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여제' 김연경은 최근 중국 상하이 구단과 1년 계약을 맺고 다시 해외로 진출했다. 지난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친정팀 흥국생명을 통하여 국내무대로 컴백한 지 불과 1년 만이었다. 상하이는 김연경에게 친숙한 팀이다. 일본과 터키를 거쳐 2017-18시즌 상하이로 이적했던 김연경은 당시 팀의 정규리그 우승과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이끈 바 있다.

김연경은 지난해 11년 만에 V리그로 전격 복귀하며 많은 화제를 모았다. 당시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속에서 도쿄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안정적인 경기력 유지와 심리적 안정 등을 두루 고려하여 내린 선택이었다. 과거 해외진출 당시 FA 신분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빚었던 흥국생명 구단과 해묵은 앙금을 해소하고 다시 손을 잡았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다. 김연경은 국내 복귀를 위하여 스스로 몸값을 대폭 양보하는 파격적인 '페이컷'으로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김연경과 흥국생명의 두 번째 만남은 이번에도 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가세로 압도적인 호화전력을 구축하며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신조어가 나올만큼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결과적으로 KOVO컵대회-정규리그-플레이오프까지 3연속 준우승에 그치며 단 한 개의 트로피도 들어올리지 못했다. 시즌 중반부터 불거진 팀내 불화설과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학교폭력 파문' 등이 터지며 힘겨운 시즌을 보내야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김연경의 기량과 성적은 여전히 뛰어났다. 김연경은 올시즌 V리그 공격 성공률 1위(45.92%), 서브 1위(세트당 0.227개 성공)를 차지하며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어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코트 위에서의 활약은 물론이고 김연경의 인터뷰 발언이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기삿거리가 될만큼 V리그 흥행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절대적이었다. 올시즌 V리그 여자부 방송중계 시청률(1.3%)은 2005년 출범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경기당 여자배구 최고 시청률 상위권을 모두 흥국생명 경기가 독식했다는 것은 김연경 효과를 빼놓고는 결코 이야기할 수 없다.

시즌이 끝나고 배구계와 팬들은 다시 김연경의 거취에 주목했다. 기왕이면 스타성이 뛰어난 김연경이 다음 시즌에도 한국무대에서 계속 활약을 이어가기를 기대하는 반응이 많았다. 원소속팀 흥국생명은 물론이고 새롭게 창단하는 신생팀 페퍼저축은행도 김연경 영입에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김연경은 최종적으로 중국행을 선택했다.

김연경이 중국행을 선택한 배경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김연경은 상하이에서 이미 활약한 경험이 있어서 현지와 리그 적응에 문제가 없는 데다 구단에서 특급대우를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배구리그는 코로나19로 지난해에 이어 개막이 늦어지며 단축 시즌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시즌이 짧아지면 그만큼 경기수가 적어서 체력적 부담도 적고 현지 체류기간도 줄어든다. 지리적으로도 같은 아시아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대표팀에 합류해 도쿄올림픽을 준비하기도 수월하다. 또한 한 시즌 단기 계약인만큼 내년 초에는 다시 국내무대 복귀나 유럽리그 재진출을 노릴 수도 있다.

아쉬운 부분은 끝내 김연경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흥국생명과 한국 배구계의 현실이다. 흥국생명에게 지난 시즌은 무관에 그친데 이어 대내외적으로 구단 이미지에 큰 흠집만 남긴 상처뿐인 시간이 됐다. 학폭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쌍둥이 선수들의 향후 거취 문제는 아직도 미궁속이다. 여기에 팀의 구심점이자 간판스타였던 김연경마저 잡지못하며 다음 시즌의 행보마저 불투명하게 됐다. 김연경같은 슈퍼스타의 이적은 흥국생명만이 아니라 한국배구계의 흥행성에 있어서도 큰 손실이다.

지금으로서는 김연경이 향후 다시 한국에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신분 해석 문제를 둘러싸고 이번에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결별한 모양새다. 김연경은 규정상 여전히 현재 흥국생명과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로컬룰상 해외 리그로의 이적은 제약이 없지만 국내에 복귀하여 타 팀으로 이적하기 위해서는 흥국생명에서 1시즌을 더 뛰어야만 한다.

물론 흥국생명이 대승적 결단을 내려 김연경의 이적을 허용해 줄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 페퍼저축은행에서 김연경의 영입 가능성에 관심을 드러냈을 때 흥국생명은 단호하게 '이적을 허용할 의사가 없다'고 선을 그으며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기도 했다. 김연경의 나이나 남은 계약기간을 감안할 때 '2013년 해외이적 사태'처럼 흥국생명과 자유계약 신분을 놓고 스포츠중재(CAS) 재판소나 법적공방까지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김연경이 다음시즌 이후에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흥국생명으로의 복귀를 꺼린다면 이야기는 복잡해질 수 있다.

현재로서 김연경과 흥국생명의 관계는 썩 원만해보이지 않는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상하이 구단 계약 소식도 당사자가 아닌 언론 보도로 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경이 쌍둥이 선수를 둘러싼 논란 당시 구단의 대응에 크게 실망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연경은 학폭논란의 간접적 피해자이자 쌍둥이 선수와 연루된 팀내 불화설의 당사자이기도 했다.

여기에 흥국생명이 김연경의 해외무대 경력을 임대기간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임의탈퇴 신분으로 묶는다면 결국 8년 전과 별다를 게 없는 관계로 되돌아간 셈이 된다. 김연경과 흥국생명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어느덧 선수생활 후반기에 접어든 김연경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은퇴를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 배구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김연경이 말년까지 고국보다 해외를 전전하는 모습은 많은 팬들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김연경은 현재로서는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눈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은 김연경의 국가대표 커리어를 마감하는 마지막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보낸 한 시즌 동안 이래저래 마음의 상처만 남긴 김연경으로서는 잠시나마 변화가 필요했던 시점이기도 하다. 한편 흥국생명은 흥국생명대로 향후 김연경과 쌍둥이 자매와의 관계설정 및 다음 시즌 이들의 빈 자리를 극복하는 것과, 추락한 구단 이미지 개선까지 무거운 숙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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