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를 중계해온 스포츠전문 방송 4사(KBSN·MBC PLUS·SBS미디어넷·스포티비)가 한국야구위원회(KBO)와 10개 프로구단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며 야구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송 4사는 지난 25일 KBO에 보낸 공문을 통하여 KBO 리그 중단과 선수들의 일탈로 국민 여론이 악화했다며 '더블헤더-평일 낮 중계 등 리그 일정을 맞추기 위한 기형적 편성으로 시청률 하락과 광고 매출 급감', '이미 판매된 광고의 환불과 보상 등으로 발생한 막대한 손해' 등을 내세우며 리그 중단에 따른 방송사의 피해를 배상할 책임 있는 방안을 세워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KBO 역시 공문을 받고 향후 대응을 위한 내부 검토에 착수했다.
 
KBO는 2020년 지상파 3사와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향후 4년 간 KBO리그의 지상파, 케이블, IPTV 중계방송 권리를 부여하는 조건으로 국내 프로스포츠 역대 최대금액인 2160억에 중계권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평균 중계권료만 무려 540억원에 달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이를 케이블 방송사와 IPTV에 재판매했다.
 
KBO리그는 지난 7월 도쿄올림픽 휴식기를 앞두고 발생한 일부 선수들의 술자리 파동과 방역수칙 위반으로 선수단에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자, 이사회를 열고 전반기 조기 종료 결정을 내렸다. KBO가 올시즌을 앞두고 자체적으로 수립한 코로나19 매뉴얼에 의하면 확진자를 제외하고 경기를 계속 진행해야 했지만, 약속된 매뉴얼을 지키지 못했고 이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방송사가 손해를 입었다는 게 배상을 요구하는 근거다. 방송사들은 중계권 계약서에 '과실에 의한 행위로 상대에게 끼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방송사가 협회와 구단에 손해배상을 요구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리그 중단 사태는 KBO리그 구성원간의 형평성과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이미 당시에도 많은 비판을 받았고 여전히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방송사의 전례없는 손해배상 요청은 이 사태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사태의 핵심적인 논점은 리그 중단 결정의 정당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다. 4개월전 KBO는 당시 두산 1군 구성원의 68%, NC 1군 구성원의 64%가 확진자 혹은 밀접접촉자로 자가격리를 해야하는 상황이라 리그 정상진행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리그 중단을 반대한 이들은 매뉴얼상 두산과 NC가 2군 전력을 올려서라도 경기를 충분히 정상 진행할 수도 있었다고 반박한다. 그만큼 전력이 약해지는 건 방역수칙을 위반하고 선수관리를 소홀히한 두산과 NC의 사정일 뿐 KBO와 다른 구단들이 고려할 부분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KBO 이사회가 결국 두산과 NC의 '구단 이기주의'를 봐주기 위하여 매뉴얼을 어겨가면서까지 정상적으로 방역수칙을 지켜온 나머지 8개 구단과 야구팬들에게만 민폐를 끼쳤다는 논리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고려해야할 부분은, 이 사건이 단순히 프로야구계 내부적인 문제로 끝나는 사안이 아니라, 코로나19 전염병 확산이라는 사회적 파급효과와 연동된 문제였다는 사실이다. 당시는 방역수칙을 위반한 일부 선수들로부터 시작된 확진 여파가 어디까지 확산될지 누구도 장담할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매뉴얼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나 통하는 것이다. 이미 방역에 구멍이 뜷려버린 상황에서 KBO가 여론을 의식하여 머뭇거리다가 만일 확진자가 다른 구단이나 야구계 외부로까지 확산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그 여파는 리그 조기 중단 정도와는 차원이 다른 파문으로 번져나갈 수도 있었다.
 
원칙대로 코로나19에 감염된 당사자만 제외하고 경기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프로야구 구성원들의 안전을 두고 도박을 하자는 주장일 수도 있다. 어차피 KBO는 술자리 파문이 드러난 시점부터 리그 중단과 강행, 두 가지 중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리그 중단은 그 상황에서는 올바른 결정이라기보다는 '부득이한 결정'에 가깝다고 해야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KBO리그의 결정에 무조건 면죄부가 주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방송 4사가 문제삼는 부분은 리그 중단 자체보다도 그 결정이 과연 정당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결정됐느냐는 점이다. KBO 이사회 내부에서도 리그 중단에 반대하는 구단이 적지 않았다. 방송사들은 막대한 중계권료를 지불하고도 논의 과정에서 전혀 존중받지 못했고, KBO 이사회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인한 피해만 감수해야했다는데 불만이 있는 것이다.
 
이는 애초에 코로나19라는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고 144경기 체제라는 무리한 일정을 고집하려 했던 KBO의 무리한 추진이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지켜지기 어려웠던 허술한 원칙과 메뉴얼은 우려한 대로 작은 구멍이 뜷리자마자 한계를 드러냈다. 그리고 KBO리그의 방향성은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대기업 구단들의 유불리에 의해서 언제든 편의적으로 오락가락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방송사의 손해배상 요청의 본질은 돈 문제를 넘어서 'KBO리그의 기형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공개적인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사태가 보여주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프로야구의 가치 하락이다. 사실 올시즌 프로야구 시청률 하락의 원인은 리그 중단 사태가 아니다. 그동안 프로야구는 국내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꼽혔지만 몇 년 전부터 시청률은 지속적인 하락세였다. 이는 KBO리그 수준의 질적 하락, 스타 선수들의 도덕적 일탈과 사건사고, 도쿄올림픽 노메달 등 국가대표팀의 부진 까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려있다. 리그 중단으로 인한 파행은 이미 안전장치가 풀려있던 KBO리그의 몰락에 방아쇠를 당긴 것에 불과하다.
 
야구팬들은 KBO리그와 구단들이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하고 있다. 만일 방송사와 법적 공방까지 치닫게 된다면 시비가 어떻게 갈리든 이미지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방송사의 요청에 따라 손해배상 형태의 보상을 해주는 선례를 만들게 된다면, 야구계와 관련된 다른 기업체나 광고주들 역시 연쇄적인 배상 요구가 빗발칠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이는 고스란히 구단들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서 부와 인기에 안주해온 KBO리그가 그동안의 나태함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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