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지동원이 10년 만에 유럽을 떠나 K리그로 돌아온다. 행선지는 FC서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 FC서울의 공식발표가 나오기 전에, 이제는 전 소속팀이 된 마인츠가 한발 먼저 지동원의 이적을 공식화했다. 마인츠는 7일(한국시간)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지동원은 대한민국으로 돌아간다. 행선지는 FC서울"이라고 밝혔다. 

지동원이 K리그로 이적한다면 정확히 10년 만이다. 지동원은 K리그 전남 드래곤즈 유스 출신으로 2010년 프로에 입단하여 한 시즌 반을 활약했고, 2011년 6월 전남에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 AFC로 이적하며 유럽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독일 분데스리가로 무대를 옮겨 아우크스부르크-보루시아 도르트문트-다름슈타트-마인츠 등에서 활약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꾸준히 차출되어 2010년대 한국축구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2012 런던올림픽-2014 브라질월드컵 등 메이저대회를 두루 거쳤고 특히 올림픽에서는 영국과의 8강전에서 귀중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한국축구의 사상 첫 동메달에 기여하며 병역혜택까지 받았다. 지동원은 A매치 55경기에서 11골을 기록중이다.

지동원의 커리어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어쨌든 경쟁이 치열하고 수준높은 유럽 무대에서 10년이나 버텨왔고 국가대표팀에도 꾸준히 차출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 초라한 개인기록과 큰 경기에서의 족적을 중심으로 봤을 때는 기대만큼은 성장하지 못한 선수라는 아쉬운 평가도 있다.

지동원의 선수로서의 가치를 요약한다면, K리그와 대표팀에서 뛰던 초창기에는 촉망받는 차세대 공격수 유망주였다면, 유럽 진출 이후로는 주로 약팀에서 여러 포지션에 활용하기 좋은 '가성비'형 멀티플레이어였다고 할 수 있다.

지동원은 프로 데뷔 이후 K리그에서 활약한 일년 반동안 전남 유니폼을 입고 각종 대회에서 총 45경기에 나서 무려 16골 8도움을 기록했다. 특히 데뷔 첫해에만 2010년에만 13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한 시즌 최다골 기록을 수립했는데 이는 지동원이 유일하게 한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넘긴 시즌이기도 했다.

반면 유럽무대에 보낸 10년간 지동원이 기록한 공격포인트를 모두 합쳐도 20골 12도움으로 전남에서 불과 1년 반 동안 쌓은 기록과 큰 차이가 없다. 평균으로 환산하면 1년에 2골 정도를 넣은 셈인데 아무리 지동원이 정통 스트라이커가 아니라는 것을 감안해도 공격 포지션의 선수로서는 낙제점에 가까운 기록이다.

1부리그로만 한정하면 총 15골 7도움이다. 지동원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3골 5도움, 프리미어리그에서 2골 2도움을 올렸으며 독일 2부리그에서는 3골 5도움, 독일 포칼컵(FA컵)과 유로파리그에서 각각 1골씩을 기록했다. 국가대표팀에서 기록한 11골도 데뷔 첫 해인 2011년까지 8골을 몰아넣었고 이후 마지막 A팀에 차출된 2019년까지는 8년간 단 3골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오죽하면 도르트문트 시절의 위르겐 클롭(리버풀) 등 소속팀 감독들로부터 대놓고 '골못넣는 공격수'라는 굴욕적인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지동원은 유럽 1부리그에서 오랫동안 활약했지만 그나마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주로 임대로 뛰던 시절이나 하위권 팀에서였다. 선덜랜드-도르트문트-마인츠 등에서는 주전경쟁과 부상 등으로 꾸준히 중용되지 못했다. 독일과 영국에서 총 6팀을 거쳤고 임대 생활만 4번이나 겪었다. 지동원이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준 팀은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로 총 125경기에서 출전하여 16골을 넣었다. 지동원의 유럽 한 시즌 커리어하이 기록도 2012-13시즌 아우크스 첫 임대시절에 17경기에서 올린 5골이었다.

지동원은 유럽무대에서 '전술수행능력이 뛰어난 멀티플레이어'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했다. 지동원은 득점력에 강점이 있는 선수가 아니다. 많은 팬들에게 지동원은 스트라이커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지동원은 '10번'에 가까운 공격형 미드필더 혹은 세컨드 스트라이커에 어울리는 플레이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좌우 윙포워드까지도 소화할 수 있었다.

슈팅-패스-크로스-제공권 등을 떼어놓고 보면 아주 특출난 부분은 없지만, 대신 어떤 역할이든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여러 포지션에 걸쳐 활용도가 높다. 대표팀에서도 조광래-홍명보-슈틸리케-벤투 등 주로 점유율과 연계능력을 중시했던 감독들에게 지동원이 꾸준히 기회를 얻었던 이유다.

특히 지동원의 장점은, 아우크스부르크처럼 선수층이 부족한 하위권이나 2부리그 팀에서 '가성비'라는 확실한 메리트로 작용했다. 유럽무대에서 이러한 지동원의 스타일을 가장 잘 활용한 팀이 바로 아우크스부르크였다. 기록만 놓고 보면 한 시즌 3~4골도 넣지 못하는 지동원을 왜 중용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소속팀 입장에서는 취약 포지션이나 부상자가 발생할 때마다 빈 자리를 바로 메워줄 수 있고, 수비가담이나 연계플레이 등 기록에서 드러나지 않는 궂은 일도 잘 수행해 준다는 점에서 지동원이 소중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지동원은 임대와 이적으로 아우크스부르크에만 세 번이나 입단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비록 득점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지동원은 어쩌다 한번씩 강팀을 상대로 임팩트있는 골들을 터뜨리기도 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1년 선덜랜드 시절 첼시전에서 0-2로 뒤진 후반 막판 교체투입되어 추가시간에 만회골을 넣은 것이 지동원의 유럽무대 데뷔골이었다. 2012년 1월1일엔 강호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극적인 1-0 승리를 알리는 극장골을 꽂아 넣기도 했다. 독일에서도 2014년 도르트문트전 동점골, 2016-17시즌엔 라이프치히전, 바이에른 뮌헨전에 득점포를 폭발시키며 팬들 사이에서 '지동원은 강팀이 아니면 절대 골을 넣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유럽무대에서 '가늘고 길게' 생존한 것이 지동원의 성장과 선수 커리어에도 꼭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국내 무대가 돌아오게 됐지만 지동원은 91년생으로 아직 30세에 불과하다. 유망주 시절부터 일찍 두각을 나타내서 베테랑 선수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기성용-구자철보다 어리고 손흥민보다는 1살 위에 불과하다. 이동국은 유럽무대에서 초라한 실패를 맛보고 돌아왔지만 30대를 넘긴 이후에 전북과 K리그의 전설로 화려하게 부활하기도 했다.

FC서울은 기성용-박주영같이 유럽무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선배들이 있고 명가재건을 위하여 공격수 보강이 절실한 상황이기도 하다. 지동원이 지난 1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K리그에서 못다 한 공격수로서의 본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