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들의 로맨스 포스터
괴짜들의 로맨스포스터오드 AUD

1:1 정사각의 화면에서 진행되던 영화가 어느 한 순간에 이르러 16:9 화면비로 넓어진다. 그 순간의 변화는, 신파극이 관객의 눈물샘을 강타해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내듯 이성으론 어찌할 수 없는 출렁임을 일으킨다. 일순간의 충격이다. 고음이 출중한 가수의 음성을 듣듯이 관객의 팔뚝엔 소름이 돋아난다. 머리로 이해하고 판단하기 전에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때로는 감각이 판단보다 정답에 가까울 때가 있다.

영화 중간 화면비의 변동으로 관객을 진동케 하는 이 장면은 대만영화 <괴짜들의 로맨스>가 예비해둔 승부수다. 일찌감치 이 영화가 그와 같은 기법을 활용했단 사실이 알려졌으나 알고 맞는 비가 옷을 덜 적시지 않듯 충분한 효과를 거둔다.

대만 신예감독 랴오밍이는 이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리자마자 확신했을 것이다. 본인이 장편영화를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오로지 괜찮은 아이디어와 스마트폰만 있다면 영화 한 편쯤은 뚝딱이라는 듯 아이폰 하나만 들고서 장편영화 한 편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준비한 승부수는 제법 잘 먹혀들어간다.
 
괴짜들의 로맨스 스틸컷
괴짜들의 로맨스스틸컷오드 AUD
 
2020년 대만 흥행 1위, 한국 극장 흔들까

지난해 대만 박스오피스 가장 위에 우뚝 선 영화 <괴짜들의 로맨스>는 강박증 환자들의 로맨스를 경쾌하게 다룬 로맨틱코미디다. 강박적 결벽증을 가진 포칭(오스틴 린 분)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청소로 보내는 사내다.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서 번역일만 하는 그는 어쩔 수 없이 바깥에 나갈 땐 우비와 장갑 같은 보호장구를 여러겹 입고 집을 나선다.

그런 포칭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난다. 저와 똑같이 우비와 비닐장갑으로 몸을 감싼 여자 칭(니키 셰 분)이다.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칭의 모습을 우연히 본 포칭은 그녀에게 왠지 모를 끌림을 느낀다.

영화는 강박증을 앓는 포칭과 칭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다룬다. 이들이 썸에서 시작해 연애를 하게 되고 마침내는 소울메이트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깊은 이해를 갖는 과정이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강박이란 낯선 설정을 전형적 연애담 가운데 버무려 영화를 보는 누구나 그들의 사정으로 빠져들 수 있도록 이끈다.

포칭은 극단적 청결에 시달리고, 칭은 결벽은 물론 도벽까지 가졌다. 강박이 낳는 수많은 증상 가운데 몇을 포칭과 칭의 캐릭터 위에 입힌 것이다. 영화는 강박을 그저 흥밋거리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충분하진 않을지라도 강박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한국에서 7년 먼저 강박이란 소재를 차용한 <플랜맨>과 같은 영화와 비교한다면 영화가 강박을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려 했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괴짜들의 로맨스 스틸컷
괴짜들의 로맨스스틸컷오드 AUD
 
1:1 화면비가 깨어지는 순간의 감동

영화 전반부 내내 정방형으로 찍힌 영상은 인간이 스스로를 특정한 행위와 사고에 가두는 강박의 특성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이 같은 문제가 일거에 해소되는 순간은 비록 우연적으로 다가올지라도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인물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 좌우로 넓혀지는 화면이 도리어 강박이 주는 갑갑함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끔 하기 때문이다.

색감과 연기, 동선, 카메라를 멈춘 채 신중하게 촬영된 화면들은 그 경쾌한 분위기에도 영화가 제법 공들여 촬영됐단 걸 보여준다. 경쾌함에서 우울함으로 이어진 뒤 마침내 준비된 반전에 이르는 구성은 압도적으로 훌륭하진 않아도 상당히 세련됐다.

<괴짜들의 로맨스>는 결국 로맨스다. 불타고 마침내 스러지는, 결코 변치 않을 것만 같던 관계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는 흔한 연애 이야기로 귀결되고 만다. 그 지루하기 쉬운 로맨스를 어떻게 하면 독특하게 다룰 수 있을지, 대만의 신예 랴오밍이가 집중한 건 바로 그것이다.

대만영화가 가진 독특한 감성에 관심이 있는 영화팬이라면 <나의 소녀시대>와 <장난스런 키스>의 프랭키 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기든스 고와 함께 랴오밍이의 이름도 기억해봄직하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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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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