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스포츠에서 정상의 자리는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아깝게 우승을 하지 못한 팀은 다음 시즌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구단차원에서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지만 정상에 등극한 팀은 투자보다는 성과에 만족하고 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로 스포츠에서 '디펜딩 챔피언' 팀들은 우승 당시의 전력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시즌 준비를 했다고 평가 받는다.

2010년대 중반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는 V리그 여자부에서 가장 화끈한 투자를 하는 팀으로 유명했다. 도로공사는 2014년 정대영과 이효희(도로공사 코치)를 시작으로 2016년 배유나, 2017년 박정아 등 대형스타들을 차례로 영입하며 FA시장의 '큰 손'으로 군림했다. 그 결과 2017-2018 시즌 도로공사는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챔프전에서도 IBK기업은행 알토스를 꺾으며 프로 출범 후 첫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감격적인 첫 우승 이후 3년의 시간이 지났고 도로공사는 2019-2020 시즌 최하위에 이어 지난 시즌에도 6개 구단 중 4위에 머물며 봄 배구 진출에 실패했다. 시즌이 끝난 후 계약기간이 끝난 김종민 감독에게 재신임을 보낸 도로공사는 이번 시즌에도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택했다. 과연 최근 4~5년 동안 비슷한 선수 구성을 유지하고 있는 도로공사는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목표했던 결과를 달성할 수 있을까. 

전력 유지했지만 두 시즌 연속 봄 배구 실패
 
 1995년생 이고은 세터는 내년이 되면 도로공사 주전들 중 유일한 20대 선수가 된다.

1995년생 이고은 세터는 내년이 되면 도로공사 주전들 중 유일한 20대 선수가 된다. ⓒ 한국배구연맹

 
2017-2018 시즌 통합우승, 2018-2019 시즌 챔프전 준우승을 차지했던 도로공사는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 종료된 2019-2020 시즌 26경기에서 7승에 그치며 최하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시즌 직전 부상을 당한 셰리단 앳킨슨의 대체 선수로 '사고뭉치' 테일러 쿡을 영입하는 순간부터 도로공사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시즌 중반 다야미 산체스로 외국인 선수를 교체했지만 복잡하게 꼬인 매듭은 시즌이 종료될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도로공사는 작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실질적인 2순위 지명권을 가지고도 터키리그 BEST7출신의 헬렌 루소 대신 상대적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켈시 페인을 지명했다. 이효희 세터의 은퇴로 구멍이 뚫린 세터 자리에는 트레이드를 통해 이고은 세터를 영입했다. 팀의 활력소 유서연과 유망주 세터 이원정(이상 GS칼텍스 KIXX)을 내줬지만 당시 도로공사에는 풀타임으로 활약해 줄 수 있는 주전세터 영입이 더욱 시급했다.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았던 외국인 선수 켈시의 활약은 분명 기대 이상이었다. 켈시는 코로나19로 안나 라자레바(페네르바흐체 SK)와 루소(PTT 스퍼) 같은 수준 높은 외국인 선수들이 대거 한국행을 선택했던 지난 시즌 득점 4위(756점)에 오르며 '클러치박' 박정아와 함께 도로공사의 쌍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켈시는 시즌 중반 퇴출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씻고 6개 구단 외국인 선수 중 유일하게 재계약에 성공했다.

프로필 신장 170cm의 '꼬꼬마 세터' 이고은도 데뷔 첫 풀타임 주전 시즌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백업세터 이원정의 이적으로 사실상 시즌 전체를 혼자 이끌어야 했던 이고은 세터는 6개 구단 주전 세터 중 가장 많은 3357번의 세트를 시도하며 가장 많은 세트 성공(1234회)을 기록했다. 물론 이고은이 풀타임으로 활약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만큼 백업세터 안예림의 성장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록 봄 배구 진출은 실패했지만 도로공사가 자랑하는 베테랑 중앙공격수 듀오는 여전히 뛰어난 경쟁력을 자랑했다. V리그 최고령 선수 정대영은 시즌 막판까지 한송이(KGC인삼공사)와 치열한 경쟁을 펼친 끝에 블로킹 부문 2위에 오르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부상 후유증을 완전히 떨친 배유나도 속공 10위(39.25%)와 블로킹 3위(세트당 0.61개)에 오르며 '배구천재'의 위용을 마음껏 뽐냈다.

베테랑 선수들의 기량은 영원하지 않다
 
 도로공사는 도쿄 올림픽을 통해 더욱 성장한 박정아의 활약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도로공사는 도쿄 올림픽을 통해 더욱 성장한 박정아의 활약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도로공사는 김종민 감독과의 재계약을 제외하면 올해도 비교적 조용한 오프시즌을 보냈다. 외국인 선수 켈시와의 재계약과 팀 내 유일한 FA대상자 하혜진(AI페퍼스)과의 재계약 실패가 지난 봄 도로공사의 큰 뉴스였을 정도. 여기에 배유나 부상 당시 센터로 활약해주던 최민지마저 신생구단 특별지명을 통해 AI페퍼스로 이적했다. 이에 도로공사는 2016년 임의탈퇴로 팀을 떠나 있던 하유정(개명 전 하준임)을 영입하며 센터진을 보강했다.

하혜진이 AI페퍼스로 이적하면서 얻은 1라운드 4순위 지명권으로는 185cm의 좋은 신장을 가진 중앙여고의 센터 이예담을 지명했다. 현역시절 국가대표 센터로 활약했던 홍지연의 딸이기도 한 이예담은 어린 시절부터 엄마를 비롯해 장윤희(중앙여고 감독), 이도희, 김철용 감독 등 여자배구의 레전드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자랐다. 2라운드에서는 이고은의 백업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수원시청 소속의 이윤정 세터를 지명했다.

눈에 띄는 확실한 전력보강이 없었던 도로공사는 지난 도쿄 올림픽을 통해 한층 성숙한 기량을 발휘하며 한국의 4강진출을 견인했던 '클러치박' 박정아의 더 좋은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V리그 여자부 정상급 토종공격수로 불리면서도 아직 한 번도 최고의 스타가 되진 못했던 박정아가 이번 시즌 'MVP급 활약'을 통해 도로공사를 상위권으로 이끈다면 박정아를 바라보는 배구팬들의 눈높이도 달라질 것이다.

여전히 든든한 '리베로급 수비'에 비해 공격에서 아쉬움을 보였던 문정원은 지난 시즌 28.88%의 성공률로 102득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이에 김종민 감독은 백업 윙스파이커 전새얀을 자주 코트에 내보냈는데 전새얀은 지난 시즌 31.09%의 성공률로 140득점을 올리는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지난 시즌 27.37%에 그쳤던 리시브 효율을 30% 이상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면 이번 시즌에도 공격력이 좋은 전새얀의 출전시간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여자부 7개 구단 중 평균연령이 가장 높은 도로공사는 2022년 새해가 밝으면 이고은 세터를 제외한 주전 선수 6명이 모두 한국 나이로 서른을 넘기게 된다. 이들이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며 코트에서 활약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최근 두 시즌 동안 하위권에 맴돌며 김천의 홈팬들을 실망시켰던 도로공사가 이번 시즌에는 반드시 눈에 보이는 성과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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