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 포스터.? ⓒ 넷플릭스

 
일본 애니메이션의 명성은 예전같지 않다. 그럼에도 그 명맥은 끊기지 않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리를 두고, 호소다 마모루와 신카이 마코토가 경쟁하고 있고 2020년대 들어서도 계속 작품을 내놓고 있다. 그들의 뒤를 이은 세대들도 나왔다. 이시구로 쿄헤이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일본 굴지의 애니메이션 제작자 선라이즈에 입사해 여러 작품들의 연출과 콘티를 담당하다가 2014년 데뷔작 < 4월은 너의 거짓말 >로 대박을 냈다.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여러 걸작 음악물(피아노의 숲, 노다메 칸타빌레 등)과 비견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해마다 내놓은 작품들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그 이후 오랜만에 돌아와 내놓은 작품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다.

헤드폰 소년과 마스크 소녀

어느 지방의 소도시, 17세 소년 체리는 항상 헤드폰을 쓰고 다닌다. 그는 하이쿠를 너무나도 좋아해 수시로 SNS에 올리곤 한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 앞에선 좋아하고 잘하는 하이쿠를 읊는 게 어렵다. 사람들과의 소통이 힘들고 소심한 성격이기 때문. 여름방학에는 허리를 삐끗한 엄마를 대신해 쇼핑몰에서 어르신들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한편, 16세 소녀 스마일은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그녀는 SNS 라이브 방송만으로 수만 명의 팬을 끌어모을 수 있는 유명 인플루언서다. 하지만, 돌출된 앞니와 치아 교정기 때문에 마스크를 끼지 않은 얼굴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도 많고 볼 거리도 많은 쇼핑몰에서 주로 라이브 방송을 한다. 

어느 날, 체리와 스마일은 쇼핑몰에서 일어난 소소한 사고로 서로의 핸드폰이 뒤바뀌고 만다. 이후 그들은 SNS로 인연을 이어나가며 둘만의 교감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체리가 주로 맡아서 돌보는 할아버지 후지야마씨가 찾던 LP가 돌아가신 아내분의 젊은 시절 음반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기억을 잃기 전에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드리고자, 그들은 함께 LP를 찾기 시작한다. 체리와 스마일은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을까?

청춘과 성장, 그리고 하이쿠와 SNS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 콘텐츠들이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모양을 보인다. '왜 그동안 이런 작품을 내놓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좋은 작품도 나온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침체기 그리고 혼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일본 애니메이션 콘텐츠가 급락하면서 벌어지는 반동일 수도 있다.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는 비록 애니메이션이지만 청춘과 성장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초심으로 돌아간 사례로 보인다.

같은 내용과 메시지라도, 실사와 애니메이션은 천지 차이다. 이 작품은 신선하고 색다른 색감과 터치를 보여 줬다. 청량하지만 형형색색으로 가득해, 처음엔 적응하기 조금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기억에 충분히 오래 남을 만한 미장센으로 다가올 게 분명하다. 

또 이 작품만의 특성은 바로 하이쿠와 SNS의 만남이다. 일본의 짧은 정형시 하이쿠는 계절과 자연을 기반으로 한 문자 예술로 서정미를 자랑한다. 한편 SNS는 현대인의 간편하고 편리한 감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도구다. 그런 둘이 만나니 색다른 시너지가 일어난다. 극 중에선, 하이쿠를 좋아하는 체리와 SNS를 잘하는 스마일의 만남이 재밌다. 

사춘기 시절의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감정

작품은 진한 감동의 스토리를 전해 주진 않는다. 거대한 신비를 총천연색 빛나는 작화로 보여 주지도 않는다. 화려한 모험을 애니메이션만의 특성을 살려 눈앞에 생생히 데려오지도 않는다. 세상에 두려운 것도 많고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것도 많았으며 아무도 모를 자신만의 콤플렉스도 있었던 사춘기 시절의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질 뿐이다.

성장은 혼자서 하기는 어렵다. 내가 갖지 못하고 부족한 면을 누군가가 채워 줄 수 있어야 하고, 반대로 누군가가 갖지 못한 면을 내가 채워 줄 수도 있다. 10대 시절의 성장이 그러하고, 앞으로도 평생 성장의 경험은 계속 될 테다. 이 작품은 성장의 시작점을 아프지 않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푹푹 찌는 여름, 7~8월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을 보면 가슴 속에 막혔던 무언가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들 것이다. 같은 계절이지만 푸르른 하늘과 짙은 녹음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 사이다처럼 톡톡 튀는 애니메이션의 진수를 맛보길.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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