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이해영, 이해준 감독이 공동 연출한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가 개봉했다. 류덕환과 김윤석, 문세윤, 고 이언 등이 출연한 <천하장사 마돈나>는 전국 70만 관객에 살짝 미치지 못하며 흥행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이해영, 이해준 감독은 <천하장사 마돈나>를 통해 3개 영화제의 신인 감독상을 휩쓸었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통해 참신한 신인 감독의 등장을 알린 이해영, 이해준 감독은 <천하장사 마돈나>를 끝으로 독립해 각자의 작품을 준비했다. 2010년 이해영 감독이 선보인 첫 번째 단독 연출 영화는 신하균과 엄지원, 심혜진, 성동일, 류승범, 백진희 ,오달수, 문세윤 등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독특한 코믹멜로물 <페스티발>이었다(하지만 <페스티발>도 전국20만 관객으로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해준 감독은 이해영 감독보다 한 해 먼저 단독연출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였지만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평가 속에 전국 70만 관객에 그치며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해준 감독의 단독연출 데뷔작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문제를 고찰하고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좋은 작품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서울의 무인도에 사는 정재영과 은둔형 외톨이 정려원이 묘한 연기케미를 보여주는 영화 <김씨표류기>였다.
 
 <김씨표류기>포스터.  '살다 보면 한 번쯤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순간이 있다'는 해외포스터의 카피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김씨표류기>포스터. '살다 보면 한 번쯤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순간이 있다'는 해외포스터의 카피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 시네마서비스

 
연기자로 변신한 샤크라 출신 배우 정려원

최근엔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그룹 활동 도중 연기활동을 병행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돌그룹 멤버의 연기활동 병행은 드물었다. 실제로 핑클의 성유리나 S.E.S의 유진, 밀크의 서현진 등은 팀이 해체되거나 활동이 끝난 후에 본격적으로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슈가의 황정음은 배우전향을 위해 팀을 탈퇴했다. 배우 정려원 역시 룰라의 이상민이 제작했던 전설의 걸그룹 샤크라 출신이다.

샤크라의 서브보컬로 활동하다가 2004년 연기자 전향을 위해 팀에서 탈퇴한 정려원은 2005년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500년을 산 뱀파이어 엘리자베스 역을 맡으며 배우로서 가능성을 보였다. 그리고 같은 해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현진헌(현빈 분)의 첫사랑 유희진을 연기하며 걸그룹 출신이라는 딱지를 떼는데 성공했다. 2007년에는 봉태규와 함께 영화 <두 얼굴의 여친>에 출연해 다중인격을 연기했다.

정려원은 2009년 이해준 감독의 <김씨표류기>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은둔형 외톨이 여자 김씨를 연기했다. <김씨표류기>는 전국73만 관객에 그치며 흥행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정려원은 한강 밤섬에서 홀로 살아가는 남자 김씨(정재영 분)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정려원은 2010년대 들어 <적과의 동침>과 <통증>, <네버엔딩 스토리>가 연속으로 흥행실패하며 슬럼프에 빠졌다.

영화에서 차례로 아쉬움을 남겼던 정려원은 드라마를 통해 한(?)을 풀었다. 2012년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천하그룹의 외손녀 백여치를 연기한 정려원은 국내 지상파 드라마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욕쟁이 20대 여성'을 연기, 시청자들에게 묘한 쾌감을 선사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7년 <마녀의 법정>에서는 검사에서 변호사로 변신하는 마이듬 역으로 '인생캐릭터'를 경신하며 그 해 KBS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정려원은 2018년 2월에 개봉한 영화 <게이트>가 전국 10만 관객으로 흥행실패하며 주춤했지만 장혁과 함께 드라마 <기름진 멜로>에 출연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2019년에는 이선균과 JTBC의 <검사내전>에 출연했는데 2년 만에 다시 맡은 검사 역할이었지만 정려원은 깔끔한 연기를 선보이며 우려의 시선을 날렸다(물론 <검사내전>은 <낭만닥터 김사부2>라는 강적을 만나 시청률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세상 가장 외롭던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소통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와의 '소통'을 통해 조금씩 바깥 세상과 가까워진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와의 '소통'을 통해 조금씩 바깥 세상과 가까워진다. ⓒ 시네마서비스

 
이해준 감독은 <천하장사 마돈나>로 데뷔하기 전부터 <신라의 달밤>과 <품행제로>,<아라한 장풍대작전>,<남극일기> 등의 각본 및 각색 작업에 참여했다. 감독 데뷔 후에도 2014년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 각색에 참여했다. 본인이 연출한 영화들은 모두 직접 각본을 쓰는 감독이기도 하다. 이처럼 충무로에서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을 인정 받은 이해준 감독은 단독연출 데뷔작 <김씨표류기>의 시나리오 역시 직접 썼다.

하지만 <김씨표류기>는 2009년 개봉 당시 손익분기점에 한참 미치지 못하며 관객들과의 교감에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극장가의 비수기인 5월 중순에 개봉했고 박찬욱 감독의 <박쥐>, 할리우드 대작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와 맞붙는 등 대진운도 썩 좋지 못했다.

50억 원의 적지 않은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김씨표류기>는 많은 제작비가 항상 흥행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작품이다. <김씨표류기>는 벌레 한 마리도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한 장면이 있을 정도로 정성을 들여 만들었지만 당시 이런 부분들은 관객들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김씨표류기>는 외로움과 소통에 관한 영화다. 본의 아니게 한강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남자 김씨와 자발적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된 여자 김씨는 겉으론 내색하지 않지만 사람과의 소통에 목 말라 있다. 남자 김씨가 여자 김씨의 짧은 '댓글'에 격하게 반응한 것은 그만큼 사람과 나누는 소통이 그리웠다는 뜻이다. 영화 말미에 두 사람이 '목소리'를 통해 나누는 별 거 아닌 통성명 장면이 더욱 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남자 김씨의 짜장면 먹방은 여러 의미에서 <김씨표류기>의 최고 명장면이다. 남자 김씨는 여자 김씨가 배달을 시켜준 짜장면을 고사하고 직접 기른 옥수수와 작물, 우연히 구한 짜장라면 수프로 직접 짜장면을 만든다. 남자 김씨의 짜장면은 모든 것을 잃었던 사람이 희망을 되찾고 홀로 개척한 땀과 노력의 결실로 관객들에게 뜻밖의 감동을 선사했다.

'대세스타' 구교환이 <김씨표류기>에 나온다고?
 
 <김씨표류기>에는 시크한 사회복무요원으로 등장하는 대세스타 구교환(왼쪽)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김씨표류기>에는 시크한 사회복무요원으로 등장하는 대세스타 구교환(왼쪽)의 모습도 볼 수 있다. ⓒ 시네마서비스

1년 후에 개봉한 이해영 감독의 <페스티발>이 최소 4명, 최대 8명의 주인공이 출연하는 영화라면 이해준 감독의 <김씨표류기>는 두 주인공 정재영과 정려원이 이야기 진행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영화다. 따라서 두 주인공과 대사 없이 지나가는 단역들을 제외하고 제대로 대사가 있는 출연진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두 주인공을 만났던 캐릭터는 바로 철가방 역의 박영서였다.

철가방은 여자 김씨의 주문으로 남자 김씨가 있는 한강 밤섬으로 짜장면을 배달하지만 남자 김씨는 자신의 힘으로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 여자 김씨가 보내준 짜장면을 돌려 보낸다. 오리배를 타고 힘들게 한강을 오가는 철가방 역의 박영서는 <공공의 적 1-1: 강철중>과 <과속스캔들>,<써니>,<고지전> 등에 출연한 배우로 이해준 감독과는 <천하장사 마돈나>부터 <김씨표류기>,<나의 독재자>까지 함께 했다.

힘들게 농사를 지어 감격스러운 짜장면 먹방까지 했지만 남자 김씨가 힘들게 일군 밭은 폭우에 의해 하루 아침에 풍비박산이 난다. 그리고 망연자실한 남자 김씨는 다음날 한강 정화작업을 나온 사회복무요원과 해병대 전우회에 의해 밤섬에서 허무하게 쫓겨난다. 이 때 남자 김씨에게 퉁명스럽게 나가라고 이야기하는 사회복무요원이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 중 한 명이 된 구교환이다.

독립영화에서 주로 활동하던 구교환은 2020년과 작년 영화 <반도>와 <모가디슈>, 넷플릭스 드라마 < D.P. > 등 소위 '구교환 밀리터리 3부작'을 통해 단숨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배우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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