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강새벽 역을 맡은 정호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강새벽 역을 맡은 정호연. ⓒ 넷플릭스

 
 
루이 비통 익스클루시브와 샤넬 캠페인 등을 거치며 모델로서 승승장구하던 이가 어느 순간 모든 걸 내려놨다. 오디션 합격 전화에 당장 뉴욕 일정을 취소하고 한국으로 날아온 덕에 정호연은 신인 배우로서 대중에게 분명하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오징어 게임> 속 강새벽은 정호연에겐 하나의 큰 산이었다. 연기 경험이 전무한 그는 북한 사투리와 액션까지 소화해야 했다. 특히나 삶의 나락에 빠진 인물이 목숨을 걸고 서로를 속고 속이는 게임을 펼치는 가운데 새벽은 오히려 인간미를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건드리기도 했다. 강자들의 연합을 뒤로 하고 앳돼 보이는 지영(이유미)과 팀을 맺고 마지막 대결을 벌이는 구슬치기 에피소드가 특히 감정적으로 시청자들에게 강하게 다가올 법하다. 

1일 오후 온라인으로 만난 정호연은 밝은 기운이 가득했다. 하루 자고 일어날 때마다 SNS 팔로워 수가 수십 만씩 증가하는 인기를 새삼 실감하고 있었다. "유미랑 통화했는데 제가 축하해요 대스타님! 이러니까 유미가 축하합니다. 월드 대스타님! 이라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며 정호연은 근황부터 전했다.   

강새벽이 되기까지

극중 강새벽은 새터민 출신으로 살면서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채 홀로 동생을 키우고 있는 인물로 나온다. 드라마에 직접 나오진 않지만 정호연은 본인의 평소 성격과 전혀 다른 강새벽을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새벽의 일기를 쓸 정도였다고 한다.
 
북한을 탈출하며 있었던 일, 중국에서 겪은 일들을 세세하게 쓰며 새벽이와 가까워지려 했다. 중국에서 숨어 지내다가 공안에 들켰는데 엄마가 남매를 구하기 위해 희생당했다고 생각했다. 동생 철이를 잘 부탁한다는 엄마의 마지막 말까지 일기장에 적어가며 연기를 준비했었다. 그리고 새터민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면서 그분들의 삶이 어떤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찾아봤던 것 같다. 제가 연기도 액션도 처음이라 사투리 수업과 함께 무술 수업도 들었다. 감독님이 우리 드라마는 막싸움인데 왜 그렇게 열심히 무술을 배우냐고 하셨다(웃음). 제가 아무래도 경험이 없으니 기본부터 배워놔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거다. 

오디션을 봤을 당시 정호연은 이제 막 소속사를 옮긴 직후였다. 주변에서 보기엔 정점을 찍고 있는 잘 나가는 모델이었지만, 스스로는 미래를 고민하던 시기였다고 한다. 그는 "일이 점점 줄기 시작하던 때가 있었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위기라고 생각했던 때였다"고 운을 뗐다.
 
그때 시간이 너무 많이 남다 보니 영화와 책을 보며 지냈다. 깊게 파게 되더라. 좋아하는 감독이 생기면 전작을 다 찾아보게 되고, 배우들의 작품도 하나씩 보며 연기라는 표현 방식에 욕심이 생긴 것 같다. 모델 에이전시 계약이 끝난 직후 배우 전문 소속사로 옮기게 됐다. 하나씩 단계를 밟자는 생각이었는데 새 회사 대표님이 오디션 대본을 주셨다. 계약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이고 연기 경험이 없어서 트레이닝을 거치고 기회가 올 줄 알았는데 바로 주신 거였다.
 
너무 막막하고 부담도 있었지만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하려 했다. 냅다 새벽이를 파기 시작했다. 고통스럽다면 고통이겠지만, 돌아보니 재밌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3일 간 오디션 영상을 만들어 보냈는데 감독님이 보고 싶다고 하셔서 바로 한국으로 날아갔다. 무조건 캐스팅이 돼야 한다는 생각보단 제가 열심히 준비한 걸 누군가가 가치 있게 봐주셨다는 의미가 컸던 것 같다. 그때 패션 위크를 앞두고 있었는데 실물 오디션 자체가 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중 구슬 게임 장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중 구슬 게임 장면 ⓒ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으로 이타적 삶 고민하게 돼"

그렇게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 원색 계열의 세트장, 매번 바뀌는 게임 설정으로 현장에 갈 때마다 감탄하기도 했지만 연기적으로는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정호연은 "세트장이 대전에 있었는데 어느 날 제가 스스로 너무 만족스럽지 못한 연기를 한 뒤 박해수 선배랑 김주령 선배와 산책을 하다가 울었다"고 고백했다.
 
울면서 두 분께 대체 연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해수 선배는 이미 충분하다고 말씀해주셨고, 주령 언니는 같이 풀어나가자며 본인도 불안하고 그렇다며 격려해주셨다. 극중 지영 역을 한 유미라는 친구를 제가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구슬치기 신에서) 유미도 부담을 많이 느꼈다더라. 둘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울면 안 되는데 자꾸 눈물이 터져 나왔다. 유미가 웃긴 표정을 지으면서 제 눈물을 멈추게 할 정도로 서로가 서로를 많이 의지했고, 잘 해보려 노력했다. 

솔직히 제 연기에 아쉬움은 굉장히 많다. 10점 만점에 5점! 근데 새벽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이번 작품으로 크게 배운 게 가치 있는 삶을 질문하게 됐다는 것이다. 새벽이를 만나기 전까지 전 개인의 이익과 목적을 추구하며 산 것 같은데 새벽이는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이타적 사람이었다.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 게임에 참여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게 사실 표현하기 어려운 지점이었지만, 저도 남을 위하며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정호연은 작품에 등장하는 게임 다수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땅따먹기나 공기놀이를 주로 했는데 그건 작품엔 나오지 않았고, 어릴 때 무궁화 꽃이피었습니다를 하다가 넘어져서 턱이 찢어진 적이 있었는데 오징어 게임이란 게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며 그가 웃어보였다.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했는데 현장에서 찍힌 스틸 사진을 보니 저와 유미, 주령 언니가 바닥에 누워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있더라. 그만큼 선배, 동료분들과 즐거운 기억이 많다. (진행 요원이 입던) 핑크 슈트도 탐났다. 준호 역의 위하준 선배와 동선이 겹칠 때마다 되게 멋있어 보였다. 우리는 다 늘어난 체육복을 입고 다니는데 말이지(웃음). 새벽이 말고 해보고 싶은 역할? 알리를 해보고 싶다. 오징어 게임 테스트라는 게 있더라. 어떤 캐릭터로 참가하게 될 것인가를 묻는 건데 전 알리가 나왔다. 근데 전 상우(박해수)에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웃음)

해맑게 일화를 전하는 모습에선 영락없는 20대의 밝음이 느껴졌다. 연기자 데뷔를 이처럼 큰 화제작으로 한다는 건 스스로에게도 큰 행운일 터. 정작 정호연은 "너무 감사하지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속생각을 드러냈다. 
 
부족한 게 많은 연기자라서 부담이 더 되기도 한다. 모델로서는 사실 프리랜서일 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바닥부터 시작했다. 부침도 있었고. 어렸을 땐 단순히 키가 크니 모델을 해보라는 지인들 권유로 시작하게 됐는데 알고 보니 제가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더라. 모델 일도, 그리고 연기도 그렇게 애착을 느끼고 있다. 

언젠가 박해수 선배랑 통화헸는데 두 발을 땅에 잘 딛고 있자고 하시더라. 요즘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되새기는 말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 있다. 제가 하는 일에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하겠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이 미리 겁먹지는 말자는 생각이다. 정말 한발 한발 땅을 딛으며 열심히 해나가겠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