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김은혜는 숭의여고 시절부터 이미 동 나이대에서 최고 수준 슈터로 명성을 떨쳤다

선수 김은혜는 숭의여고 시절부터 이미 동 나이대에서 최고 수준 슈터로 명성을 떨쳤다 ⓒ 김은혜님 제공

 
농구 인기가 한창 좋았던 1990년대 초중반 농구대잔치 시절, 농구에 흥미를 느끼던 한 초등학생이 있었다. 우연히 학교 운동장에서 농구공을 던져봤는데 너무 재미있었단다. 활동적인 편이어서 피구, 테니스, 수영, 자전거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지만 농구는 달랐다. 너무 재미있고 매력적이었다. '너는 내 운명'이라는 표현처럼 농구공을 잡는 순간 온몸에 희열이 느껴졌다.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본 후에는 끓어오르는 농구의 매력에 견딜 수가 없었다. "농구 배우고 싶어요!"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부모님께 얘기했다. "안 돼!" 돌아오는 것은 아빠의 반대였다. 축구선수 출신이었던 아빠는 운동 세계가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고 있었고 사랑스러운 딸이 그 길을 밟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승부욕은 타고났던 것일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부모님을 조르고 또 졸랐고 결국 방학 때만 해보겠다는 제한된 허락을 받고 농구를 시작했다. 취미? 흥미? 아이는 그 이상의 열정에 불탔다. 다른 운동선수들처럼 머리를 숏커트로 자르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미 마음 속에서부터 "진짜 선수가 될 거야"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WKBL을 대표하는 명슈터로, 국가대표팀 스나이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농구인 김은혜(39·182cm)의 이야기다. 현역 시절부터 명성을 떨친 그는 은퇴 후에 해설위원, 예능인으로 맹활약 중이다. 그와의 파워 인터뷰는 지난 10일 서면과 전화통화로 진행되었다.
 
 선수 김은혜는 장신슈터로 명성을 떨쳤다.

선수 김은혜는 장신슈터로 명성을 떨쳤다. ⓒ 김은혜님 제공

 
슈터로 기억되는 그녀 김은혜
 
-숭의여고 시절부터 이미 또래 사이에서 최고 수준 슈터로 명성을 떨쳤다던데, 여러 스타일 중 슈터로 활약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농구를 늦게 시작한 데다 마르고 힘이 없어서, 초등학교 때는 몸싸움을 해야 하는데 매일 넘어지고 휘청거렸어요. 이후 고등학교 때까지 키가 꾸준히 자라면서 동료들보다 큰 편이었는데 체격적인 특성 때문인지 센터를 시키지는 않으시더라구요. 그때는 포지션을 대부분 코치님이 정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외곽 위주로 플레이했는데 여전히 힘이 부족해서인지 슛이 마음처럼 쭉쭉 나가지 못했어요.
 
고등학교 올라가는 어느 날 연습게임을 하는데 3점슛에 자신이 없어서 안 던졌더니 코치님께서 바로 경기에서 빼버리셨어요. 그 때부터 독하게 슛 연습을 했고 신경을 많이 쓰며 플레이를 했던 것 같아요. 나름대로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게임 중간에 그렇게 교체를 당하자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저를 슛을 던지게 만드신 분이 이옥자 코치님이십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키가 180cm 정도 됐었는데 신장도 있고 슛거리도 멀어서, 장신슈터로서 장점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프로에서 같이 경쟁했던 슈터 중에서 정말 잘한다, 매력있다고 느낀 슈터는 누가 있을까요?
"
중등 시절부터 (변)연하 언니를 보면서 자랐어요. 그래서 백넘버도 연하 언니를 따라서 10번을 달기 시작했구요. 커가면서 언니와는 다른 스타일의 농구를 하기는 했으나 슈터로서의 움직임 등 여러 기술적인 부분에서 따라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프로팀에 와서는 (박)정은 언니의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했어요."

-KBL, NBA 등에서 좋아하는(좋아했던) 선수 한 명씩만 뽑아주세요.
"KBL에서는 현역 시절 이상민 감독님을 좋아했어요. 저는 농구 선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슈터보다는 가드를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요. 힘으로 하기 보다는 뭔가 날렵하면서도 영리하게, 상대가 보면 얄밉도록(?) 잘하는 스타일? NBA에서는 고 코비 브라이언트와 스테판 커리를 좋아해요. 슛도 잘 넣지만 역시 특유의 영리한 스타일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그녀는 다시 태어나도 농구선수를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농구에 대한 사랑이 깊다.

그녀는 다시 태어나도 농구선수를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농구에 대한 사랑이 깊다. ⓒ 김은혜님 제공


-다시 태어나도 농구선수를 하실 건가요? 포지션도 슈터를 선택하실 건가요?
"다시 태어나도 농구선수를 할 것 같기는 한데요. 음, 슈터 말고 가드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팀 공격을 조율하고 어시스트로 동료들을 살려주는 슛은 실컷 쏴 봤으니 돌파를 잘하는 선수가 되어보고 싶기도 하구요.(웃음)"
 
-현역 시절 올스타 팬 투표 1위도 했을 만큼 팬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여자농구의 우지원, 이상민이라는 얘기도 들었던 것 같은데요.
"그랬나요? 좀 과장된 것 같아요. 인기가 없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저는 주로 여성 팬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제가 수줍음이 많은 편이라 쉽게 친해지지 못해서 금세 떠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연락하며 지내는 팬들 역시 대부분 여성 분들이세요. 참 감사하죠."
 
-입단부터 은퇴까지 프로 생활을 우리은행 한 팀에서 마무리 지은 원팀 프랜차이즈 스타인데,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스물네 살이었나? 첫 FA 때는 이적을 정말 많이 고민했었어요. 외국인 선수가 있던 시절이었거든요. WNBA 레전드 타미카 캐칭스와 20대 초반에 함께 뛰었는데 그 때는 제가 게임을 많이 나가던 시절이 아니었어요. FA가 되던 해에 다시 그 선수가 저희 팀과 계약했다는 얘길 듣는 순간, 함께 뛰어보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더 좋았던 FA 조건들을 모두 거절하고 우리은행에 남게 되었죠. 뭐, 그 이후에는 FA가 돌아와도 이적 생각 자체를 안 했어요. 그냥 이제는 우리은행에 남아야겠다는 생각 밖에 안 들더라고요. 뭔가 큰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우리은행이 좋았던 것 같아요."

-선수 은퇴 후에도 바쁘게 활동하셨어요. 제2의 인생을 위해 어떤 걸 준비했나요?
"20대 후반부터 부상을 심하게 당하면서 은퇴 결심을 좀 이르게 했어요. 미래에 대한 부분도 어느 정도 생각을 했는데도 막상 은퇴를 하니 상당히 막막하더라구요. 우연찮게 친구에게 은퇴 선수들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여성 스포츠 리더양성과정과 해외에서 어학 연수를 할 수 있는 기회까지 받게 됐죠.

미국 대학에서 해외 연수와 스포츠 전반적인 내용들을 경험하고 다룰 수 있는 교육을 받고 돌아왔어요. 운동만 해온지라 다른 경험이 부족한 편이었는데 공부는 물론 WKBL에서 뛰던 외국인 선수들과도 만나게 돼서 여러모로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현역 시절에도 종종 방송에 출연하셨어요. 촬영 중 에피소드 혹시 기억나시는 게 있을까요?
"현역 시절에는 사실 많은 예능에 나가진 않았어요. 소속팀으로 광고나 방송출연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는데 워낙 끼가 없는 편이라 많이 거절했어요. 2006년이었나. 추석 특집으로 여자 스포츠 선수들과 남자 연예인 분들이 나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요. 파트너를 정해서 함께 미션을 수행하는 신에서 방송인 홍록기씨와 커플을 했었어요. 정말 오글거리는 커플 연기를 시키시는데 못하겠더라구요. 거의 울뻔했습니다(웃음)."
 
-<노는 언니>에서 박세리, 남현희, 한유미, 곽민정, 정유인 등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스타들과 만나셨잖아요. 함께 지내본 멤버들은 어떤가요?
"세리언니, 현희언니, 유미, 민정이, 유인이 다 방송에서 나오는 모습이 실제와 비슷해요. 세리 언니는 세심하게 잘 챙겨주시고 듬직해요. 현희 언니는 묵묵하게 소리 없이 강한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뭐든 열심히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유미는 알아온 시간이 15년 정도 됐는데, 사실 이 정도로 예능감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매사에 꾸밈없이 솔직하게 얘기하는 편이고 약간의 허당기도 있는데 그런 부분들을 요즘 시청자분들이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민정이는 정말 분위기 메이커! 리액션도 상당히 커서, 처음 촬영에 갔을 때 쑥스럽고 어색해하는 저를 감싸준 느낌이었어요. 편하게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어요. 유인이는 못하는 게 없어요. 이것저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정말 부러운 성격 중 하나예요."
 
-앞으로 다른 방송에도 출연하실 계획인가요?
"<노는 언니>에는 종종 게스트로 나가고 있구요. 다른 방송에서도 출연 섭외가 들어오긴 했는데 제가 유머러스한 편도 아니고, 여전히 남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할 때가 많아서 적극적으로 출연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고 있어요."
 
 친근하고 공감넘치는 해설로 유명한 김은혜 해설위원의 활약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빛났다.

친근하고 공감넘치는 해설로 유명한 김은혜 해설위원의 활약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빛났다. ⓒ 김은혜님 제공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해설위원으로 활약하셨어요. 선수였던 시절과 지금 후배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해설하실 때 어떤 게 다른가요?
"4년에 한번 주기로 많은 대회가 있고 저도 많은 국제대회에 참가해봤지만 올림픽은 못 가봤어요. 그게 가장 아쉬운 점이에요. 그래서인지, 이번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을 후배들이라기 보다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로 바라본 듯 싶어요.
 
12년 만에 올림픽 진출권을 따낸 것,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뛰었던 것 만으로도 대단하니까요. 그렇다 보니 리그 중계를 할 때보다 저 역시도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리그 중계를 할 때는 중립을 지키려고 말을 조심하는 편인데 국제대회는 편파 중계를 해도 되잖아요. 그래서 그냥 막 했습니다.(웃음)"
 
 올해 태어난 아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올해 태어난 아들 그리고 남편과 함께 ⓒ 김은혜님 제공

 
-올해 득남하신 것도 축하드려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많이 힘들진 않나요?
"육아와 일의 중립을 지킨다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일에 치중하다 보면 아들한테 미안해지고 육아만 하고 있을 때는 내가 도태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하고요. 농구선수를 할 때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았고 은퇴 후에 제2의 삶을 살 때는 그것대로 즐거웠어요. 지금은 또 현재의 삶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양쪽 부모님들께서 제가 일하는 것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많이 도와주세요. 이것 또한 정말 감사할 부분이죠."
 
-마지막으로 김은혜님을 사랑하시는 팬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수 시절부터 그랬지만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저를 많이 좋아해 주시고 응원해주시고 베풀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는 데 응원해주시는 만큼 늘 발전하고 나아지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여자농구도 많이 사랑해주시고 저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제가 중계방송을 할 때는 꼭 함께 해주셨으면 더더욱 감사할 것 같아요. 모두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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