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종합선물세트. 국립무용단의 명절기획시리즈로 1월29, 30일, 2월1, 2일 이번 설 연휴에 공연하는 <새날>은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연 종합선물세트이다. 연출 의도대로 편하게 즐기며 좋은 기운을 받아 갈 수 있는 공연이고 가족이나 연인 등 친밀한 사람이 함께 보면 즐거움이 배가될 법한 공연이다.

'태'(안무 박재순), '액막이'(공동안무 손인영·김미애), '보듬(鼓)고'(안무·출연 박재순), '당당'(안무 송지영), '진쇠춤'(안무 조흥동), '평채소고춤'(안무 정관영), '한량'(안무 황용천), '윷치기놀이'(공동안무 손인영·정길만)의 8개 작품으로 1시간 반가량 공연이 진행된다. 전통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연은, 강약과 완급이 조화하며 흘러가다가 서서히 흥이 고조돼 대미에 최고조에 이르도록 연출됐다. 명절에 올리는 공연이란 시의성과, 대중성을 적극적으로 배려한 흐름이 국립극장 내 하늘극장의 원형객석과 잘 호응하였다.
 
보듬고    국립무용단의 2022년 설 공연 <새날>의 '보듬고'

▲ 보듬고 국립무용단의 2022년 설 공연 <새날>의 '보듬고' ⓒ 국립무용단

 
세시풍속의 하나로 입춘 무렵에 한옥 대문에 '건양다경(建陽多慶)' 같은 글자를 써 붙인 걸 입춘방이라 하는데, 이 공연에서 입춘방 같은 역할을 한 작품이 '태'이다. 작품을 배치할 땐 '태' 대신 '액막이'를 앞세우는 방법이 있었을 법하다. 설 공연을 '액막이'로 시작해 윷놀이로 함께 어울리며 끝나는 구성이 가능했겠지만, 아무래도 무대에 오른 건 '액막이' 굿이 아니라 춤이다 보니 입춘방 같은 구실을 하기엔 미흡하다.

'액막이'는 개인이나 가정에 닥치는 질병·고난·불행 등의 액·액운을 미리 막기 위하여 행하는 민속의례로 소소한 세시풍속이 있는가 하면, 굿으로 구현되기도 한다. 무당 복색 무용수의 독무와 군무를 섞어서 표현한 '액막이'는 액막이굿을 연상시키면서도 사위를 절제해 전체적으로 굿과는 차별되는 확고한 무용 작품으로 예술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언제가는 조금 더 굿에 다가가 차별 대신 종합으로 고양하는 안무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기대한다.
 
액막이     국립무용단의 2022년 설 공연 <새날>의 '액막이'

▲ 액막이 국립무용단의 2022년 설 공연 <새날>의 '액막이' ⓒ 국립무용단

 
타악 군무 '태'는 '건양다경(建陽多慶)' 중에서 '건양(建陽)'을 분명히 하며 그 기세를 드높였다. 배경의 해나 호랑이는 상투적이긴 하지만, 또한 대중공연에 감초같이 꼭 필요한 설정인 셈이다. 타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춤이다. 남녀 무용수가 역할을 분담하며 각각 크고 작은 북으로 소리를 다루고 몸도 다루며 무대를 화려하게 꾸몄다. 무엇보다 소리가 관객의 마음을 공연 시작과 함께 확 끌어당긴 듯하다. 당연히 소리에 부응한 동작이 따라붙어서 흥을 더 돋구었다.

'태'에서는 무대 위 말고 무대 양쪽의 작은 무대와 배경이 되는 스크린 뒤에 고수를 배치하여 입체성을 구현했다. 전체적으로 북으로 중심을 잡고, 주변에 사소한 액세서리를 가미하여 총체적인 효과를 극대화하였는데, 그중 내 눈길을 끈 것은 별다른 동작 없이 차분히 앉아 다듬이질하는 원숙한 느낌의 무용수와 그가 내는 다듬이질 소리였다.

'건양(建陽)'은 해가 솟아오르는 것이지만, 해뜨기 전의 밤을 지새워야 하는 어떤 이들에겐 불면(不眠)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그 무엇이다. 그건 다듬이질과 비슷하다. 다림질처럼 쉽게 끝낼 수 없고, 세게 때린다고 빨리 끝나는 것이 아닌, 그 일을 하다 보면 몰입이 일어나는, 화려하지 않고 누가 평가해주는 일이 아니지만 중국 소설가 뤼신(魯迅)의 활인(活人)과 흡사한 무엇. 표시 나지 않게 구석에 배치한 다듬이야말로 '태'에서 눈여겨볼 장치이다.
 
평채소고춤      국립무용단의 2022년 설 공연 <새날>의 '평채소고춤'

▲ 평채소고춤 국립무용단의 2022년 설 공연 <새날>의 '평채소고춤' ⓒ 국립무용단

 
이렇게 '태'로 시작한 <새날>은 후반부에서 '평채소고춤'으로 익숙한 춤사위와 경쾌한 소고의 리듬을 내세워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도포를 입고 부채를 든 선비 복장의 무용수들이 유장한 동작을 선보인 '한량'에 이어 <새날>의 대미인 '윷치기놀이'가 펼쳐진다.

윷놀이라는 세시풍속을 무용예술의 형식으로 현대적으로 해석해낸 '윷치기놀이'는 그러나 그러한 현대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이어온 전통극의 느낌을 들게 한다. 우리 전통춤의 연원인 공동체성이 국립극장에 마련된 난장에서 신명 나게 풀어 헤쳐진 분위기이다. 무대를 난장처럼 사용하면서도 짜임새가 있었고, 무대를 장악하며 동시에 관객을 흡입해내는 힘을 보여주었다.

'태'가 '건양다경(建陽多慶)' 중에서 '건양(建陽)'이라면, '윷치기놀이'는 '건양다경(建陽多慶)' 중에서 '다경(多慶)'에 해당한다고 하여도 좋겠다. 흥이 넘치는 다경이다. '윷치기놀이'에서 아쉬운 점은 관객과 소통하는 역할을 맡은 무용수가 마이크 없이 발언하다 보니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듣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정도.

국립무용단 손인영 예술감독은 "올해는 명절의 흥을 돋을 수 있는 작품들과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우리 전통춤에 기반한 작품들로 꾸몄다"며 "마스크를 쓰고 연습하는 가운데 서로 조심하며 살얼음판을 무사히 건너온 단원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무용수들의 땀으로 일군 신명과 흥을 보며, 마스크를 쓴 채로 공연을 준비한 그들의 노고를 생각하게 되는 게 아직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기 전이기에 너무 당연한 일이지 싶다. 
 
윷치기놀이      국립무용단의 2022년 설 공연 <새날>의 '윷치기놀이'

▲ 윷치기놀이 국립무용단의 2022년 설 공연 <새날>의 '윷치기놀이' ⓒ 국립무용단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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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춤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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