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연모>의 최고 권력자는 임금인 혜종(이필모 분)이 아니라 외척인 한기재(윤제문 분)다. 좌의정이자 혜종의 장인인 한기재는 조정 관료들을 떨게 만들 만큼 막강하다. 혜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무겁고 차가운 인상에서도 그의 정치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KBS 사극 <연모>

KBS 사극 <연모> ⓒ KBS

 
무소불위한 그의 힘은 쌍둥이로 태어난 혜종의 두 아이에 대한 조치에서도 표현된다. 그는 세자 시절의 혜종이 쌍둥이 남매를 낳자 여자아이(박은빈 분)에 대한 살해를 지시했다.

그렇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쌍둥이 여아는 궁녀가 돼 다시 나타났고, 세자빈(한채아)는 불의의 죽음을 당한 세손을 대신해 여아를 세손의 자리에 앉게 한다.
 
그 뒤 혜종은 왕이 됐고, 남자로 위장한 여아는 세자가 됐다. 금상(현직 주상)은 사위이고 세자는 외손인 이 같은 구도는 한기재가 권력을 이어가는 기반이다. 그 기반 위에서 그는 임금을 능가하는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무겁고 차가운 그의 이미지는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사극의 스토리는 작가의 상상력에 맡겨지지만, 사극의 배경만큼은 어느 정도라도 시대 분위기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궁중 권력투쟁에 관한 이야기 역시 실제로 구현된 왕조 정치의 메커니즘을 일정 정도라도 담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비현실적인' 한기재의 권력
 
 KBS 사극 <연모>

KBS 사극 <연모> ⓒ KBS

 
<연모>의 한기재는 어전회의 때 임금보다 아래에 서지만, 실제 권력은 군주의 머리 위에 있다. 그는 왕실에 공을 세웠고 사위와 외손을 각각 주상 및 세자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그런 위세를 누리고 있다. 이 같은 설정은 역사적 실제와 너무도 동떨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실제로 구현된 왕조정치의 실상을 살펴보면, 이 드라마 속의 구도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왕실에 공로를 세웠고 외척 지위를 갖고 있다면 임금보다 훨씬 막강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될 수도 있다. 물론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정치적 조건이 필요했다.
 
사도세자의 아버지이자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 임금 때도 외척들이 영향력을 행사했다. 비교적 강력한 군주였던 영조 때도 외척들이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은 왕실과의 혼인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든든한 자산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외척들의 발호를 막기 위해 왕실들은 '명문가이되 정치력은 약한 가문'을 사돈으로 선호했지만, 왕실들의 의도가 충분히 관철되지는 못했다.
 
외척이 강력해지는 것이 그처럼 불가피했음을 감안한다 해도, <연모>의 한기재는 상식 이상으로 막강하다. 그의 권력은 영조시대의 외척들을 초월함은 물론이고 19세기 전반 60년간의 외척들도 월등히 능가한다. 세도정치시대로 불리는 순조·헌종·철종시대의 외척들보다 분명히 막강하다.
 
하지만 한기재의 드라마 속 권세는 19세기 60년간의 경주 김씨, 안동 김씨, 풍양 조씨들도 감히 가져보지 못한 것이다. 

외척 세도의 조건

임금이 어린 후계자를 두고 세상을 떠난 경우에는, 임금의 부인이나 어머니가 수렴청정을 통해 실질적 왕권을 행사했다. 이런 시스템만 제대로 작동하면 어린 후계자의 지위는 안정적으로 보호될 수 있었다. 왕조시대에는 임금의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왕후나 대비가 권한대행을 맡았기 때문에, 이런 인물들이 어린 후계자를 받쳐주면 후계자의 지위가 흔들릴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것은 나이가 어려서라기보다는 수렴청정을 해줄 어머니나 할머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 13세에 즉위한 고려 인종이 외할아버지 이자겸의 딸들과 결혼하고 그에게 실권을 내줘야 했던 것 역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고려 인종과 조선 단종에게 수렴청정 해줄 태후나 대비가 있었다면, 그 시대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가능성이 높다.
 
정조의 사망과 순조의 즉위로부터 시작된 세도정치시대에는 그런 대비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 시기의 왕권이 조선왕조 사상 최약체가 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수렴청정을 해주는 대비들이 어린 임금의 편에 서기보다는 친정집의 편에 섰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경우에, 외척들은 세상의 눈치를 살피면서 권력을 확대했다. 그런데 세도정치시대에는 대비들이 수렴청정 권한을 활용해 친정 가문의 정치활동을 뒷받침해줬기 때문에 이 시대 외척들은 왕실 이상의 권력을 노골적으로 구축할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 두고두고 회자되는 순조·헌종·철종시대의 세도정치는 그런 배경에서 구현했다.
 
이 같은 왕조시대의 선례들은, 남성 군주가 어린 후계자를 두고 세상을 떠난 경우에 대비의 수렴청정이 후계자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됐지만, 대비가 친정 가문을 편드는 경우에는 왕권이 왕실 밖으로 넘어갈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수렴청정해줄 태후나 대비가 없는 경우나, 그런 태후·대비가 있다 해도 그가 외척을 편드는 경우에는 왕권이 위태해질 수 있었음을 알려준다.
 
<연모> 속의 한기재는 고려 인종 때의 이자겸, 조선 단종 때의 수양대군보다도 훨씬 강력하고, 세도정치시대의 경주 김씨, 안동 김씨, 풍양 조씨의 수장들보다도 훨씬 강력하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위와 같은 조건들이 전혀 충족돼 있지 않다. 왕권이 왕실 밖으로 넘어가기 쉽게 만드는 조건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이 드라마에서는 혜종이라는 남성 군주가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혜종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뒤에 왕위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이런 군주가 재위하는 시대에는 고려 인종과 조선 단종·순조·헌종·철종 때의 역사가 재연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외척은 독자적 군사력을 갖는 집단이 아니다. 왕실과의 혼맥을 바탕으로 권력에 접근할 뿐이다. 그 혼맥을 바탕으로 '너무 어린 임금이 등극해 외갓집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명분 삼아 국정에 개입하게 된다. 그래서 어린 후계자가 왕이 될 때에 이들은 유리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외척이 카리스마나 재력으로 신하들을 매수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신하들에게 봉급을 주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군주였기 때문에, 군주로부터 조정 전체를 가로채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독자적 군사력이 없는 외척이 임금 이상의 권력을 획득하려면 '어린 후계자가 임금이 되고, 임금 편에서 왕실을 지킬 태후나 대비나 없는 상황'의 도래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연모> 속의 한기재도 독자적 군사력이 없다. 그래서 그가 아무리 왕실에 공로가 있다 해도 위와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절대 권력에 근접하기 힘든 인물이다. 일반적 의미의 실세가 될 수는 있어도 <연모>에서와 같은 막강 권력은 획득하기 힘든 인물이다. 자신만의 군사력이 있다면 위와 같은 조건에 구속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 역시 왕실 정치의 패턴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 속의 정치상황은 왕조시대의 정치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외척 한기재의 무겁고 차가운 인상을 '톤 다운'시키고 그의 권세를 대거 박탈해야 역사적 실제에 근접하는 사극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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