모닝 에브리원> 같은 로맨스 영화는 물론이고 <셜록홈즈> 시리즈처럼 액션과 코미디가 포함된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래도 역시 맥아담스는 <미드나잇 인 파리>와 <서약>, <어바웃타임>처럼 애틋한 스토리와 따뜻한 감성이 담긴 멜로 영화에 출연해 사랑스런 미소를 지었을 때 관객들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

2015년 <스포트라이트>에서 샤샤 파이퍼를 연기하며 데뷔 후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맥아담스는 2016년 마블 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의 여자친구 크리스틴 팔머를 연기했다. 2018년 코미디 영화 <게임나이트>와 2020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파이어 사가 스토리>에 출연한 맥아담스는 오는 5월 개봉 예정인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도 크리스틴 팔머를 연기할 예정이다.

관객들의 애간장 태웠던 빗속 키스신
 
 <노트북>의 두 주역 레이첼 맥아담스(왼쪽)와 라이언 고슬링은 영화 개봉 후 실제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노트북>의 두 주역 레이첼 맥아담스(왼쪽)와 라이언 고슬링은 영화 개봉 후 실제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 (주)퍼스트런

 
<노트북>은 레이첼 맥아담스에게도 실질적인 첫 주연작이었지만 라이언 고슬링에게도 관객들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받았던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노트북> 이후 2살 연상의 맥아담스와 실제 연인사이로 발전했던 고슬링은 2016년 <라라랜드>의 세바스찬 역을 통해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도 <라라랜드> 세바스찬의 '리즈시절'을 보기 위해 <노트북>을 다시 찾아본 영화팬들이 적지 않았다.

<노트북>은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원작소설은 무려 56주 동안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르며 큰 사랑을 받았다. 영화사에서도 책이 정식으로 출판되기 전에 영화 판권을 먼저 구입했을 정도로 원작에 대한 신뢰가 컸다. 소설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앨리와 노아의 이야기는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장인, 장모가 겪은 실제 이야기로 알려지면서 더욱 주목 받았다. 

<노트북>의 원작자인 니콜라스 스파크스 작가는 노트르담 대학교에서 금융학을 전공한 이과생이었음에도 전공과 무관한 로맨스 소설 전문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스파크스 작가의 작품은 <노트북> 외에도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병 속에 담긴 편지>와 리처드 기어가 출연한 <나이트 인 로댄스>,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채닝 테이텀 주연의 <디어 존> 등 많은 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노트북>에서는 심금을 울리는 여러 명장면과 명대사가 있지만 역시 관객들을 가장 설레게 했던 장면은 빗속에서 앨리와 노아가 나누는 키스신이었다. 왜 뉴욕으로 떠난 자신에게 편지조차 쓰지 않았냐며 원망하는 앨리와 1년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매일 썼다고 고백하는 노아가 사랑을 확인하며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크게 화제가 됐다.

배우로 먼저 활동을 시작한 닉 카사베츠 감독은 1996년 <스타를 벗겨라>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고 1997년 <더 홀>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주목 받았다. 2004년 <노트북>을 히트시킨 카사베츠 감독은 2006년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브루스 윌리스, 샤론 스톤 등이 출연한 <알파 독>을 만들었다. 카사베츠 감독은 현재까지도 배우와 감독을 병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엑스맨> 사이클롭스, 앨리의 약혼자가 되다
 
 <엑스맨>의 사이클롭스로 유명한 제임스 마스던은 <노트북>에서 약혼녀에게 버림 받는 불쌍한 서브남주를 연기했다.

<엑스맨>의 사이클롭스로 유명한 제임스 마스던은 <노트북>에서 약혼녀에게 버림 받는 불쌍한 서브남주를 연기했다. ⓒ (주)퍼스트런

 
<노트북>에는 앨리와 노아의 젊은 시절 이야기와 함께 요양원이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한 노년남성으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듣는 할머니의 이름이 바로 '앨리'였다. 요양원의 앨리는 노아와 사랑에 빠졌던 그 시대의 아름다운 앨리가 아닐 뿐더러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다. <노트북>에서 노년의 앨리를 연기한 배우는 바로 카사베츠 감독의 어머니인 제나 로우렌즈다. 

1930년생의 노배우 로우렌즈는 1950년대부터 남편이자 닉 카사베츠 감독의 아버지인 고 존 카사베츠 감독 영화에 단골로 출연했다. 골든글러브와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시절을 보낸 로우랜즈는 1996년 닉 카사베츠의 감독 데뷔작 <스타를 벗겨라>에 출연하면서 남편과 아들이 연출한 영화에 모두 출연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로우렌즈는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간호조무사로 전쟁터에 파견 온 앨리에게 데이트를 하자고 추파를 던진 부상병이 어딘가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노아가 앨리를 위한 집을 짓느라 정신이 없을 때 앨리의 새 남자친구가 된 론 하워드 주니어 역의 배우 제임스 마스던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 3편에 걸쳐 개봉한 <엑스맨> 오리지널 3부작에서 사이클롭스를 연기했던 배우다.

눈을 뜨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력한 열 광선이 나가는 사이클롭스는 평소에는 특수 제작된 안경을 쓰고 다닌다. <노트북>에서 노아에게 사랑하는 앨리를 빼앗기는 론을 연기한 마스던은 2006년에 개봉한 <슈퍼맨 리턴즈>에서도 클라크 켄트(브랜든 라우스 분)에게 아내인 로이스 레인(케이트 보스워스 분)을 빼앗기는 불쌍한 서브 남주 리차드 화이트 역을 맡았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노트북 닉 카사베츠 감독 레이첼 맥아담스 라이언 고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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