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두산 베어스는 2021 포스트시즌에서 '미라클' 신화를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다. 두산은 키움과의 와일드카드 시리즈부터 시작하여 LG 트윈스와의 준PO, 삼성라이온즈와의 PO 시리즈를 모두 승리했다.
 
2015년부터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10개 구단 체제에서 와일드카드 시리즈(2015년 도입)부터 시작하여 한국시리즈에 오른 사례는 모두 두산이 역대 최초다. 또한 두산은 올해 포스트시즌에서만 5승을 추가하며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포스트시즌 통산 100승(101승 1무 83패)을 돌파했다. 최다승 2위인 삼성(77승)과는 격차가 크다.
 
정규리그 4위팀인 두산이 내친김에 한국시리즈에서 KT 위즈까지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면, 1989년 KBO리그 단일리그제 도입 이후 역대 가장 낮은 순위로 포스트시즌을 제패한 팀이 된다. 종전 기록은 1992년 롯데 자이언츠, 2001년·2015년 두산 등이 정규시즌 3위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 우승을 차지한 경우가 총 3번 있었다. 양대리그제로 운영되었던 1999년에 한화 이글스가 전체 승률 4위로 포스트시즌에서 우승을 차지한 사례가 있다.
 
놀라운 업적에 '명장론' 다시 부활
 
선수들 격려하는 두산 김태형 감독 1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두산과 삼성의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에서 11대3으로 승리한 두산 김태형 감독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 선수들 격려하는 두산 김태형 감독 1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두산과 삼성의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에서 11대3으로 승리한 두산 김태형 감독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특히 올해 두산의 돌풍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김태형 두산 감독이다. 지난 2015년 두산 베어스 사령탑에 취임한 김태형 감독은 KBO리그 역대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는 감독이 됐다. 김응용, 김성근, 김인식, 김경문, 김영덕, 김재박, 류중일 등 KBO리그의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평가받는 명장들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이다.
 
한국보다 프로야구 역사가 훨씬 오래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7년 연속 파이널(월드시리즈) 진출 감독은 전무하고, 일본에서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일본시리즈 9연패를 이끌었던 가와카미 테츠하루(1961~1974)만이 유일하게 김태형 감독보다 앞선다.
 
다만 1군 감독 데뷔 이후 7년 연속 자국리그 최고의 무대에 진출한 사례는 한미일을 통틀어 김태형 감독이 사상 최초다. 김 감독은 2015년 감독 데뷔 이래 올해까지 한국시리즈에 모두 개근하며 우승 3회, 준우승 3회를 각각 기록했다. 데뷔 후 7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김태형 감독의 기록은 당분간 쉽게 깨지기 힘든 업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김태형 감독과 두산의 돌풍이 최근 현대야구에서 그 실체에 의구심을 자아내던 '명장론'을 다시 부활시켰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야구는 감독이 한다'는 격언이 유행할 만큼 감독의 능력이 팀의 경쟁력과 승부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현장과 프런트의 분업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강조하는 현대야구에서는 감독 역시 팀의 일부분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었고, 감독 개인의 전지전능한 1인 리더십에 대한 환상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과거에는 명장으로 평가받았던 인물들이, 실제로는 '선수빨'과 프런트의 지원을 등에 업고 좋은 성적을 거둔 게 아니냐는 재평가의 계기로 이어졌다. 김응용, 김재박, 김성근, 김경문, 류중일 등 이른바 프로야구 1, 2세대를 대표하던 베테랑 감독들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지도자 말년에 하나같이 쓴맛을 보며 재기에 실패한 것은, 이러한 '명장 허상론'을 증명하는 사례로 보였다.
 
 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1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6회말 2사 만루 위기를 넘긴 투수 홍건희(오른쪽)이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1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6회말 2사 만루 위기를 넘긴 투수 홍건희(오른쪽)이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태형 감독도 초창기에는 두산이라는 강력한 팀빨-선수빨을 등에 업고 성적을 거둔 '운장' 혹은 '복장'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두산은 김 감독이 부임하기 전부터 이미 매년 꾸준히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는 강팀이었고 2년 전에는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바 있었다. 김 감독은 KBO리그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화수분' 육성시스템과 두꺼운 선수층, 프런트의 적극적인 지원까지 등에 업고 두산의 최전성기에 지휘봉을 잡는 행운을 누렸다.
 
하지만 7년의 세월 동안 김태형 감독과 두산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양의지, 민병헌, 김현수, 오재일, 최주환 등 거의 매년마다 주전급 선수들이 FA자격을 얻어 팀을 떠나며 큰 전력누수가 발생했다. 유희관, 장원준, 오재원 등 팀에 남은 베테랑들도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노쇠해갔다. 최근에는 모기업이 재정난에 시달리며 한때 구단 매각설까지 거론될 정도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2021시즌을 앞두고 두산의 전력은 김태형 감독 부임 이후 역대 최약체로 거론될 정도였다. 심지어 포스트시즌에서는 외국인 원투펀치 아리엘 미란다와 워커 로켓의 동반 부상 이탈이라는 초대형 악재까지 겹쳤다. 사실상 두산의 시즌은 끝났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김태형 감독과 두산의 진정한 저력은 가을야구부터 빛을 발했다. KT, 삼성, LG가 시즌 막바지까지 치열한 정규리그 선두경쟁을 펼치는 동안 한발 물러선 4위로 포스트시즌에 겨우 진출하며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두산이지만, 단기전에서 진가를 드러내며 7년 동안 축적된 '가을 DNA'를 마음껏 발휘했다.
 
김태형 감독의 가을야구 전략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두산 김태형 감독 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1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경기를 앞두고 두산 김태형 감독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두산 김태형 감독 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1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경기를 앞두고 두산 김태형 감독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 감독의 리더십이 가장 빛난 부분은 '없는 살림'에도 불평하지 않고 가진 자원만을 가지고 최상의 전력을 극대화시켰다는 점이다. 김 감독은 마운드 운영의 플랜B로 최원준-곽빈-김민규 3인 선발과, 이영하-홍건희-이현승-김강률로 연결되는 필승조 4명으로 소수정예 마운드 시스템을 새롭게 정비했다. 경험이 부족한 어린 투수들이 많았지만 김 감독은 이들을 믿고,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여기에 한박자 빠른 마운드 운영과 타선의 파괴력을 극대화시키는 라인업은 승부처마다 빛을 발했다.
 
물론 두산의 포스트시즌 돌풍에는 일정상 약간의 행운도 따랐다. 시즌 중반 코로나19와 리그 중단기의 여파로 포스트시즌 일정이 축소된 것은 투수 가용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두산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준PO와 PO가 예년처럼 5전 3선승제로 운용되었다면 두산이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에서 두산이 업셋한 상대팀들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주어진 상황을 기회로 반전시킨 것은 운이 아니라 실력이었다.

김태형 감독의 가을야구 전략은 승산 있는 경기에 선택과 집중이었다. LG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 접전 상황에서 필승조를 휴식시키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며 3차전에서 이영하를 2회부터 올려 4이닝을 맡겼다.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홍건희를 5회에 올려 3이닝을 던지게 하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 김재환, 양석환 등 도루와는 거리가 먼 주자들에게 깜짝 더블스틸을 시키거나, 전날 홈런을 기록한 박세혁에게 첫 타석부터 보내기 번트를 지시하는 등 허를 찌르는 변칙적인 전술도 마다하지 않았다. 경기의 맥을 정확하게 짚고 힘을 아낄 때와 쏟을 때를 구분할 줄 아는 사령탑의 배짱과 뚝심이 빛을 발한 장면이었다.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도 김태형 감독의 용병술은 빛났다. 앞선 두 번의 시리즈를 치르며 투수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여러번 실점 위기를 맞았지만 홍건희를 비롯한 필승조를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삼성 타선을 봉쇄했고, 2차전에서는 초반부터 보내기번트와 팀배팅으로 차곡차곡 점수차를 벌리며 일찍 승기를 잡았다. 두산 선수들의 활약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적재적소의 타이밍으로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시킨 것은 김태형 감독의 정확한 안목과 판단력이었다.
 
공교롭게도 올해 가을야구에 두산이 만난 상대팀 감독들(키움 홍원기, LG 류지현, 삼성 하삼영)은 모두 데뷔 1~2년차의 젊은 사령탑이었다. 김태형 감독은 어느덧 감독 7년차로 KBO리그 최고 연차 감독이 됐다. 상대팀은 두산보다 객관적으로 앞선 전력과 상황, 확률 높은 데이터야구와 전력분석으로 무장했지만, 정규시즌과는 또다른 포스트시즌 무대에서는 승부처에서의 유연한 경기운영과 과감한 결단력 면에서 모두 '감독의 경험'이 만들어내는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다.
 
아직 한국시리즈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미 김태형 감독은 올해 가을야구를 기점으로 다시 한번 명장으로서 재평가를 받을 만한 업적을 이뤄냈다. 2021년의 두산이 내친김에 '4위의 기적'을 이뤄내며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한다면 이전에 달성한 그 어떤 우승과 비교해도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김태형 감독이 KBO리그 사상 전무후무한 '감독빨 우승'이라는 신화를 완성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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