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이 8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 후 코트를 떠나고 있다.

김연경이 8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 후 코트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여자배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김연경이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김연경은 8일 세르비아와의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동메달 결정전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오늘이 국가대표로 뛴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라며 대표팀 은퇴 의사를 분명히 했다. 물론 협회와의 상의를 거쳐 은퇴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겠지만 김연경의 의사가 확고하다면 아무리 협회에서 김연경을 설득한다 해도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연경은 2005년 한일전산여고(현 수원전산여고) 3학년 때 처음 성인 국가대표에 선발돼 지난 16년 동안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2020 도쿄 올림픽의 4강 신화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한국 여자배구 영광의 순간엔 언제나 김연경이 있었다. 반면에 김연경이 결장한 국제대회에서 한국은 한 번도 좋은 성적을 올린 적이 없다. 그만큼 김연경이 대표팀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 여자배구는 '포스트 김연경'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물론 한국 여자배구는 지난 10년 넘게 김연경 없이 국제대회를 치른 적이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기 때문에 한 동안 후유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연경이 도쿄 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을 떠난다면 한국 여자배구는 또 다른 주역을 찾아야 하고 현 시점에서 한국의 새 에이스가 될 수 있는 유력 주자는 단연 '클러치박' 박정아다.

서브 리시브 약점 달고 살았던 반쪽 짜리 공격수

지난 2010년 IBK기업은행 알토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한 박정아는 프로 데뷔 첫 시즌이었던 2011-2012 시즌 26경기에서 305득점을 올리며 23경기에서 265득점을 기록했던 팀 동료 김희진을 제치고 신인왕에 선정됐다. 187cm의 좋은 신체조건과 뛰어난 공격력을 겸비한 박정아는 노장 한송이의 뒤를 이어 김연경의 새로운 파트너가 될 유망주로 전문가들과 배구 팬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았다.

남성여고 2학년 시절부터 김희진과 함께 성인 대표팀에 선발됐던 박정아는 런던 올림픽 이후에는 고정적으로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윙스파이커와 아포짓 스파이커, 센터를 오가는 활약을 펼치며 20년 만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하지만 뛰어난 공격력에 비해  서브리시브에서 약점을 보이던 박정아는 소속팀 기업은행에서는 리시브 문제로 언제나 이정철 감독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리고 박정아의 약점은 주전 윙스파이커로 활약했던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본선 첫 경기에서 일본을 꺾고 조 3위로 8강에 진출한 한국은 8강에서 유럽의 강호 네덜란드를 만났다. 네덜란드는 기본기가 좋은 김연경 대신 박정아에게 목적타 서브를 집중했고 수비가 약한 박정아는 이를 감당하지 못했다. 리우 올림픽이 끝난 후 박정아는 감당하기 힘든 악플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박정아는 리우 올림픽이 끝난 후 기업은행에서도 서브 리시브를 면제 받았다. 2016-2017 시즌 기업은행의 외국인 선수가 서브리시브가 가능한 윙스파이커 메디슨 리쉘이었기 때문이다. 박정아는 2017년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로 이적하며 수비강화를 다짐했지만 이적 후에도 박정아의 수비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도로공사의 김종민 감독은 임명옥 리베로와 문정원에게 리시브를 맡기는 '2인 리시브 체제'를 들고 나왔다.

문제는 박정아가 사실상 리시브를 면제 받았음에도 도로공사가 2017-2018 시즌 통합우승, 2018-2019 시즌 준우승으로 꾸준히 성적이 나왔다는 점이다. 도로공사가 주공격수 박정아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리시브의 약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작전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박정아는 어지간한 외국인 선수에게도 뒤지지 않는 V리그 정상급의 공격력을 갖추고 있지만 수비에서는 여전히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대표팀 2옵션으로 맹활약,이젠 주포로 활약해야
 
 6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한국과 브라질의 준결승전. 한국 박정아가 공격하고 있다. 2021.8.6

6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한국과 브라질의 준결승전. 한국 박정아가 공격하고 있다. 2021.8.6 ⓒ 연합뉴스

 
도로공사는 간판선수 박정아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포메이션을 들고 나올 수 있지만 대표팀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대표팀이 박정아를 위한 팀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박정아가 대표팀에 어울리는 퍼즐조각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박정아는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 부임 후에도 꾸준히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지만 좋은 신장과 공격력을 갖추고도 서브리시브 불안으로 수비가 준수한 이재영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하지만 지난 2월에 터진 '쌍둥이 자매 학원폭력 폭로사건'으로 이재영, 이다영이 대표팀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고 박정아는 도쿄올림픽에서 김연경의 윙스파이커 파트너로 낙점됐다. 물론 대표팀의 윙스파이커 자리에는 지난 시즌 챔프전 MVP이자 공수를 겸비한 만능선수 이소영도 있다. 하지만 이소영은 176cm로 신장이 작은 편이라 유럽 및 중남미 선수들과의 경기에서 고전할 확률이 높다. 수비가 다소 불안함에도 박정아가 주전으로 나선 이유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박정아는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한국의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7월 29일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경기에서 서브득점 2개를 포함해 14득점을 올리며 3-2 승리에 도움을 준 박정아는 이틀 후 한일전에서 5세트 12-14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지막 4득점 중 3득점을 책임지며 한국의 극적인 역전극을 이끌었다. 187cm의 신장을 가진 박정아의 높이는 평균신장 177.3cm의 일본에겐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박정아는 지난 4일 터키와의 8강전에서도 블로킹 1개를 포함해 15득점을 올리며 26득점의 김연경에 이어 한국팀에서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박정아는 이번 대회 득점 12위(82득점)를 기록하며 무릎수술 후 이번 올림픽에 출전해 100%의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한 김희진 대신 한국 대표팀의 2옵션으로 활약했다. 여전히 리시브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경기를 그르칠 만큼 심하게 무너지진 않았다.

이제 김연경이 대표팀을 떠나면 한국 여자배구는 대표팀을 이끌어갈 새로운 주공격수를 찾아야 한다. 이재영의 징계가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 없고 김희진 역시 언제쯤 완벽하게 회복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표팀의 새로운 주포는 박정아가 될 확률이 가장 높다. 다음 대표팀 소집에서는 박정아가 '김연경의 조력자'가 아닌 '대표팀의 에이스'로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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