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1월 <비트>를 만들었던 김성수 감독의 신작 <태양은 없다>가 개봉했다. 하지만 <태양은 없다>에서 주목을 받은 인물은 김성수 감독이 아닌 두 주연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이었다. 1973년생 동갑내기로 당시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 받는 20대 배우였던 이정재와 정우성의 만남은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기 충분했다. 실제로 <태양은 없다>는 서울에서만 33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비슷한 이유로 송승헌-권상우의 <숙명>, 고수-강동원의 <초능력자>, 조인성-주진모의 <쌍화점>, 장동건-원빈의 <태극기 휘날리며> 등 복수의 미남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들은 관객들의 시선을 모으는 데 유리하다(물론 그런 영화들이 모두 흥행에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비록 내용이나 완성도가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큰 화면을 통해 잘생긴 배우들의 비주얼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안구정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생기고 멋진 배우들이 관객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할리우드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주요 영화제에서 노미네이트될 정도로 완성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면 그 가치는 더욱 올라간다. 할리우드 최고의 미남배우 쌍두마차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함께 출연한 것도 모자라 터프가이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청춘스타 크리스찬 슬레이터까지 출연한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화려한 캐스팅과 영화적 재미를 모두 잡은 작품이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35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35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주)

 
꽃미남 브래드 피트, 그 전설이 시작되다

할리우드 최고 미남배우 자리를 양분했던 톰 크루즈가 198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주연으로 출연하다가 1986년 <탑건>을 통해 일찌감치 최고의 스타배우로 떠오른 데 반해 브래드 피트는 상대적으로 조금 먼 길을 돌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걸었지만 초창기 그가 주로 맡은 역할은 조연이나 단역이었다. 그나마 1991년 <델마와 루이스>에서 섹시한 도둑으로 출연한 것이 브래드 피트가 관객들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였다.

브래드 피트는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흐르는 강물처럼>, 줄리엣 루이스와 호흡을 맞춘  <칼리포니아> 등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얼굴만 잘 생긴 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지던 브래드 피트에게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 준 영화가 바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였다. 브래드 피트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의 감정을 가진 뱀파이어 루이의 고독을 멋지게 표현하며 평단과 관객의 극찬을 받았다.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의 호연이 돋보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세계적으로 2억 2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특히 브래드 피트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MTV영화제에서 최고의 남자배우상과 가장 매력적인 남자배우상을 휩쓸며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강하게 각인시켰다(물론 앞서 열린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는 톰 크루즈와 함께 최악의 커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이후 브래드 피트의 앞길엔 탄탄대로가 열렸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세븐>을 통해 또 한 번 3억 달러 이상의 흥행성적을 달성했고 <12몽키즈>로는 골든글러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브래드 피트는 2000년대 들어서도 <오션스>시리즈와 <트로이> <미스터&미세스 스미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월드워Z>같은 히트작들을 꾸준히 발표하며 명성을 이어갔다. 

젊은 시절부터 조각 같은 외모 때문에 연기력이 저평가 받았던 브래드 피트는 2019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통해 2020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제작사 '플랜B'의 대표로도 활약하며 2014년 아카데미 작품상 <노예 12년>을 제작했던 브래드 피트는 2020년엔 영화 <미나리>를 제작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 배우의 여우조연상을 시상하기도 했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뱀파이어들은 정말 행복할까
 
 '브래드 피트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이후 <12몽키즈>와 <세븐>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자리 잡았다.

'브래드 피트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이후 <12몽키즈>와 <세븐>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자리 잡았다.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주)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제목처럼 뱀파이어 루이(브래드 피트 분)와 인터뷰 작가 다니엘(크리스찬 슬레이터 분)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아내와 아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던 농부 루이는 창백한 얼굴의 신사 레스타트(톰 크루즈 분)의 피를 마시고 뱀파이어가 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뱀파이어는 십자가를 볼 수는 있지만 관에서 자야 하고 빛을 굉장히 싫어하며 피를 마셔야 살 수 있다. 

뜻하지 않게 뱀파이어가 됐지만 여전히 인간의 감정이 남아있는 루이는 살생을 하지 않고 차가운 동물피로 연명한다. 하지만 레스타트는 인간의 피를 먹지 않는 루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이 문제로 매번 루이와 갈등한다. 그러던 중 루이와 레스타트는 전염병이 도는 마을에서 만난 고아소녀 클라우디아(커스틴 던스트 분)를 물고 뱀파이어로 만든다. 하지만 클라우디아는 성장기답게(?) 식탐이 굉장히 강해 레스타트와 루이를 당황시킨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성장을 하지 않는 자신에게 분노한 클라우디아는 루이로부터 자신이 뱀파이어가 된 과정을 듣고 레스타트를 암살한다(하지만 레스타트는 악어피를 먹고 부활한다). 루이와 클라우디아는 파리에 정착해 안정된 삶을 이어가다가 어느 날 알만드(안토니오 반데라스 분)가 이끄는 동족을 만난다. 루이는 알만드로부터 시대를 대표하는 뱀파이어로 인정 받지만 이내 뱀파이어 일당에 의해 관에 갇히고 클라우디아는 잔인하게 처형을 당한다.

뒤늦게 알만드에 의해 구출된 루이는 분노와 증오에 휩싸인 채 알만드를 제외한 뱀파이어들을 몰살시킨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있자는 알만드를 내버려 두고 홀로 여행을 떠난다. 루이는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레스타트와 재회하지만 레스타트는 이미 아름다움과 능력을 잃었고 루이는 그런 레스타트를 외면한다. 하지만 레스타트는 루이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가는 다니엘을 물고 다시금 화려하게 부활한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나오기 전까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흡혈귀는 대부분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조각 같은 외모의 꽃미남 배우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뱀파이어 역할을 맡으면서 뱀파이어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블레이드>나 <레지던트 이블> 같은 액션물부터 <트와일라잇> 같은 멜로물까지 뱀파이어 영화의 소재가 다양해 질 수 있었던 것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닦은 토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천재 아역배우 커스틴 던스트
 
 커스틴 던스트는 만 10세가 갓 넘은 나이에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 출연해 천재적인 연기를 뽐냈다.

커스틴 던스트는 만 10세가 갓 넘은 나이에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 출연해 천재적인 연기를 뽐냈다.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주)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두 꽃미남 뱀파이어 레스타트와 루이를 관통하는 고통은 바로 외로움이었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자신들의 현실에서 친구나 동료 없이 신선한 피를 찾아 다니기만 하는 뱀파이어의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무료하고 고통스런 일이었다. 그래서 레스타트는 루이가 문 고아소녀 클라우디아를 뱀파이어로 만든다. 그렇게 클라우디아는 레스타트와 루이의 딸이자 연인이 된다.

하지만 아직 절제를 배우지 못한 어린 소녀를 뱀파이어로 만든 것은 큰 실수였다. 클라우디아는 남다른 식탐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선한 피를 원했고 그 결과 너무나 많은 살인을 저질렀다. 그리고 자신이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엔 자제력을 완전히 잃고 히스테리를 부린다. 그리고 끝내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들어준 레스타트를 암살하기에 이른다.

6살 때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했던 커스틴 던스트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10대 초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열연을 펼쳤다. 그 결과 그녀는 골든글러브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새턴어워즈에서는 신인배우상을 수상했다. 많은 아역스타들이 청소년기의 방황으로 몰락하는 것에 비해 던스트는 <작은 아씨들> <쥬만지> <브링 잇 온> 등에 출연하며 아역 및 청소년 배우로 순조롭게 커리어를 쌓았다.

커스틴 던스트는 2002년 <스파이더맨>에서 메리제인 역을 맡아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키스신을 찍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이어지던 시기 <윔블던> <이터널 선샤인> 등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보내던 커스틴 던스트는 <스파이더맨> 3부작이 끝난 후 슬럼프에 빠졌다. 하지만 던스트는 2015년 드라마 <파고> 시즌2를 통해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오랜만에 배우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브래드 피트 톰 크루즈 커스틴 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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