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구경이>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구경이>의 한 장면 ⓒ JTBC

 
배우 이영애의 이미지는 드라마 <대장금>의 지고지순함과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잔혹했던 모습으로 극명하게 갈린다. 물론 나는 '금자씨'에 더 매력을 느낀다. 단아한 장금의 이미지를 단번에 박살낸 '금자씨'의 그로테스크함은 독보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불결하기 이를 데 없는 '구경이'로 변신했다.

 JTBC 드라마 <구경이>에서 부스스하고 심드렁한 은둔형 게임광으로 등장한 이영애의 모습은 언뜻 어색해 보였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점차 '구경이'스러워지고 있었다. 여자 은둔형 게임광 설정은 한국 드라마에선 보기 드문데, 게다 여자 사이코패스 살인마 설정이 더해지면서 드라마는 매우 색다른 서사를 견인하고 있다. 시청률이 다소 아쉽지만 걸출한 두 여성 캐릭터의 등장은 괄목할 만하다. 지금껏 한국 드라마에서 이토록 독특한 여자 캐릭터들을 중심에 뒀던 적이 있던가.
 
이제껏 보지 못한 여성 탐정 구경이
 
유능한 경찰이었던 구경이(이영애)는 남편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며 불행해진다. 남편이 목숨을 끊은 이후, 경찰직을 이어갈 수 없었던 구경이는 스스로 자신을 집에 가뒀다. 과거와 단절되는 유일한 방법은 게임이었다. 그는 어느덧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에만 몰입하는 게임광이 되었다.
 
게임에 빠져 자신을 돌보지 않는 구경이의 집은 사람이 산다고 말하기 무색하게 벌레가 들끓는 아수라장이다. 목이 축 늘어진 남루한 티셔츠와 무릎이 나온 고무줄 바지에, 언제 감았는지 알 수 없는 쑥대머리를 하고는 종일 가상의 게임 세계에서 전투를 벌인다. 

구경이가 이렇게 변한 데에는 아픈 이유가 있다. 남편이 다니던 학교의 한 제자가 시체로 발견되고, 남편이 그 제자와 부적절한 소문에 연루되자, 구경이는 남편을 취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남편은 자신의 결백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대신, 가장 비겁한 방식으로 아내 구경이를 배신한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은 공정한 수사를 진행하던 구경이를 '남편 잡은 여자'로 만든다.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많은 작품이라면, 경찰인 아내는 남편의 혐의를 무마하거나 은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남편이 죄인이더라도, 세상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는 죄를 지었더라도 아내는 남편을 감싸고 헌신한다는 것이 유구한 가부장의 신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경이는 아내가 아니라, 오직 수사관으로서 남편을 취조한다. 이것이 비난받을 일일까.
 
그가 아무리 강직한 경찰이더라도, 철석같이 믿었을 남편을 의심하는 것은 뼈아플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는 수사관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공정히 수행하려 했다. 남편이 돌연 죽음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을지 모르나, 세상은 구경이가 무리한 수사로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힐난했다.
 
어떤 강심장이라고 해도 배우자의 죽음에 태연할 수는 없다. '의심병'으로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비난과 자책도 고통스럽지만, 무엇보다 그의 고통은 어쩌면 남편이 범죄자일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추론에서 비롯된다. 게다 살인사건의 피해자(죽은 제자)가 교사와 제자라는 권력관계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경우라면, '그 사람은 결코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고 섣부르게 결론지을 수 없다는 것을 구경이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구경이 남편의 혐의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그의 결백 또한 밝혀지지 않았다. 제자를 죽게 한 사람은 누구인지, 남편과 제자가 부적절한 관계였는지, 두 사람의 관계에서 성폭력의 여지는 있었는지, 모든 사건의 전말이 선명하지 않다. 이런 경우 보통의 아내는 남편의 밝혀지지 않은 혐의를 무죄로 간주한다. 명망 높은 남편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분명한 데도, 성폭력 따위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고 두둔하는 많은 아내들을 목도해온 우리에게 구경이의 모습은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남편이 파렴치한 범죄자더라도 그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내의 선택이고 권리일 수 있다. 그러나 버젓이 벌어진 범죄를 무화시키거나 피해자를 파괴할 권리는 없다. 무도한 '부정(婦情)'보다는 공정한 부정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구경이의 몰락은 어쩌면, 가부장을 거부한 아내에게 내린 형벌일지 모른다. 피해자를 '꽃뱀'으로 만들어 남편을 구하는 대신, 막돼먹은 아내가 될지언정 부정의한 가부장의 수호자가 되지 않기로 한 구경이의 용기가 매우 값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이코패스 살인마 이경, 다른 사이코패스와는 다르다
 
 JTBC 드라마 <구경이>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구경이>의 한 장면 ⓒ JTBC

 
한편 드라마의 또 다른 핵심 축인 이경(김해준) 역시 지금껏 한국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다. 그는 부모를 충격적인 사건으로 잃고 그 특정 시점에 자신을 묶어둔 채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새 "죽일 놈만 골라 죽이는" 사이코패스 살인광이 된다. 이는 타고난 DNA 때문일까, 아니면 트라우마가 기괴하게 발현돼 살인을 추동하고 있는 것일까.
 
어릴 적부터 살인의 기억을 가진 소녀 이경은 매우 치밀하게 살인을 기획하고 이를 게임처럼 즐기는 살인광이다. 사악한 사이코패스지만 그에겐 '죽일 만한 놈만 골라 죽인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그 원칙은 자의적이고 그래서 문제적이지만 그가 죽인 자들의 면면을 들여다볼 때 일면, 죽어 마땅한 자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의적 판단으로 저지르는 살인에 정의감이 부재해서가 아니라, 그가 살인의 과정을 즐긴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지난 5월 종영한 SBS 드라마 <모범택시>에서도 사적 복수를 서슴지 않는 집단이 등장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적 복수는 낯설 것이 없지만, 이들 집단이 피해자의 가족이라는 데서 비로소 특별해진다. 악인을 처절히 응징하는 이들의 폭력 역시 자의적인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문제적이다. 그러나 무능한 공권력이 해결하지 않거나, 해결 못한 악당을 기꺼이 일소하는 데서 시청자는 어쩔 수 없는 카타르시스에 젖어든다. 누가 피해자의 고통에 이들처럼 개입했단 말인가. 그 자의적 처단은 분명 상당히 위험하지만 시청자가 그들의 처단에 일정 정도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면, 악당을 처단하는 그들에게서 폭력을 즐기는 쾌락을 발견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즉 사람을 해치며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이경은 어릴 적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몹쓸 사이코패스다. 그렇지만 이경을 그저 사이코패스라 부르기에는 뭔가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 왜냐하면 그의 살인에는 혐오를 밑절미 삼아 약자를 죽이며 우월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의 탈이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약자를 고르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처단하기 어려운 상대라 해도 완벽히 지능적 수단으로 제압한다. 약자만 골라 가해하는 기존의 사이코패스 범죄자들과 이경은 이 지점이 다르다. 이는 평범한 사이코패스의 자리에 이경을 선뜻 놓을 수 없는 이유다.
 
기존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이코패스는 식상하리만치 유사했다. 우선 이들은 대개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들이었다. 또한 영화 <살인의 추억> <악마를 보았다> <추격자> <암수범죄>에서부터, 드라마 <터널> <보이스> <리턴>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콘텐츠에서 무수히 재현되며 그야말로 역겨운 여성 혐오 살해를 전시해왔다. 피해자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잔혹하게 여자를 살해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재현하는 것이 마치, 그들의 죽음을 더욱 안타까워한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이 위선을 떨면서 말이다.
 
이렇듯 오랫동안 전범이 된 여성혐오 남자 사이코패스의 전형에 균열을 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여자 사이코패스 이경은 획기적인 캐릭터일 수밖에 없다. 그는 무엇보다 약자를 선택해 고문하며 유혈을 짜내 희열을 느끼는 악마성을 탈각한다. 그가 처단하기 위해 고른 악은 반드시 죽어 마땅한 죄과를 가지고 있다. 더 특이한 점은, 이 사이코패스가 피해자의 동의와 동조라는 심리적 유대감을 획득한다는 데 있다.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죽임으로써 쾌락을 얻는 지질한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아니라, 자기보다 강한(악한) 존재를 처단함으로써 희열을 느낀다는 데서 기존의 여성 혐오 살인마와는 상당히 결을 달리한다. 살해 자체에 방점을 찍는다기 보다, 악당인 가해자를 제거해 피해자를 본래의 삶으로 복귀시킨다는 데에 강한 동기를 보인다. 약자의 피해를 향한 섬뜩한 가긍함이 이경의 가장 큰 차별점이자, 사이코패스라고 무턱대고 미워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경의 살인 행각이 용서되거나 지지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를. 주목할 것은 이경의 사이코패스다움이 어디에도 없던 새로운 여자 사이코패스의 지평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 교활한 사이코패스를 잡겠다고 은둔하던 방구석을 박차고 나선 구경이 역시 이제껏 보지 못한 여자 탐정상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혜성처럼 등장한 두 여성 캐릭터 구경이와 이경의 엎치락뒤치락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과연 이 걸출한 두 인물이 어떻게 격돌하며 서로에게 문신 같은 경험을 새기게 될지 지켜보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윤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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