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최선의 삶>을 연출한 이우정 감독.

영화 <최선의 삶>을 연출한 이우정 감독. ⓒ (주)마일스톤컴퍼니

 
학창 시절을 지내온 이라면 누구나 이유 모를 관계의 아픔이라는 걸 겪었을 것이다. 사춘기의 예민한 감수성 탓만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때는 스스로의 힘으로 풀 수 없는 꼬인 상황에 남몰래 괴로워하거나 체념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냈을 수도 있다. 친구나 가족이 세상의 전부였던 10대의 세상은 그렇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일들로 채워질 때가 있는 법이다.

1일 개봉한 영화 <최선의 삶>은 바로 또래인 세 캐릭터를 통해 그 아픔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단짝이던 세 사람이 갈라서고 심지어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게 되는 이야기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임솔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가 세상에 공개되기까지 4년이 걸렸다고 한다. 1984년생, 서른 중반에 첫 장편을 내보이게 된 이우정 감독을 서울 사당동의 한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오랜 악몽이 좋은 현실로 돌아오다

제작사의 책 선물이 발단이 됐다. 이우정 감독의 단편 <애드벌룬>, <서울생활> 등을 봐 온 ㈜마일스톤컴퍼니 관계자가 왠지 감독이 좋아할 것 같다며 소설을 건넸고, 피하고 싶던 과거의 기억과 마주한 감독은 영화로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때가 2017년 초였고,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게 된 2019년 상반기까지 이우정 감독은 시나리오를 만지작거리며 지금의 이야기를 짜나갔다. 원작에선 중학생으로 설정돼 있는 강이(방민아), 아람(심달기), 소영(한성민)을 고등학생으로 설정했고, 폭력 묘사나 끔찍한 사건 묘사는 에두르면서 세 사람 관계에 집중한 게 영화의 주 골격이 됐다. 

"제가 할 수 있는 부분과 못하는 부분을 기준으로 각색을 해나갔다. 결국은 배우들이 글을 재현해내는 것이기에 지금 배우들과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원작보다 나이를 올리게 됐다. 영화는 강이의 회고 방식으로 흘러간다.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일들, 그러니까 왜 내게 등 돌렸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대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게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감정을 풍부하게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원작자인 임솔아 작가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봤고, 나름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판권 계약 이후 누구보다 영화 제작을 걱정해주고 안부를 물은 이가 임 작가였다. 사소한 고민까지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 이후 최근에야 임솔아 작가는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메여있던 악몽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이렇게 좋게 돌아올 줄 몰랐다, 고맙다"고. 

여기에 더해 영화화 초기 과정부터 출연을 결정하고 3년 넘게 기다린 배우 심달기, 한성민도 고마운 존재였다. 강이와 소영 간의 갈등 상황에 방관자처럼 있다가도 강이가 따돌림당할 때 말없이 곁에 머물러 주는 아람은 애초부터 심달기로 낙점된 상황이었다. 모델 출신으로 차갑고 신비한 매력이 있는 한성민 또한 비슷한 시기에 출연 결정을 했다.

2019년 제작이 본격화 됐을 무렵 만나게 된 방민아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다 털어놓으면서까지 강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세 배우는 촬영 직전 따로 만남을 자처하며 실제 친구처럼 허물없이 가까워졌고, 현장에서도 함께 군것질하고 밤늦게까지 한 방에 모여 대화할 정도였다고 한다.

"심달기 배우는 원래 아는 사이여서 소설책과 시나리오를 가장 먼저 드렸다. 오랜 시간 만나며 그의 어린 시절이 아람과 매우 비슷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 버려진 물건을 주워오는 습관 등. 오히려 소영이를 표현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한성민 배우와 시나리오 각색 과정에서 정말 많이 얘기했다. 유치하지만 (100문 100답처럼) 소영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서 드렸고 성민 배우가 생각하는 소영에 대한 답을 받기도 했다. 거기서 힌트를 많이 얻었다. 최종 시나리오엔 빠졌지만 소영의 아픈 과거사, 가정환경이 묘사된 지점도 있었다.

소영이와 강이의 싸움 장면이 있었는데 끝까지 안고 가다가 결국 편집 때 빼게 됐다. 다른 사건은 원작과 달리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뉘앙스만 남겼지만, 원작에선 정말 들숨 날숨까지 세세하게 표현돼 있기에 그 싸움 장면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배우들도 액션 스쿨에 다니면서 연습했다. 근데 시나리오 때도 그랬고, 촬영 때도 날씨 때문에 굉장히 애를 먹었다. 저라는 사람이 재현하기 어려운 장면이더라. 제작사에서도 제가 어려워하는 장면은 한번 빼놓고 작업해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것이 우리의 최선'이라는 말에 대해
 
 영화 <최선의 삶> 관련 이미지.

영화 <최선의 삶> 관련 이미지. ⓒ (주)마일스톤컴퍼니


제도권 교육 밖에서 겉도는 학생들 이야기 같지만, 이우정 감독은 "어느 정도 평범한 선에 있는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강했다고 한다. 10대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쉼터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감독은 "강이, 아람, 소영에 대해 내가 안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생각이 커졌다"고 고백했다. 

"어떤 영화들은 감독이 이야기와 인물을 다 이해하고, 아주 잘 설계했기에 매력적으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최선의 삶>은 그렇게 접근할 때 오만한 영화가 될 것 같았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배우들에게 최대한 맡기자고 생각했다. 배우들과 얘기하면서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영화를 본 분들은 자신 안에 강이 모습도, 소영이 모습도 몇 프로씩 있다고들 했거든. 전, 많은 부분이 강이랑 비슷하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을 땐 아람인 척했고, 영화를 찍을 땐 소영이처럼 되더라(웃음)."

단순히 영화를 좋아해서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했고, 다음해에 같은 학교 연극영화과에 재입학했다. 대학교 은사를 도와 편집 보조를 시작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고, 단편 연출과 친한 지인들 영화에 종종 배우로도 참여해왔다. "다른 감독의 현장에 가는 게 재밌었다. 배우들과 눈을 마주하며 연기와 감정을 던질 수 있다는 게 짜릿하게 다가왔다"며 이우정 감독이 말을 이었다.

"연기에서도 제 한계를 정확히 봤다. 그래서 그쪽으로 해야겠다는 유혹은 전혀 없었지. 그간 영화 연출을 하면서 솔직히 좌절의 시간이기도 했다. 다른 일을 해본 적 없기에 더 좌절하기도 했다. 영화일 하는 동네 친구들이 몇 있다. 그 친구들과 같이 한탄하는 시간도 꽤 보낸 것 같다. 

지금은 일단 큰 숙제를 끝낸 거 같아서 후련함이 있다. 영화 촬영을 정말 오랜만에 한 건데 새삼 정말 이 일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그 전까진 집 안에서 세상을 욕하고, 날 욕하고, 영화를 저주하긴 했다(웃음). 영화 현장의 맛을 다시 본 게 너무 좋았다. 그 시동이 꺼지기 전에 얼른 다음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것이 우리의 최선이었다'. 이우정 감독의 머릿속을 맴도는 말이란다. 그는 "<최선의 삶> 통해 배우들, 스태프들과 마음껏 웃기도 했고 슬퍼할 때는 매우 깊이 슬퍼했다"며 "그럴 수 있었다는 게 되게 고맙다. 감정의 평균치로 눌러가며 일상을 살아가곤 하는데 대놓고 기쁘고 슬퍼했다는 게 엄청 뿌듯하다"고 고백했다.

"우리 영화가 아주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보시게 된다면 마음 속에 묻어두려고만 했던 기억과 감정을 오랜만에 꺼내 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걸 마주했을 때 과거의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이게 지금의 가장 큰 바람이다."
 
 영화 <최선의 삶>을 연출한 이우정 감독.

"영화 현장의 맛을 다시 본 게 너무 좋았다. 그 시동이 꺼지기 전에 얼른 다음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 (주)마일스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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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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