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세상의 기원>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세상의 기원> 포스터. ⓒ 넷플릭스

 
아내 발레리와 섹스 후 불 끄고 하는 것도 지겹다느니 왜 오르가슴을 연기하냐느니 불만을 표출하는 남편 장루이,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선 나가 피아노를 치더니 밖으로 나가 버린다. 오밤중에 산책을 하다가 낯선 이와 섹스를 하는데,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 다음 날 친한 친구 미셸과 점심을 먹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심장이 뛰질 않는다. 사무실로 돌아와 팔굽혀펴기를 해 봐도 심장은 뛰지 않는다. 수의사로 일하는 미셸에게 전화해 와 줄 것을 부탁한다. 미셸의 진단도 똑같다. 

심장이 뛰질 않으니 병원에 가야겠지만, 심장이 뛰지 않는 데도 버젓이 살아 있으니 병원에 가면 우선 제세동기로 심장에 충격을 주곤 삽관을 하고 산소 호흡기를 달아 줄 것이었다. 그는 의학적 개념으로 죽은 것이기에 그를 소생시키고자 의학적 혼수상태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티격태격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나타난 발레리, 그녀는 장루이를 데리고 영적 스승이자 인생 코치 마고를 찾아간다.

마고는 이내 장루이의 문제점과 어린시절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꿰뚫어 보며 놀라움을 선사한 뒤 충격적인 숙제를 내 준다. 그녀는 장루이의 문제를 풀기 위해선 어머니의 근원이자 장루이가 태어난 '그곳'을 봐야 한다는 것. 어머니를 데리고 오거나 사진을 찍어 오라고 한다.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마고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장루이는 지난 몇 년간 얼굴을 본 적도 없고 전화 통화조차 한 적이 없는 어머니를 찾아가야 한다.

명화 <세상의 기원>-영화 <세상의 기원>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엔 <세상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한 편 있다.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로 유명한 귀스타브 쿠르베의 작품으로, 후원자이기도 한 터키의 전직 외교관 카릴 베이의 의뢰로 그렸다고 한다. 지금은 물론 19세기 중반인 당시엔 파격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머리는 시트로 가린 채 가슴과 유두, 복부와 벌린 다리, 생식기, 음모까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세상의 기원>은 제목과 소재까지 모두 쿠르베의 명화에서 따온 듯 싶다. 제목은 'L'origine du monde'로 똑같고, 소재도 '여성의 생식기'로 동일하다. 다만, 다른(다를 것으로 생각되는) 게 있다면 의도가 아닌가 싶다. 쿠르베가 이처럼 누드화를 사실적으로 그린 건 아카데믹한 누드화를 그리는 제도권 미술에 대한 반감때문이었다.

반면, 영화 <세상의 기원>의 경우 중년의 위기에 직면한 장루이의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면 그의 기원이자 태초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중년의 위기, 문제적 심리

40대에 접어든 장루이 몸에 믿기 힘든 이상 증상이 생겼으니 '중년의 위기'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으나, 장루이의 불우한 어린시절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어머니와 영화 중후반 미셸이 '난 실패하지 않았다'며 과격하면서도 특이한 행동을 하는데서 유추해볼 수 있듯 심리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변호사로 중상류층의 삶을 영위하며 더 이상 이룰 것도 없고 이루고 싶은 것도 없어진 이(장루이)의 유턴 심리가 작용한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이 점이 이 작품을 대할 때 난처한 점인데, 물론 중년의 위기라는 게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쌓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폭발해서 일어난다고는 하지만 내가 영화에서 보고 싶었던 건 중년의 위기 이후의 보다 실질적인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은유와 상징만 풍부하게 담았을 뿐. 

물론 프랑스식 블랙 코미디의 정수를 접한 것 같아서 나름 의미는 있었다. 그러나 짧은 러닝타임에 살을 더 붙여 보다 풍부하게 장식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식 블랙 코미디의 호불호

아무리 청소년 관람 불가 작품이라고 하지만, 성인도 감히 가늠하기 힘든 난감한 성 유머와 인종·성별을 넘나드는 풍자 그리고 문화적 차이가 자못 불편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꽤 오랜 시간 나오는 성기 노출은 두 눈을 의심케 할 정도였다. 너무 과감히 드러내 보이니까 역설적으로 오히려 외설적이지 않아 보였을 정도다.  

그럼에도 영화는 2020년 칸 영화제 공식 초청작 중 하나로 꼽혔다. 또한 프랑스의 대표 영상 작품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알로시네'에서 5점 만점에 3점을 획득해, 적어도 프랑스 자국에선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프랑스식 코미디와 코드가 맞다면 한번쯤 보시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세상의 기원 프랑스 영화 블랙 코미디 여성 생식기 중년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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