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놈2>
소니픽쳐스
그러나 에디는 인터뷰 도중 의도치 않게 캐서디가 빌런 '카니지'로 거듭나는 빌미를 제공하고, 세상 밖으로 나온 카니지는 옛 연인이자 돌연변이인 '프랜시스 배리슨/슈리크(나오미 해리스)'를 구함과 동시에 자신을 사형의 길로 인도한 에디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세운다. 이에 에디와 베놈은 카니지에 맞서 다시 한번 안티 히어로의 여정에 나선다.
2018년에 개봉했던 <베놈>은 혹평과 호평을 동시에 들은 작품이었다. 주인공 에디와 베놈이 한 몸을 공유하게 되는 과정에서의 개연성 부재, 흥행을 위해 관람 등급을 내리려는 수단으로 자행된 분량 편집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반면에 스파이더맨의 숙적이라는 유명세, 톰 하디의 열연, 그리고 외계 괴물에 걸맞은 강렬한 비주얼과 독특한 액션 연출은 시리즈의 성공적인 시작을 알리는 발판이기도 했다. 이에 베놈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는 빌런 카니지의 등장을 예고한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에게는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은 발전시켜서 시리즈를 안정적으로 확장시켜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그러나 수 차례의 개봉 연기 끝에 3년 만에 공개된 속편 <베놈 2>는 그저 전편을 답습한 범작에 그치고 말았다.
당장 <베놈 2>의 구성은 같은 스케치에다가 색만 검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꿔 칠한 그림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전편과 유사하다. 전편의 세 가지 플롯인 에디 브룩과 베놈의 관계 형성, 베놈과 빌런과의 대결, 연애와 커리어에서 실패를 겪는 에디의 개인사에 카니지의 탄생 경위만 더하면 정확히 <베놈 2>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해 결국 베놈의 자식이자 숙적인 카니지와 그의 숙주인 캐서디의 매력과 완성도에 따라 영화의 만족도가 좌우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베놈 2>는 결정적인 문제를 노출한다.
사실 캐서디라는 인물 자체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피에 집착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를 캐릭터는 정형화된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우디 해럴슨의 열연 덕분에 이 빨간 괴물은 개성과 생동감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클리터스 캐서디와 에디 브룩 사이에 가정 학대와 폭력의 피해자라는 공통의 유년 시절을 위치시킨 것도 카니지와 베놈의 대결을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둘 모두에게 반사회적 동기를 심어주면서 빌런과 안티 히어로의 대결에 부합할 만한 감정선과 당위성을 안기기 때문이다. 이는 에디와 베놈이 공유하는 소외감과 패배감을 부각해 최소한의 개연성을 확보했던 전편의 스토리텔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외에 카니지에게 부여된 서사와 그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이 들려주는 불협화음은 위의 장점을 모두 잊게 만든다.
작중 캐서디의 이야기는 또 다른 빌런 슈리크와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학창 시절부터 이어져 온 둘의 비극적인 로맨스는 캐서디의 중요한 심리적 동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로맨스가 진부함으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슈리크를 캐서디가 구하러 간다는 전개, 두 연인이 결혼식을 올리고 슈퍼카를 타고 도심을 질주하는 장면들은 2016년 작품인 <수어사이드 스쿼드> 속 조커와 할리퀸을 보는 듯한 기시감으로 가득하다.
캐서디와 슈리크의 이야기가 작위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는 초반부에 둘이 헤어진 후 한 명은 정신병원에 갇히고 다른 한 명은 살인범의 길에 들어서는 과거를 팀 버튼의 영화와 같은 그로테스크한 표현주의적 스타일로 간략히 보여준다. 그런데 이 짧은 오프닝에는 우연히도 추후에 일어날 사건들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 모두 등장하며, 이들은 또 우연히 한 데 모이기도 한다. 이처럼 과도하게 운과 우연에 기대는 전개는 몰입도를 헤칠 뿐만 아니라 카니지 및 그와 관련된 캐릭터들이 단지 이야기 진행을 위한 도구로 소비되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영화는 캐서디의 여러 과장된 시적 대사를 통해서 연인의 행보를 암시하는데, 정작 해당 대사들이 복선이라는 사실이 너무 또렷하다 보니 어떤 사건이 벌어져도 충격이나 긴장감 등이 고조되지 않는 문제도 나타난다.
진일보하지 못한 주인공 서사
그렇다고 주인공의 서사가 진일보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전편에서 베놈과 에디의 관계성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각자의 공동체와 인생에서 실패자와 패배자로 낙인찍혀 소외당한 이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의기투합해서 사회에 존재감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충분히 감정적으로 어필할 만한 힘이 있었다. 문제는 <베놈 2>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데 그친다는 사실이다. 물론 에디와 베놈을 분리하여 각자의 심리나 내적 고민을 한층 깊이 살펴보려는 시도를 통해 차별화를 꾀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 대목조차 희화화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둘의 갈등과 이별, 그리고 재회의 과정은 그저 중재자 역할을 하는 앤의 분량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면적이고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래도 이미 호평받았던 액션의 경우 한층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며 오락 영화로서의 본분을 다한다. 카니지는 베놈과 차별화되는 비주얼과 능력을 앞세워서 감옥에서의 탈옥 장면처럼 다양한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늘어난 제작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CG를 통해 꾸며진 액션신도 눈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전편과 달리 베놈과 카니지가 끝까지 박력 있고 육중하며 강렬한 액션을 유지하는 것이나, 배경 장소의 디자인 등에서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3>을 연상시키는 클라이맥스에서의 마지막 대결도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