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갔어, 버나뎃> 포스터

<어디갔어, 버나뎃>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당신은 왜 사나요?"라는 질문은 지겹다. 하지만 이 질문이 아직도 많은 작품의 주요 주제가 되고,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은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사는지 모른다. 왜 사는지 모른 채 하루를 맞이한다. 마주한 현실에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하나 둘 성취하며 살아간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한 후 취업이든 창업이든 뭐든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한다.

생계를 위하지 않고 현실과 동 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몽상가는 춥고 배고픈 삶을 견뎌야 한다. 가끔 그들의 인고의 열매가 현실의 벽을 넘어선 여유를 가진 자들이나 대중의 구미에 맞으면 돈이 된다. 그렇게 예술이 상품이 되면서 그전까지 몽상가였던 자들은 아주 현실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자가 된다. 이러한 현실을 답습한 사회초년생들은 현실과 이상이라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이상이라는 미합의된 현실을 택하기도 한다.

버나뎃은 성공한 건축가였다. 그녀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누구도 해보지 못한 건축물을 짓겠다는 열망이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도전.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건축가라기보다는 미적 예술성을 발휘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틀에 갇히지 않는 창작자.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믿었고, 열심히 공부했으며, 여러 시도 끝에 최연소 맥아더 상(건축계 천재에게 수여되는 상) 수상자라는 화려한 칭호를 얻게 된다. 부도 함께 따라왔다. 그리고 일생에서 가장 멋진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남편은 공학자다.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자신이 세운 회사를 매각한 부유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그 또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다만, 그가 아내와 달랐던 점은 '미적 예술성' 대신에 '공학적 지식'을 해결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추구하는 바는 같지만, 관점과 방식이 다른 둘은 사랑에 빠졌다. 공학자에게 성공한 예술가는 다른 차원의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갈등과 문제는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에서 발생한다. 버나뎃은 4번의 유산 끝에 심장이 덜 자란 채 태어난 딸 '비'를 만난다. 그녀는 비를 온 맘과 정성을 다해 보살핀다. 결혼 후 20년. 그녀는 건축가 또는 예술가가 아니라,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소화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다. 비가 무사히 자라고, 남편이 성장할 동안 버나뎃은 그 자리에만 머문다. 이 에너지 넘치는 창조자는 창작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혼란에 빠진다.

적응 장애, 사회 부적응자, 우울증 환자. 사회가 그녀를 대하는 방식이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원인을 알지 못한다. 남편은 그런 그녀를 치유하겠다며 정신과 의사를 부르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한다. 그녀를 사랑했던 이유가 고통의 원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위대한 예술가의 병은 일반 대중의 진단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해방이 필요했다. 몸 안에서 꿈틀대는 창작 욕구를 발산할 곳이 필요했다. 그런 그녀를 이해한 건 20년 전 그녀에게 찬사를 보냈던 동료 건축가였다. 그는 그녀의 문제점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둘이 만난 자리에서 버나뎃은 숨 가쁘게 자신이 머물고 있는 시애틀의 건축물이 후지고, 도시 계획이라고는 없다며 촉망받던 LA 출신의 유명한 건축가의 암울한 현실을 토로한다. 그리고 친구는 한마디로 그 상황을 정리한다.

"너는 창작이 필요해."

이후 영화 말미에 오프닝으로 나왔던 남극을 비춘다. 첫 장면에서 버나뎃은 남극해에서 홀로 카누를 타며 빙산을 보고 있고, 비의 음성으로 독백이 흐른다. '좋았던 감정은 곧 익숙해진다. 인간은 기존의 것에 익숙해져 새로운 위협에 민감해지기 위해서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위험 신호를 감지하느라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던 그녀는 남극에서 '리셋'하며 다시 자신을 찾는다.

그리고 그 순간 놀랍게도 가족이 다시 하나로 모인다. 그녀가 창조자로서 다시 제자리를 찾는 순간 가족 또한 더욱 단단하게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된다.
 
 남극해에서 홀로 떠있는 바나뎃은 자신이 창작하기 위해 산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극해에서 홀로 떠있는 바나뎃은 자신이 창작하기 위해 산다는 것을 깨닫는다. ⓒ (주)다스테이션

 
이 소설 같은 이야기는 실제 베스트셀러 소설을 기반으로 했다. 근 1년간 꾸준히 미국 사람들에게 잘 팔렸다는 것은 아마도 내 삶이 왜 이토록 힘든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모두가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오늘 왜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묻고 또 묻는 질문 속에서 이 영화는 잠시 환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감독은 <스쿨 오브 락> <보이후드> 그리고 <비포 선셋>과 <비포 미드나잇>을 만든 리처드 링클레이터다. 그가 오랜만에 <어디 갔어, 버나뎃>으로 코미디 장르를 들고 나왔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하다. 진짜 농담은 잔잔하지만 머릿속에 오래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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