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선 처음 또는 다시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품부터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다양하게 다루려고 합니다.[기자말]
 영화 <셔터> 포스터

영화 <셔터>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사진작가인 턴(아난다 에버링햄 분)은 여자 친구 제인(나타위라눗 통미 분)과 함께 대학 동창인 톤(윤노푸 친파이블 분)의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했다가 귀가하던 중에 한 여자를 자동차로 치는 사고를 저지른다. 그들은 목격자가 없다는 걸 알고 뺑소니를 친다. 다음 날부터 턴이 찍은 사진엔 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물체가 찍히고 둘의 일상과 꿈에 정체 모를 존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자신들에게 보이는 존재가 뺑소니로 사망한 여자라 여긴 두 사람은 다시 사고 현장을 찾지만, 어떤 사건도 신고된 것이 없음을 확인한다. 얼마 후 톤을 비롯한 대학 동창들이 하나둘 의문의 자살을 한다. 턴과 제인은 의문의 존재가 담긴 사진들을 찍었던 현장을 찾아 다시 셔터를 누른 후 사진 속 '존재'가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한다는 걸 깨닫는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아시아 호러는 할리우드의 살인마나 괴물과 다른 결의 소재와 화법을 앞세워 전 세계 영화팬의 사랑을 받았다. 일본은 <링>(1998), <주온>(2000), <검은 물 밑에서>(2002), <착신아리>(2003) 등으로 'J호러' 열풍을 일으켰다. 우리나라 역시 <거울 속으로>(2003)와 <장화, 홍련>(2003)이 할리우드에서 <미러>(2008)와 <안나와 알렉스: 두 자매 이야기>(2009)로 리메이크가 되었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이 시기 시장의 규모에 비해 홍콩과 함께 만든 <디 아이>(2002)를 제외하곤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상업 영화를 내놓지 못하던 태국은 2000년대 중반 두 편의 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한 편은 액션 영화 <옹박-무에타이의 후예>(2003)다. 그리고 다른 한 편은 공포 영화 <셔터>(2005)다.
 
 영화 <셔터>의 한 장면

영화 <셔터>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셔터>는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과 팍품 웡품 감독이 공동 연출하고 각본도 함께 썼다. 두 사람은 태국 역사상 첫 대규모 시위였던 1973년 태국민주혁명 당시 방콕에서 군의 공격으로 인해 시위대 77명이 사망한 사건을 담은 사진들에 찍힌 설명할 수 없는 심령 이미지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영화는 역사의 아픔이 새겨진 심령사진에서 모티프를 얻었지만, 이야기 자체는 그즈음 아시아 호러와 할리우드 호러의 영향을 받았다.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원혼, 과거의 사연, 저주, 점프 스케어 등 구성 요소는 <링>과 <주온>의 영향 아래 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극 구조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1997)를 연상케 한다.

<링>은 비디오테이프, <착신아리>는 전화, <주온>은 집을 공포를 조성하는 매개체로 삼았다. <셔터>의 매개체는 사진이다. 심령사진 자체는 새롭지 않다. 많은 영화에 나온 바 있다. <셔터>는 심령사진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카메라를 하나의 눈으로써 활용하며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간다. 

흥미롭게 사용되는 건 폴라로이드 카메라다. 조작이 불가능하고 곧바로 현상되는 폴라로이드만의 특징은 <셔터>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특히 연속적으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원혼의 움직임을 구현한 장면이 인상적이다.
 
 영화 <셔터>의 한 장면

영화 <셔터>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셔터>는 과거의 존재가 현재의 인간을 공격하는 '저주' 또는 '복수'로 대표되는 아시아 호러의 서사 방식을 따른다. 그런데 한 번이 아닌, 몇 차례 나오는 반전을 통해 전형적인 플롯을 비틀어 가며 관객의 예상을 무참히 깬다. 반전을 위해 복선을 꼼꼼히 깔아놓은 치밀함도 돋보인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보게 될 모든 장면엔 이 영화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가 숨어있다"라고 설명한다.

<셔터>의 마지막 반전은 그 자체로 충격이지만, 폴라로이드 카메라, 유리 등 장치를 이용하여 원혼을 묘사하는 장면 연출이 실로 대단하다. 연기, 촬영, 조명, 색감, 음악은 극의 오싹함을 한층 배가한다. 아마도 '반전 영화'의 대표작을 위한 영화의 전당이 있다면 <유주얼 서스펙트>(1995), <식스 센스>(1999), <메멘토>(2001), <디 아더스>(2002), <올드 보이>(2003), <쏘우>(2004)와 더불어 필히 넣어야 할 근사한 뒤통수 영화다.

<셔터>는 2004년 개봉 당시 태국에서 개봉한 자국 영화 중 최고 수익을 올렸다. <셔터> 열풍은 단지 태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라질 등 개봉 국가들에서 <링>, <디 아이>에 필적하는 높은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인도의 <시비>(2007), <클릭>(2010), 미국의 <셔터>(2008)로 3차례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가장 무서운 영화 리스트'를 언급할 적에 <셔터>는 자주 언급된다. 시대를 초월하여 무서움과 독창성을 인정받았다는 소리다.

<셔터>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연출을 맡은 두 감독이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과 팍품 웡품 감독은 <셔터> 다음에 <샴>(2007), <포비아>(2008), <포비아 2>(2009)를 같이 만들었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었다. 팍품 윙품 감독은 <신과 나: 100일간의 거래>(2018)를 연출했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코미디 <헬로 스트레인저>(2010), 코믹 호러 <피막>(2013), 드라마 <원 데이>(2016)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다 최근엔 나홍진 감독과 손잡고 <랑종>(2021)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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