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가끔 케이블 TV의 스포츠 채널에서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하이라이트를 틀어준다. 13년 전 모두를 열광하게 했던 베이징 올림픽의 기적은 철저하게 박제된 과거의 향수였음이 2021년 도쿄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증명되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21년 만에 야구 동메달 획득을 노렸던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8회 대량실점을 허용하며 6-10으로 패, 노메달에 그치게 되었다.

고우석, 조상우, 오승환 등 리그가 자랑하는 마무리 투수들을 총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야구는 힘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에게 철저히 밀렸다.

2020 도쿄올림픽 야구 도미니카와의 동메달 결정전의 주요 키워드들을 살펴 본다.

1. 야구는 투수놀음

야구를 계속 봤던 팬들이라면 누구나 다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명백한 팩트는 현재 KBO리그에 믿을 만한 투수가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최소 12명의 투수 엔트리 구성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여기에 탈락이 아쉬운 2~3명 정도의 예비 엔트리도 쉽게 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 투수 엔트리 구성은 많은 난항을 겪어야만 했다. 투수 자원이 넘쳐서가 아니라 극심하게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KBO리그 개막전 5경기 중 최소 8에서 9경기에는 외국인 투수가 1선발로 나선다. 국내 투수 중에 믿고 개막전 선발을 맡길 만한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그야말로 꾸역꾸역 상대 타선을 힘겹게 막았다. 그러나 여기저기 봉합했던 상처가 더 이상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한꺼번에 터지는 것처럼 대한민국 투수진은 8회초에 붕괴되었다. 

선발투수 김민우(한화)가 아웃카운트 1개만 잡았는데 무려 홈런 2방을 내주면서 무너졌고, 2회부터 마무리 투수 고우석이 등판하여 4회까지 공을 던져야 했다. 이후 박세웅이 1이닝을 힘겹게 막은 다음 김경문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101개의 공을 던진 조상우를 또 다시 마운드에 올려야 했다. 조상우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그러나 안간힘을 다해 7회까지 상대 타선을 막고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8회 김경문 감독은 6-5의 리드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마무리 오승환(삼성)에게 2이닝을 맡겼다. 그러나 오승환의 돌직구는 전성기와는 거리가 먼 구위였고 도미니카 공화국 타선의 힘을 넘지 못하고 무려 5실점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현재 KBO리그 투수들 중 150km 이상의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는 국내 투수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확실히 증명된 사실은 140km대의 패스트볼로는 국제대회에서 경쟁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구력은 너무도 당연한 기본 조건이다.

패스트볼 경쟁력이 없으면 제구력과 까다로운 구질로 승부를 걸어야 통할 수 있다. 그나마 제구력과 까다로운 변화구를 장착한 고영표(kt)와 좌완투수로서 150km에 가까운 패스트볼로 상대를 공략한 이의리(KIA), 150km 초중반의 볼을 완벽히 컨트롤 가능한 조상우(키움)만이 경쟁력이 되는 투수였음이 입증되었다.

2. 타자들의 안일함

투수들뿐만 아니라 타자들도 경쟁력이 통하려면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확인됐다. 마이너리거들이 주축이 된 미국 투수진들의 볼도 제대로 공략하기 힘들 뿐더러 일본의 수준급 투수들을 상대로 2점도 힘겹게 뽑았다. 또한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일본야구에서 수준급 성적을 올리고 있는 좌완 크리스토퍼 메르세데스가 등판한 이후부터는 대한민국 타자들은 상대의 공에 제대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였다.

제구력이 불안하고 구속도 140km 초중반대에 머무루는 KBO리그 투수들을 상대로 기다리다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공만 공략하면 손쉽게 좋은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올림픽에서 상대한 투수들의 수준은 차원이 달랐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대표팀에는 다양한 유형의 야수들이 포진하여 공격옵션의 다변화를 꾀할 수 있었다. 주루 플레이에 능숙한 이종욱(두산), 고영민(두산), 정근우(SK)와 정확한 타격과 기동력을 겸비한 유틸리티 플레이어 이진영(SK), 이택근(히어로즈), 결정적인 순간 클러치 능력을 발휘하는 이승엽(삼성), 이대호(롯데), 김동주(두산) 등의 거포 등이 포진해서 상대 수비진에게 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안겨다 주었다.

그러나 요즘 KBO리그에서 도루는 점점 실종되고 있고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저 일발장타로 점수를 내는 플레이들이 주류로 자리하면서 경기의 박진감은 계속 떨어지고 지리멸렬한 타격전만 반복된다.

3. 개성을 잃어가는 대한민국 야구

더 이상 베이징 올림픽의 기억을 끄집어내서는 곤란하지만, 당시 베이징 올림픽의 기적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KBO 리그에 뚜렷한 색깔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혹독한 훈련량을 통해 상대를 질식시키는 수비와 세밀한 플레이로 리그를 지배한 SK 와이번스, 육상부라는 닉네임을 얻으면서 뛰는 야구를 통해 KBO리그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두산 베어스, 막강한 투수진의 힘을 바탕으로 리그를 평정했던 삼성 라이온즈, 메이저리그 스타일의 과감한 공격 야구를 통해 리그에 돌풍을 일으킨 롯데 자이언츠 등 저마다 뚜렷한 야구관과 색깔로 리그에 다양성을 더했다.

그러나 요즘 KBO리그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진 프런트의 통제 하에 데이터에 의해 가공된 야구가 주류로 자리잡았다. 데이터를 활용하는 야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선수들의 기본기와 피지컬 향상보다는 오로지 데이터를 통해 벼락치기 형태의 야구가 반복되면서 선수들의 기량은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부 선수들은 운동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몇 년전에 비해 비대해진 몸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이대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매 시즌이 시작되기 전 혹독한 다이어트를 통해 목표 체중을 맞추고 시즌에 임한다. 그런데 요즘 선수들 중에 이대호처럼 혹독한 자기관리로 기량 향상에 집중하는 선수들이 있다는 뉴스는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4. 실종된 프로의식

프로야구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최근 몇 년 사이에 KBO리그에서 발생한 일부 구단 프런트와 선수들의 일탈은 야구 팬들의 관심을 점점 더 멀어지게 하고 있다. 2군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세우고 개인 타격연습을 자행하는 수준 이하의 구단 프런트가 있는가 하면 코로나로 온 국민이 제한된 일상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방역수칙을 어기는 선수들의 일탈 행위가 발생하여 야구 팬들을 분노시켰다.

선수들의 일탈 행위가 뉴스로 보도되면서 이제 팬들은 분노를 넘어 냉소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관중 입장이 제한되어 경기장 규모의 30% 정도만 관중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30%의 관중석조차 메우기 힘든 것이 요즘 KBO리그의 냉정한 현실이다. 팬 없이는 리그가 존속될 수 없다. 모두가 각성하지 않으면 한국 야구의 회복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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