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의 앨범 <헤븐>이 발매되었다. 2015년 <수잔>, 2018년 <로맨스>에 이은 세 번째 정규 앨범이다.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다섯 번의 수상을 한 김사월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2021년도 한국 대중 음악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역설적인 제목이다. '천국'이라는 이름을 매달아 놓고서는 오한이 들 만큼 비극적인 가사를 품었다. 자신이 일회용품이기를 바라는 상황에 던져지고, '기회만 되면 헐값에 영혼을 판다'고 자조한다. 2019년 출간된 저서 <사랑하는 미움들>에서 이어지는 통각적 체험이다.

중요한 것은 비관과 냉소를 거친 내러티브가 청자의 경험과 결합해 어떤 위로를 전한다는 점이다. <헤븐>은 앨범 외적으로 고통에 좌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용서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는 문제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게 돕는다. 이 귀중한 기록의 주인공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지난달 9일 가수 김사월을 화상으로 만났다. 
 
 가수 김사월

가수 김사월 ⓒ 김사월

 
- 앨범이 발매된 지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어요. 어떻게 지내시나요?
"요즘은 운동을 하고, 규칙적으로 지내는 것에 가장 관심이 많아요. 예전에는 어떤 사람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하나에 대한 관심이 높았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자 의식 중이에요. 대신 육체 위주로 삶을 살려고 하죠. 생각을 조금 줄이는 대신 걷거나, 운동하거나, 요리한 음식을 먹으면서 지내요."
  
- 주로 즐겨 요리해 드시는 음식이 있으신가요?
"제가 만든 미역줄기볶음을 좋아해요. 집에서 요리할 땐 야채나 과일, 콩을 재료로 한 음식 위주로 먹으려 노력하죠. 아침에는 주로 과일이나 빵을 먹어요. 예전에는 파스타 만드는 것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간단하게 야채를 굽는 요리가 더 좋아요."
 
- <헤븐> 앨범의 자기 경멸적인 노랫말들이 이상하게 많은 위로가 되었어요. 앨범의 수록곡 중 하나와 관련된 이야기나 사연이 있을까요? 
"하나를 꼽기는 어렵지만, 이 앨범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노래는 마지막 트랙인 '헤븐'이에요. 해가 막 어슴푸레하게 뜨는 아침, 아파트 창문에 비친 해가 눈이 아플 정도로 부시게 빛나는 걸 봤어요. 누군가는 그 시간에 일어나서 어떤 하루를 시작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그때까지 잠들지 못한 채 불행한 하루를 마감하고 있을 수도 있겠죠. 문득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 살든, 해가 뜨고 지는 것만큼은 약속해주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헤븐'이라는 노래를 만들게 되었어요. 곡을 만들다가 다른 곡들과 엮어야겠단 생각이 들면 앨범을 작업하는데, '헤븐'을 만들고 나서 동명의 앨범을 만들어야겠다 결심했죠. 앨범 콘셉트나 내용이 조금 비극적이라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망했다고 좌절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담고 싶었어요. 그렇게 느껴주셔서 감사해요." 
 
아파트 창문이 빛나는 아침이 오고 나는 정말로 증발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로
더러운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며 세상이 이대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사월 – 헤븐 中
 
- 저서 <사랑하는 미움들>과 <헤븐>에 드러난, '욕망 받는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욕망의 주체로서 '김사월'은 어떤 사람인가요?
"예전에는 욕망 받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았는데, 제가 받는 욕망은 제가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큰 미련을 주지 않으려고 해요. 인디 가수로 산다는 게 의외로 자잘한 욕망을 많이 받거든요. 그런 욕망을 처음 받을 땐 낯설기도 하고, 원하기도 하고, 방황하게 되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다 시간이 흘러 이건 남의 욕망이구나, 라는 걸 깨달은 후에는 제 욕망을 잘 간수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요즘은 그런 시기인 것 같아요. 저는 제 욕망을 스스로도 잘 간수하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육체 위주로의 삶을 사니까 욕망이 발산되면서 동시에 절제가 돼요. 그렇다고 그렇게 바른 생활을 하고 있단 건 아니고, 소망인 거죠. 노력은 하고 있는데, 아직도 번민하는 중이에요."
  
- 존재를 표현하기 위한 대화의 수단으로 노래를 하신다 말씀해 주셨는데, 가수로서의 모습과 사람으로서의 모습 중, 더욱 '소비되고 싶은' 쪽은 어느 쪽이신가요?
"당연히 가수로서 소비가 되고 싶죠. 잘 소비되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어요. 사람으로서는 보여주거나 소비될 만한 것도 없고, 별거 없는 심심한 사람이에요. 보여줘도 별 감흥 없으실 것 같고요. 가수로서는 잘 보여드리고 싶어서 뭐든 하는 쪽이에요."
 
나같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에게 영향력이 생기면 안 되는 건데. 이왕 영향력이 생긴다면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렇지만 그런 소질은 없는 것 같다.
김사월 – '소비되고 싶어', <사랑하는 미움들> 中
  
- 저서 <사랑하는 미움들>의 '소비되고 싶어'에서는 좋은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어요. 비거니즘 등 정치적 올바름을 향한 활동을 하고 계시기도 한데, 현재는 스스로 좋은 영향력 끼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랑하는 미움들>은 가장 번민하던 시기에 쓴 책이에요. 2집 앨범을 내면서 활동을 많이 하고 싶고, 또 해야 되는 상황이었죠. 스스로를 세우지 못하고 다른 말이나 시선에 많이 휘둘리던 때였어요.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제가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지'라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저는 해로운 사람만 안되면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필연적으로 해로운 사람일 수밖에 없잖아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듯이 말이에요. 그럼 할 수 있는 건,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라도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거죠. 활동도 그런 식이에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으면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이니까요."
 
-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한 활동에 의무감을 가지지만, 실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이런 분들께 조언의 말을 드릴 수는 없을까요?
"글쎄요. 이것도 제겐 복합적이고 교차적이라는 생각이에요. 저는 지금 서울에서 혼자 살면서 돈을 벌기 때문에, 식사를 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잖아요. 그만큼 비건 활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거죠. 만약 직장에 다니거나, 가족과 식사를 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비건을 하는 데 현실적으로 힘들 수 있어요. 그건 당연히 개인의 잘못이 아니고, 꼭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마음의 가책을 가질 필요도 없죠.

어떻게 보면 제가 희미한 인간이 되는 것 같기는 해요. 어느 쪽의 말도 맞다고 주장하지 못하는 사람처럼요. 하지만 비거니즘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 자체는 굉장히 멋진 일이죠. 비건이라는 게 동물권과 환경에 대한 손해나 아픔을 줄이고자 하는 일인 거잖아요? 당장 어려운 일 대신 관련된 일을 할 수도 있겠죠. 플라스틱을 덜 쓴다거나, 텀블러를 가지고 다닌다거나… 제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죠?"
 
- 제가 어떤 입장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별로 도움 되지 않는 말처럼 들리지는 않아요.
"
좋은 생각에 의무감을 가지고 있는 건 좋은 일이죠. 하지만 완벽해야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건강하고 오래 지속하려면 지금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고, 나중에 힘이 생기면 더 하고. 그러면 된다고 생각해요."
  
 싱어송라이터 김사월

싱어송라이터 김사월 ⓒ 김사월

 
- 혹시 현재까지 제작된 미발표 곡 중 앨범에 실리지 못해 아쉬웠던 노래가 있을까요?
"저는 노래를 만들 수 있을 때 많이 만들고 쌓아두는 편이에요. 빨리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크게 있는 편은 아니어서, 생각을 정리한 다음 콘셉트가 맞을 때 내는 게 좋아요. 노래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좋을지 정해져야만 설득력이 생긴다고 믿거든요. 콘셉트가 정해지지 않은 노래들은 앨범에 실리지 못했다고 아쉬울 게 전혀 없어요. 오히려 나오지 말아야 하죠. 지금까지 앨범 안에 있는 아이들은 다 제 자리에 들어있는 것 같고, 더 들어가거나 빠질 곡들은 없는 것 같아요."

- 사운드 클라우드에 발표되지 않은 노래를 공개하기도 하시잖아요. 질문을 조금 바꿔서,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없으신가요? 가장 들려주고 싶은?
"질문을 들으니까 몇 곡이 떠오르긴 하지만, 올해 뭔가를 낼 준비 중이라 아직은 알려드리지 않을 거예요. (웃음) 3집 앨범에 있는 노래들도 사운드 클라우드에는 다 있거든요. 가끔 앨범 발매 전에 왜 노래들을 다 공개하냐는 질문을 들어요. 올라오는 곡들을 들어주셔서 감사하지만, 어차피 콘셉트가 정해지지 않아서 들어주지 않으셔도 크게 상관은 없어요. 어떻게 보면 연습생 같은 곡들인 거죠."
 
- 음악은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효과적인 매체지만, 직접적으로 많은 말을 하기에는 산문에 비해 다소 제한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헤븐' 앨범에 미처 다 담지 못한 말이 있다면?
"제가 앞으로 음악을 하면서 더 해보고 싶은 이야기를 담지 못했다고 하면 그럴 수 있지만, 앨범 하나하나들은 다 그 안에서 완결이 되도록 만들기 때문에 미련은 없어요. 더 희망적으로 써야 했다는 생각도 없고요. 암울한 결말로 끝나는 앨범이지만, 어쩔 수 없죠. 헤븐은 그냥 그런 앨범이에요. 미처 담지 못한 말은 다른 콘셉트로, 다른 앨범으로 발매할 거예요."
 
- 그렇다면 다음 앨범에서는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가요?
"지금까지 정규 앨범을 3장 냈어요. 1집은 저의 자아나 어린 시절로 시작하고, 2집은 저의 사랑에 대해, 3집은 저의 세상을 이야기했죠.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3집으로 저와 저를 둘러싼 이야기는 마친 거죠. 다음 챕터에서는 인생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풍부하게 다루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하나의 시선으로 계속 진행되었지만, 이제부터는 조금 더 다채로운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건 행복과 불행에 관한 내용이에요. 진짜 이렇게만 하면 행복한 거니, 불행한 일이 있을 땐 이게 정말 불행하기만 한 거니. 이런 사실은 사람들이 양가적으로 생각하는 행복과 불행이지만, 그만큼 명확한 경계가 있진 않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 마지막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후 가장 위로가 된 말은?
"모든 말들이 다 감사하고, 모든 말에 힘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제 음악을 잘 듣고 있다는 말이 가장 위로가 돼요.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칭찬이기도 하고요. 저는 비난도 많이 받지만, 가진 재능 등에 비해서는 감사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 사람이거든요.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든 간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오히려 잘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해요. 하지만 잘 듣고 있다는 말은 보답을 할 수 있잖아요? 음악은 꾸준히 만들 거니까 들어주신다면 저도 계속 열심히 할 수 있고,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위안이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뭐, 이렇게 말은 하지만 무슨 말을 해주셔도 저는 다 좋아요. 어떤 말이라도 해주시면 좋겠어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