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에서 새로운 '이변의 한 장면'을 써낸 평택 라온고등학교 야구부의 역사가 어디까지 이어질까. 라온고등학교는 지난 13일부터 북일고 야구장, 공주시립 박찬호 야구장에서 개최된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학교 역사상 가장 높은 기록인 결승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공주고등학교, 김해고등학교를 꺾으며 8강 고지에 오른 라온고등학교는 디펜딩 챔피언 강릉고등학교, 그리고 준결승에서 서울고등학교까지 차례로 누르는 '대반란'을 일으켰다. 지난 2016년 창단해 5년 정도의 역사밖에 되지 않은 신생 학교 라온고가 써낸 기록은 만화의 한 장면이라 해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

결승에서 만나는 상대팀은 충암고등학교다. 대통령배와는 2년 전 준우승, 31년 전 우승이라는 인연이 있는 학교다. 충암고 역시 만만치 않은 전력으로 팀을 꾸리며 31년 만의 우승기 탈환이라는 목표에 다가서고 있다. 

'파죽지세' 라온고, 생애 첫 전국대회 결승 가다
 
 제55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한 라온고 선수들이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제55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한 라온고 선수들이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 박장식

 
라온고등학교. 삼성 라이온즈에서 맹활약하는 신인 김지찬 선수 정도만이 알려진 이 학교는 올해 고교야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학교가 되었다. 특히 지난 19일 열린 8강전에서 지난해 대통령배, 올해 황금사자기 우승 기록을 써낸 강릉고를 마운드의 힘, 타선의 집중력으로 꺾으며 창단 이후 첫 4강 진출의 기록을 썼다.

결승 나들이도 인상 깊었다. 20일 열린 준결승전에서는 수도권 강팀으로 꼽히는 서울고를 만났다. 라온고는 지난 2019년 대통령배에 출전해 1회전에서 만난 서울고등학교를 집으로 돌려보냈던 전적이 있지만, 강릉고와의 경기에서 좋은 선수들을 많이 소진한 라온고의 우세를 점치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난세에 영웅이 나타났다. 3학년 조우석 선수가 8.2이닝을 1실점으로 책임지는 대활약을 펼친 것. 조우석은 이날 경기에서 105구를 꽉 채워 던지는 인생투를 던졌다.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단 하나의 공만을 남기고 아쉽게 마운드를 내려간 조우석 선수는 서울고의 마운드를 틀어막으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타격에서도 선수들의 활약이 빛났다. 리드오프 차호찬을 비롯해 박성준, 박찬양 등 선수들이 타선에서 제 역할을 해내며 점수를 만들어냈다. 결국 최종 스코어는 4대 1로, 라온고등학교가 써내려가는 '신생 학교의 새 역사'가 결승전까지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 

라온고등학교 강봉수 감독은 "이런 파죽지세를 예상했다"며 껄껄 웃었다. "고창에서 전지훈련을 3주 정도 했었다. 전지훈련에서 인상 안 쓰고, 너무 열심히 잘 해준 선수들에게 너무 고맙다"며 결승 진출까지의 비결을 소개한 강 감독.

특히 결승 진출에 대해서는 "8강전에서 에이스 선수들을 소진한 탓에 긴장을 많이 했는데, 조우석을 믿고 갈 데까지 간 덕분에 결승까지 오른 것 같다"며 조우석 선수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창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학교의 우승 장면을 텔레비전으로만 지켜봐야 했다"며 '신생팀의 고충'을 전했던 강봉수 감독. 강 감독은 "이 행복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면서, "빨리 아이들이 따라와주어서 고맙다. 결승까지 간 이상 아이들이 투지를 갖고 이기기 위해 잘 임할 것. 충암고라는 강팀을 꼭 이기겠다"라고 각오했다.
 
 제55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결승전에서 '투혼의 투구'를 펼친 조우석 선수.

제55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결승전에서 '투혼의 투구'를 펼친 조우석 선수. ⓒ 박장식

 
준결승에서 투혼의 승리를 챙겨간 조우석 선수는 "준결승에서 '잘 던져야지'라는 생각보다는 한 구 한 구 던질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겠다는 생각으로 던졌는데, '인생투'가 된 것 같다"며, "볼 하나를 남기고 완투 못한 것은 아쉬운데, 이 정도면 충분히 잘 한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준결승의 결과를 '인생투'라고 해도 될 것 같다는 조우석 선수는 "1학년 때 야탑고를 다니다가 1년 반 정도 야구를 그만 두었다. 다시 야구를 하고 싶어 라온고에 오게 되었는데, 감독님께서 받아주셔서 '올해가 마지막 야구'라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잘 되어 놀랍다"면서, "뒤에 좋은 선수들이 나오니 결승전은 믿고 응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리드오프로 대회 내내 좋은 활약을 펼친 차호찬 선수는 타격 밸런스가 맞지 않아 고민이 컸단다. 하지만 최대한 앞으로 치자는 생각으로 예선부터 지금까지 온 것 같다고. 차호찬 선수는 "서울고와 마지막 경기 하고 돌아갈 줄 알았는데, 결승까지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후회 없이 해서 좋은 결과 나온 것 같다"며 웃었다.

라온고 야구부의 장점을 "분위기도 좋고, 내 밝은 성격과 맞는 면이 있다"는 차호찬 선수는 "감독님께 이번에 우승 안겨드리고 싶다. 최대한 열심히 하겠다"면서, "결승전에서는 타석에서 내 스윙을 풀어나가면서, 강한 타구를 날리는 멋있는 플레이를 하고 싶다"고 다짐도 전했다.

'31년의 기다림' 충암고를 뚫어라
 
 제55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결승까지 진출한 충암고 선수들의 모습,

제55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결승까지 진출한 충암고 선수들의 모습, ⓒ 박장식

 
반면 상대하는 충암고등학교 역시 결승까지 험난한 길을 올랐다. 8강까지 부경고교, 청담고교 등을 꺾고 결선 레이스에 뛰어든 충암고는 8강에서 마산용마고등학교, 4강에서 인상고등학교를 꺾으면서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특히 '신흥 강자' 마산용마고와 인상고를 차례로 꺾으며 페이스 역시 올라왔다.

충암고는 '전통의 강호'이다. 무려 8번의 4대 전국대회 우승 기록이 있다. 하지만 2011년 황금사자기 우승 이후 10년째 우승기를 들고 흔들지도, 마운드 위에서 얼싸안고 기쁨을 누리지도 못했다. 최근의 가장 좋은 기록은 지난 2019년 대통령배에서의 준우승 정도다.

충암고등학교 역시 강력한 선수들을 여럿 그라운드 위에 올릴 전망이다. 마산용마고와의 일전, 그리고 부경고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2학년 투수 윤영철이 라온고와의 마지막 무대에 선발로 나선다. 4번 타자를 보는 포수 이건희 역시 여전히 안방을 지킬 전망이다.

충암고등학교의 강점이 오랜 전통을 기반으로 한 자신감, 그리고 상대를 맞서는 강한 모습이라면, 라온고등학교의 강점은 '신생 학교' 다운 즐거운 야구를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모습,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루를 비우는 집중력을 들 수 있다. 그런 두 학교의 마지막 일전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이변의 주인공' 라온고등학교, 그리고 '사반세기를 기다려 온 명문' 충암고등학교의 대결은 22일 오후 1시부터 공주시립 박찬호 야구장에서 열린다. 이날 열리는 경기는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어 고교야구 팬들에게 늦은 여름의 즐거움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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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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