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듄>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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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듄>의 설정과 세계관
1984년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에선 8분에 가까운 도입부를 방대한 원작의 세계관 설명에 투입했지만 2021년 영화에선 그런 해설은 도입되지 않았다. <반지의 제왕>과 마찬가지로 기본 세계관과 설정에 대한 몰이해 상태에서 맞닥뜨리는 <듄>의 이야기는 난해하고 불친절하기 그지없다. 이는 대하소설 급 원작에 기반을 둔 작품들에서 통과의례처럼 거치는 숙제이긴 하지만 진입 턱으로 작용함은 엄연한 사실이다.
#1. 우주력 1만 191년
<듄>의 세계는 A.G. 1만 191년이란 설정으로 시작된다. 이 우주력은 After Guild의 약칭이다. '길드' 이전과 이후로 <듄>의 역사는 구분된다. '길드'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중세 유럽 도시의 직능조합을 떠올린다. <듄>의 세계관에서도 길드는 그런 조직이다. 엄연히 우주를 지배하는 '제국'의 '황제'가 있는데도 우주의 질서를 규정하는 달력은 '길드'의 탄생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현실의 달력에서 서력 개념이 갖는 위상을 생각해본다면 대체 이 길드란 조직은 무엇인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2021년 <듄> part.1에선 아직 이 '길드'가 구체적으로 등장하진 않는다. 이들은 속편에서 그 숨겨진 힘을 드러낼 것이다.
#2. '길드'와 '스파이스'
<듄>에서의 길드는 우주항해사들의 조합이다. 행성과 행성을 잇는 항성계, 그 무수한 항성계를 연결하는 물류 유통은 우주적 문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그 항성 간 운송을 책임지는 조직이 '길드'다. 이 길드가 활동을 중단하면 우주 제국은 곧바로 기능이 정지되는 셈이다. 현실로 치면 국제항공과 해상운송을 초거대 기업이 독점하고 있고 이들을 대체할 조직이 없는 셈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1984년 판에선 간략히 몇 줄로 설명되지만 2021년 판에선 아직 언급되지 않은 설정이 있다. <듄>의 세계관에선 인공지능 컴퓨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한 <듄>의 세계에서도 과거엔 당연히 인공지능이 광범위하게 활용되었지만 그 과도한 의존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봉기하며 '버틀레리안 지하드'라는 전 우주적 대립이 발생하게 된다. 그 결과 이 세계에선 인간의 지능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온갖 위험이 가득한 외 우주 항행에서 컴퓨터의 계산이 없다면 어떻게 하는 걸까? 고도로 훈련받아 예지능력을 갖춘 우주 항해사라는 특수집단이 탄생한다. 이들만이 전 우주적 문명과 제국을 지탱하는 초우주 항행을 안전하게 책임질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예지능력은 '스파이스'라는 물질에 크게 의존한다. 이 스파이스는 완벽히 중세에서 근대까지 유럽을 열광하게 하고 대항해 시대를 이끈 '향신료'를 상징하는 존재다. 스파이스는 이 세계에선 수명 연장과 각성 효과에 이르기까지 중산층 이상이면 필수품으로 사용하는 귀중한 물질이지만 특히 '길드'의 항해사들에겐 커피처럼 일상적으로 흡입해야 하는 존재다. 이 스파이스가 <듄>의 세계를 지탱하는 필수 자원인 것이다.
#3. 초암공사, 그리고 세력균형
귀중한 자원인 스파이스의 채굴과 분배를 위해 우주적 기업인 '초암공사'가 활동한다. 주식회사 형태의 초암공사는 크게 3개 세력이 지분을 점유한다. 제국의 황제 가문 그리고 각자가 항성계 급 영토의 군주인 대 귀족들의 협의체, 마지막으로 길드다. 이 중 길드가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초암공사에 공식적으로 지분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길드와 함께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결사, '베네 게세리트'가 큰 세력을 갖고 있다. 이들 세력 간의 갈등과 견제가 <듄>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기본 축인 셈이다.
제국의 황제는 특정 가문에서 세습하며 우주 최강의 정예군 '사다우카'를 휘하에 거느리고 있다. 대 귀족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연횡을 거듭한다. <듄>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 가문 격인 '아트레이데스'(그리스 신화 속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로 유명한 그 아트레이드의 후손인)와 그 라이벌 '하코넨' 등이 대 가문에 속한다. 황제 또한 대 가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범 우주적 봉건제에 가까운 체제다.
베네 게세리트는 여성들로 이뤄진 비밀결사다. 이들은 교육자인 동시에 인류의 미래를 자신들이 설정한 계획대로 바꿔가려는 시도를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 중이다. 길드와 함께 가장 오래된 조직인 베네 게세리트는 인위적으로 '초인'을 육성하려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 계획에 약간의 착오가 발생한다. <듄>의 모든 이야기는 그 균열로부터 비롯된다.
#4. 모래혹성 아라키스
<듄>의 주요 배경은 온통 사막으로 이뤄진 아라키스라는 별이다. 이 별은 겉보기엔 별 가치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곳은 전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바로 '스파이스'가 유일하게 생산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스파이스의 귀중한 가치는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스파이스는 초암공사에 의해 독점되며 가장 큰 지분을 가진 '길드'는 '스파이스는 흘러야 한다'는 금언을 실천한다. 스파이스 생산과 분배가 중단되면 우주적 문명이 붕괴하는 건 시간문제다. 당연히 스파이스 채굴과 관리는 제국의 핵심 현안이 될 수밖에 없다. 과거 80년 동안 이 귀중한 임무는 아트레이데스의 라이벌 하코넨 가문이 독점해 왔고, 그 결과 하코넨의 힘은 엄청나게 커진 상태다. 그런데 <듄>의 시작에서 아라키스의 관할권이 아트레이데스 가문으로 넘어온다.
이 행성에는 많은 위험요소가 상존한다. 거대한 모래바람은 폭풍 수준을 넘어선다. 한 번 불기 시작하면 거대한 강철기계도 파괴되기 십상이다. 가혹한 기상조건은 지구의 고비사막처럼 대낮에는 외부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스파이스가 채굴되는 영역에는 거대한 모래벌레가 출몰하기에 채굴작업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귀중한 자원이 아니라면 이 별에 과연 살려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아라키스에는 '프레멘'이라는 전투종족 유랑민이 존재한다. 이들은 마치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는 아랍 원주민을 떠올리게 하는 문화와 사회를 구성한다.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유라시아 대초원지대 유목민들이 물을 아끼던 습속을 극대화한 것 같은 풍속을 가진다(영화 초반에 프레멘 족장 스틸가가 아트레이드 공작과 대면하는 자리에서 그 기묘한 풍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강력한 전투력을 갖고 있어 제국의 황제가 자랑하는 '사다우카'를 능가할 잠재력을 가졌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여기에 주목한다. 그리고 황제와 다른 대 가문 또한 그런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영화 <듄>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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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프레멘의 미스테리
대체 생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아라키스에 왜 영화 속에서 등장하듯 적지 않은 수의 원주민들이 존재하는 걸까? 여기엔 <듄>의 이후 줄거리에서 밝혀질 수많은 복선과 설계가 존재한다. 실제로 이 프레멘들과 영화 속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의 만남이 2021년 <듄> part.1의 핵심인 바다.
원작을 읽으면서 느꼈던 지점이지만 1984년판에선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던 이미지, 즉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사막의 베두인들과 함께 중동을 제패하며 그들에게 느꼈던 경외심과 우정 같은 순간을 드니 빌뇌브의 2021년 버전 영화에서는 (프레멘들의 기호품인 '스파이스 커피'의 짙은 향기처럼) 보다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실제 원작과 영화의 주 배경인 아라키스의 사막과 원주민 프레멘은 지구의 사막과 유목민 베두인에게서 착안한 것이며 원작 속 용어의 많은 부분이 아랍어에서 차용되기도 했다. '지하드'나 '마흐디' 같은 용어도 원작과 영화에서 여러 번 발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프레멘의 기원이나 그들이 믿는 신앙에는 뭔가 비밀이 있어 보인다. 그런 여러 개의 알레고리들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하나둘 거대한 그림으로 완성될 테다. 그 과정이 곧 <듄>의 역사인 셈이다.
#6. 그런데 왜 우주 시대에 칼로 싸움을?
우주적 문명과 제국의 시대인데 영화에선 내내 사막에서 칼부림을 거듭한다. 이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인위적으로 기술을 통제한 역사와 연관된다. 너무나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전쟁에 핵을 사용하거나 전면전을 벌이는 건 금기시된 <듄>의 세계에선 그 대신 대 가문들 간의 세력 대결이 '암살자 전쟁'이라는 형식으로 취해지며 그에 따른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들이 동원되는 형태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개인이 방어막을 착용할 수 있어 레이저 총이 난무할 것 같지만 이 방어막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상태다. 그래서 대규모의 첨단무기를 동원하거나 총포류를 적극 활용하지 못하고 <듄>의 세계에서 전투는 고전적인 격투전으로 회귀해버렸고, 그 때문에 황제 직속 사다우카나 아라키스의 프레멘이 주목받게 된 배경이다. 이렇게 원작은 수많은 복선을 깔아둔 상태고 2021년 영화는 거의 원작소설의 시각적 형상화에 총력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그렇기에 기본 설정과 배경 정도는 숙독하는 게 더 중요해지는 셈이다.
3_2021년, 드니 빌뇌브가 선보인 <듄>의 신세계
마침내 기대를 품고 <듄>을 영접했다. 경건한 마음 절반, 흥분과 호기심 절반을 품은 채. 그리고 떨리는 가슴으로 엔딩 크레디트를 바라보았다. 155분 동안 <듄> 연대기의 서막을 확인했다. 사실 데이비드 린치의 1984년판이 원작의 문제의식을 초인숭배로 뒤바꿔놓은 점을 제외하면 그 저주받은 판본도 그렇게 나쁘진 않았던 바, 그 결정적 단점을 제거하고 좀더 제작사 입김에 내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빌뇌브의 2021년판은 훨씬 원작의 비전에 다가선 리메이크로 눈앞에 출현했다. 그것도 1984년판이 개봉버전 136분 분량이던 것을 2021년판은 딱 그 절반 내용으로 155분을 채운다. 다음편도 이 분량 전후는 유지할 테니 원작(그것도 소설 1권만, 그 1권조차 거의 1000쪽에 가깝다)의 구현에 당연히 유리하고 충실할 수밖에.
다만 원작 이해도가 없는 이들에겐 1984년판이 도입부에 선보인 내레이션이 가미된 배경 해설부분이 없다는 점은 치명적인 진입 장벽이 될 테다. 이미 제작이 확정되다시피 한 2부, 가능하면 감독은 <듄의 후예들>이 다뤘던 소설의 2~3권까지 포함해 3부작까지 완성하길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전제한다면 그 전편에 해당하는 본 작품은 밑밥을 까는 데 주력한 모양새다. 20년 전 반지의 제왕 3부작 중 <반지원정대>가 가졌던 포지션과 거의 정확히 일치하는 셈이다.
문제는 비교적 선악 대립이 분명했던 반지의 제왕에 비해 듄의 세계관은 본격 왕좌의 게임 느낌이 물씬 나는 정치 드라마+생태계 개념이 진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편만 보고서는 그 세계관이 온전히 이해되기 어렵고 원작 팬들이라면 탄성을 지르며 그 재현 수준에 두근거릴 장면에서 멀뚱멀뚱 지켜볼 관객이 (특히 국내에선) 적지 않을 거란 점이다. 한데 이는 어쩔 도리가 없는 문제다. 원작소설은 그 1권이 출간되자마자 그 반지의 제왕과 비견되는 평가를 받는 현대의 고전이 되어버린지라 그 저변의 광대함을 전제하고 만드는 영상화이기 때문이다.
아직 2021년판 영화에선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지만 (1984년판에선 도입부에 세계관과 역사, 정세 상황을 요약해 놨다) 속편에서는 본격적으로 원작이 던지던 20세기 전반 실제 지구 역사의 은유와 함께 권력과 지배에 대한 우화가 시작될 테다. 그 첨예한 대결과 전쟁을 기다리며, 무엇보다 위대한 모래벌레 '샤이 훌루드'의 현신을 스크린에서 목도할 수 있게 해준 21세기 영화의 '만신전'에 경배를 올려야 할 때다. 그 전에 예습을 좀 하면 온전히 <듄>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짧지 않은, 하지만 실제 원작의 거대한 우주적 세계관으로는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주저리를 날린다.
<작품정보> |
듄 Dune
2021년|미국|SF/판타지, 스페이스 오페라
2021.10.20. 개봉|155분|12세 관람가
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티모시 샬라메, 레베카 페르구손, 오스카 아이작, 조시 브롤린, 장첸, 제이슨 모모아, 하비에르 바르뎀, 젠데이아, 샤론 던컨-브루스터, 스텔란 스카스가드, 데이브 바티스타,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 샬럿 램플링
음악 한스 짐머
제작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 워너 브라더스
수입 및 배급 워너 브라더스
원작 프랭크 허버트 소설 "듄"(19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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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