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상하이만큼 양가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도시도 드물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땅(2020년 기준 인구수 2400만 명)이자 중국 경제의 오늘이라 불리는 화려함을 간직한 도시. 양자강을 끼고 발전한 오랜 역사를 가졌음에도 최근 수십 년의 성장이 과거를 완전히 잊게끔 했다. 상하이 이외의 지역과 상하이는 그 삶과 문화가 완전히 구분될 만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상하이는 중국의 오늘이자 미래로 불린다.

코로나19 위기와 중국 부동산 경기 불안 속에서도 상하이의 성장은 멈출 줄 모른다. 올해 상반기 성장률이 12.7%를 기록하며 GRDP(지역내 총생산) 기준 서울보다 2배 가까이나 앞서갔다. 불과 10여 년 전만해도 서울에 비해 뒤처져 있던 상하이의 성장세는 아시아에선 짝을 찾기 어려운 수준이다.

자본주의의 정점에 서 있는 듯한 상하이지만 그 이면을 바라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국영기업이 차지하는 높은 비중과 정부 중심의 경제정책 추진, 정치적 변화에 따른 불안정성은 언제나 상하이 경제의 약점으로 지목돼 왔다. 2018년 마윈 알리바바 회장의 급작스러운 사퇴 외에도 권력층과의 관계불안으로 물러난 경영인이 한둘이 아니다. 국제도시를 표방하면서도 외국기업 및 자본에게 차별적인 요소가 많다는 점도 늘 비판을 받는다. 베이징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CCTV가 설치된 도시란 평가는 상하이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상하이가 가진 첨단과 구태의 기묘한 결합은 예술가에게도 여러모로 관심을 끄는 모양이다. 현대 상하이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중국 영화의 전면에 등장하는 경우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뜨거운 수프 스틸컷

▲ 뜨거운 수프 스틸컷 ⓒ GIFF

 
첨단의 도시를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

장밍 감독의 신작 <뜨거운 수프>는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출품되며 최초로 공개된 영화다. 영화에선 상하이의 화려함과 부유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한편, 어딘지 모를 불안감과 위기감이 감돈다. 장밍이 보여주고 싶었던 상하이의 오늘은 예술적 비판에 몹시도 엄격한 중국정부의 서슬 푸른 감시를 피해 내보일 수 있는 최선의 비판인 듯도 보인다.

영화는 그 간명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럽고 불분명하게 연출됐다. 상하이에서 살아가는 네 명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그들의 상황과 소품을 이어 붙여 이들이 마치 한 명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끔 한 것이다. 영화가 보이는 혼란은 곧 상하이의 오늘 가운데 있을 혼란처럼도 보인다.

탕탕은 통유리 너머 양자강이 내다봬는 고급 아파트에 사는 젊은 여성이다. 그녀의 남편은 기술기업 CEO다. 오직 탕탕에게 충실한 그녀의 남편은 해외에서 유학을 한 혼혈 남성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탕탕과 결혼하고자 하지만 아이를 갖길 원하는 탕탕은 선임신 후결혼을 조건으로 내걸고 물러서지 않는다.
 
뜨거운 수프 스틸컷

▲ 뜨거운 수프 스틸컷 ⓒ GIFF

 
상하이의 네 여자, 그들을 통해 본 도시의 오늘

둘링은 서른을 바라보는 박사과정 대학원생이다. 중국의 경제발전과 개인의 행복지수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인 그녀는 매일 같이 상하이 교외의 호화로운 별장으로 출근도장을 찍는다. 그곳엔 그녀의 지도교수가 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그의 지도교수는 건강이 좋지 않아 매일 온천욕과 마사지, 침술, 수영을 하며 지낸다. 둘링은 그에게 프린스턴 대학교 진학을 위한 추천서를 받으려 하지만 교수는 매일 그녀를 불러 논문의 문제를 지적할 뿐이다.

팡유안은 자유분방한 십대 소녀다. 그녀의 양아버지는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조직 두목인데, 상하이 시내에서 커다란 유흥업소를 운영한다. 팡유안은 자신과 만나는 남자를 집에 소개하고 싶지만 애인은 번번이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 팡유안을 아끼는 아버지는 그를 만나길 고대하지만 제 앞에 나타나질 않으니 방도가 없다.

맹은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조사하는 연구원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며 그들의 행복지수를 데이터화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늘 사설택시를 타고 다니는 맹 앞에 한 운전기사가 나타난다. 상하이 시민권을 갖지 못한 사내는 이민 브로커와 운전사 일을 병행하며 상하이에서 살아간다. 맹에게 첫눈에 반한 그가 맹을 뒤쫓지만 맹은 그보다는 나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 그럼에도 조금씩 그에게 가는 마음이 맹을 짜증스럽게 한다. 맹은 그에게 결혼이민을 위한 상대를 알아봐달라고 일을 맡긴다.

영화는 네 여자의 일상을 따라가며 상하이 여성들이 맞닥뜨린 고민을 살핀다. 노력으론 뒤집을 수 없는 계급이 공고한 가운데 둘링은 학업으로, 맹은 결혼과 이민으로 제 삶을 역전시키고자 한다.
 
뜨거운 수프 스틸컷

▲ 뜨거운 수프 스틸컷 ⓒ GIFF

 
결핍과 불안, 단절... 장밍이 바라본 현실일까

가난과 치열한 경쟁을 딛고 승자의 자리에 올라선 둘링의 지도교수와 팡유안의 양아버지는 부와 권력에도 온전치 않은 신체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탕탕과 팡유안의 애인은 연인에게 무정자증을 숨기려고 하지만 마침내 걸리고 만다. 맹을 사랑하는 사내는 가난하여 제 손으로 그녀에게 다른 남자를 구해줘야 하는 신세다.

네 여성을 둘러싼 남성들은 하나같이 결핍돼 있다. 겉으론 성공한 듯 보이지만 장애와 질병에 시달리고, 건강한 듯 보이지만 후손을 갖지 못한다. 여성의 가족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 가난으로 면전에서 폭행과 모욕을 당한다. 영화 속 상하이의 남성들은 죄다 이처럼 불행하다.

여성들의 사정이라고 다르지 않다. 여성들의 꿈은 현실에서 쉽사리 얻을 수 없는 것으로 거듭 좌절된다. 남자를 희생시키고 상처 입히며 전진하지만 끝내 행복에 다다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러닝타임 내내 맴돈다.

영화는 그 끝에서 이들 네 여성을 마치 한 인물인 것처럼 엮어낸다. 모든 걸 다 얻은 것처럼 보였던 여성은 결국 그녀가 가장 원했던 걸 얻지 못한다. 어쩌면 영원히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영화 내내 국을 먹지 않으려 했던 탕탕의 남자는 끝내 제가 싫어하던 국을 삼키고 만다. 무엇이 든 지도 모르고 모든 재료를 섞어 끓인 '뜨거운 수프'는 거부할 기회도 같지 못한 채 닥쳐온 상하이와 중국의 오늘인 건 아닐까.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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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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