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축구계에 모처럼 희소식이 들려왔다. K리그가 2021년 아시아 클럽축구 리그 랭킹에서 아시아 전체 2위, 동아시아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지난 12월 14일 발표된 AFC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평점 95.462점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아시아 클럽축구리그 랭킹 2위에 올랐다. 일본 J리그는 93.412점을 받아 한국에 뒤져 3위 (동아시아 2위) 작년 아시아 전체 1위였던 중국의 슈퍼리그는 한참을 추락하여 7위에 그쳤다. 아시아 축구 클럽 랭킹은 최근 4년간 ACL과 하부 클럽 대항전인 AFC컵 등 AFC 주관 클럽 대회에 참가한 팀들의 성적을 점수로 환산해 국가별로 매기는 순위다. 순위에 따라 국가 별 ACL 본선 진출 팀을 차등 적용한다. 동서 아시아 각 1, 2위 4개 국가에 3+1 (본선 직행3팀, 플레이 오프 1팀) 티켓을 배정하는 룰이 적용된다. 우리나라는 동아시아 2위 일본과 함께 2023년 대회부터 3+1장의 티켓을 배정받을 전망이다. 중국은 2+2장이 배정된다. 한국 K리그의 위상이 이웃 일본과 중국에 비해 높은 위치에 있게 된 것이다.
 
1983년 출범한 K리그는 1부 12개 팀, 2부 10개 팀 등 총 22개 팀으로 구성되며, 기업구단 10개, 시민구단 11개로 시민구단이 더 많다. K리그는 예산 면에서 풍족한 리그는 아니다.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시민구단은 물론이고, 기업구단들도 모기업의 투자는 전북과 울산을 제외하고는 운영 예산도 적고 그나마 몇 년 째 정체되고 있다. K리그의 구단 운영예산의 빡빡함은 리그 출범 이후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데, 예산의 견실함이 이제는 어느 정도 내구성을 갖추어 구단 운영의 내실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속없는 거품형보다는 견실한 운영을 지향하는 K리그는 임금 체불이 없는 리그로 알려져 있다. 제때 임금 지불하는 것이 당연한 일 같지만, 의외로 세계적으로 적지 않은 리그들이 고질적인 임금 체불로 선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남미나 동유럽 쪽 구단들의 사정이 좋지 않다. 이렇듯 K리그의 알뜰하지만, 임금 체불 없는 점이 해외 유망주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K리그는 좋든 싫든 항상 일본 J리그와 중국의 슈퍼리그에 비교된다. 중국이나 일본의 구단들이 엄청난 연봉을 제시하여 유명세 높은 선수를 끌어 들여 팀의 간판선수는 물론, 자국 대표도 귀화선수로 충원하는 등 특단적 정책을 펼쳐 한때 성적이나 관중 동원 측면에서 재미를 보았다. 그러나 최근 중국 슈퍼리그 클럽들이 잇달아 파산하고 있다. 그 여파로 히카르두 굴라르, 알랑 카르발류와 엘케손 등 간판급 귀화 선수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버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사정은 좀 다르지만, 일본 역시 국가대표 보강 차원에서 추진했던 해외 자원의 귀화로 그다지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90년대 활약했던 라모스, 2002년 월드컵에 참가한 알렉스 등 몇몇 선수 외에 귀화 선수로서 대표팀에서 제대로 활약한 선수가 없다. 최근의 동향으로 볼 때 중국의 초 엘리트 영입 정책은 자국민들도 비판할 정도로 철저히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K리그는 남미와 동유럽에서 비교적 저 평가된 유망주들을 발굴하여 쏠쏠한 효과를 보고 있다. 그런 면에서 K리그의 저비용 고효율 정책은 탁월한 것으로 평가된다.
 
K리그에서 활약한 외국인 선수들이 능력을 검증받아 중국, 일본 등으로 거액을 받고 재이적하는 사례는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고 있다. 경남 FC의 말컹, 전북 현대의 레오나르도, 로페즈, 수원 삼성의 조나탄 등 많은 선수들이 K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중국으로 이적하면서 거액의 이적료를 구단에 남겨주었다. 그들 또한 높은 연봉을 제시받고 이적하며 선수와 구단 모두 Win-Win 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었다. 동유럽과 남미 축구시장에서 K리그는 선수들과 그들의 에이전트들에게 성공을 향한 발판으로 인식되었고, 그에 따라 K리그 진출을 희망하는 동유럽과 브라질 등 남미 선수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K리그가 외국인선수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비단 금전적 요인만이 아니다. 분단국가라는 이유로 외부에서 막연하게 느끼던 불안감과는 달리 정치적으로 대단히 안정되어 있음을 살아가면서 깨닫고 있다고 한다. 특히 치안과 교육적 환경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같은 부분은 자녀 양육 등 가정생활을 유지하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것이다. 한국에서 오래 선수 생활을 했거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은 한결같이 한국 축구팀 내부의 우호적인 환경을 이야기한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겪는 배타적 분위기를 한국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질적인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포용할 줄 아는 개방적인 한국의 국민성 영향일 수도 있다. 낯선 타국에서 외로운 생활을 해야 하는 선수들에게 이같이 편견없이 우호적인 팀 내 분위기는 대단히 고마운 일이다. 이것이 어쩌면 돈보다도 더 소중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K리그에서 성공한 선수 중에는 본국 리그에서 적응하지 못하거나, 그저 그런 선수 생활을 했던 사람이 많다. 전북 현대의 쿠니모토 다카히로, 대전 하나시티즌의 마사(이시다 마사토시) 부산 아이파크의 안병준이 바로 그런 선수들이다.

전북 현대 소속 쿠니모토 (본명 쿠니모토 다카히로, 17번 MF 미드필더)는 후쿠오카현 키타큐슈 지역의 축구 영재 출신이다. 쿠니모토는 지역 유소년축구팀에서 축구를 하다가 사이타마현의 축구 명문 오오하라 중학교로 전학, 2013년 우라와 레즈 유스 팀의 스카우트를 받고 입단했다. 2013년 10월 16일, 만 16세 나이로 천황배 3차전 몬테디오 야마가타전에서 후반 교체 출전하여 득점까지 기록하며 구단 최연소 출장 및 득점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렇게 잘나가던 쿠니모토는 2014년 9월 동네 양아치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고, 새로 영입된 선수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등 불량스러운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팀에서 방출 당했다. 2015년 1월, 고향 팀 아비스파 후쿠오카가 무적 상태의 쿠니모토를 영입했다. 후쿠오카의 팀 총괄부장 스즈키 겐지는 쿠니모토를 가리켜 "미래에는 확실하게 팀의 중심이 될 선수이고, 또 앞으로 일본 축구계를 위해서라도 절대로 축구를 그만두게 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평가했다. 그래서 부정적 여론 등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받아 들였다는 것이다. 후쿠오카 입단을 위해 구단이 내민 성실의무 조항이 포함된 계약서에 사인한 쿠니모토는 2015년 3월 21일 J3리그 2라운드 레노파 야마구치전에서 J리그에 데뷔하였다. 4월에는 1군으로 발탁되었고, 4월 26일 J2리그 FC 기후전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2015 시즌 종료 후 팀은 1부로 승격되었다. 2016년 5월 22일 J1리그 8라운드 가시와 레이솔전에서 J리그 데뷔골을 기록했다. 2016 시즌 리그, 컵 대회 포함 28경기 4골을 기록하며 1부 리그에 정착하는 듯했다. 그러나 2017년 5월 19일 또다시 팀을 이탈하여 친구들과 음주를 했다. 결국 쿠니모토는 계약 조항 위반으로 팀에서 방출 당했다. 쿠니모토는 이제 일본 내에서는 자기를 받아줄 팀이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팀을 잃고 방황하던 쿠니모토는 2018년 10월, 가방 하나를 둘러매고 아무도 모르게 현해탄을 건넜다. 쿠니모토는 어느 날 갑자기 경남 함안에 있는 경남FC 클럽하우스에 나타났다. 쿠니모토는 김종부 감독의 승낙을 얻어 2달 동안 식객으로 훈련에 합류했다. 이를 지켜보던 김종부 감독은 같은 해 쿠니모토를 소속 선수로 받아 들였다.

대전 하나시티즌 마사 (본명 이시다 마사토시 7번 MF 미드필더). 일본의 유명한 아이돌 SKE48의 이시다 안나가 동생이라는 소문도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시다 안나와는 성만 같은 뿐 일면식도 없다고 본인이 해명했다. 한국에서는 이름을 줄여서 마사라는 이름으로 선수 등록했다. 1995년생인 마사의 축구선수로서 시작은 비교적 괜찮았다. 나고야 그램퍼스 U15팀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축구 명문으로 유명한 치바현 후나바시시 후나바시 시립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일찍이 일본 u18 대표까지 선발되었던 마사는 고교 졸업 후 2014년 J리그 2부 팀인 교토 퍼플상가에 지명 받아 입단했다. 교토 퍼플상가는 박지성, 김남일 등이 뛰었던 팀이다. 입단 이후 마사는 긴장이 풀어졌는지 팀 내에서 자리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 마사는 약 6년 간 임대선수로 SC사가미하라, 더스파구싸스 군마, 아술 클라로 누마즈 등 J리그 3부와 2부 팀을 전전하게 된다. 마사는 본인의 축구선수로서의 인생을 이대로 마감할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반전의 계기를 찾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렸다. 국내 몇몇 중소 구단이 아시아 쿼터 확보를 위해 마사 측과 접촉했다. 마사는 2019년 K리그2의 안산 그리너스에 입단하였다.

부산 아이파크 안병준(9번 FW 포워드) 은 재일조선인 3세다. 도쿄 시내 조선 고급중학교를 거쳐 명문 주오대를 졸업했다. 안병준은 조선학교 진학 이후 비로소 북한 국적을 취득했다. 안병준은 현재 북한 국가대표선수이다. 1990년생인 안병준은 2011년 북한대표팀에 발탁되어 A매치에 데뷔했으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예선 등에 참가하였다. 대학 졸업 후 2013년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데뷔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 츠에겐 가나자와 등 하부리그 팀에서 임대 생활을 이어갔다. 2017시즌에 J2리그의 로아소 구마모토로 이적하여 7득점을 올렸고, 2018시즌에는 팀 내에서 2번째로 많은 10득점을 올렸다. 프로 데뷔 이후 가장 화려한 성적이다. 그러나 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 해 팀은 J3리그로 추락했다. 2부도 아닌 3부 리그는 안병준이라는 그릇이 몸을 담기에는 너무 작은 마당이었다. 안병준이 기나긴 방황을 끝내기 위해서는 좀 더 높은 위치의 팀과 보다 더 안정적인 환경이 절실했다. 새로운 팀을 찾던 안병준의 눈은 한국으로 향했다. 2018년 12월 안병준은 K리그2 수원FC로 이적했다. 안병준은 아시아 쿼터가 아닌 국내선수로 등록했다. 안병준은 북한국적이지만, 축구선수로서는 내국인으로 취급된다. 우리나라는 북한을 정식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 북한도 우리의 영토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안병준은 평소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일체하지 않는다. 팀 동료들도 안병준이 북한에 그다지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이것이 그의 진심인지,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현명한 처세술인지는 알 수 없다. 북한 국적 축구선수 안병준. 그가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고 한국에서 축구선수로 성공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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