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첫 방송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역사 왜곡 논란에 부딪혔다. 좀비를 연상시키는 '생시'로 인해 왕자마저 위협을 받는 상황, 태종 이방원(감우성 분)은 로마 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한다. 로마 교황청의 특사 자격으로 조선을 방문하게 된 요한 신부를 맞아 대접하는 장면에서 상에는 월병, 피딴 등 중국 음식에 쌓여 있다. 왜 로마 교황청에서 온 신부를 대접하는 데 중국 음식을 대접할까?

하지만 <조선구마사>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리고 <조선구마사>의 문제는 이미 박계옥 작가의 전작 tvN 드라마 <철인황후>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당시 <철인왕후>는 쏟아지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로 끝맺음했다. 그리고 <조선구마사> 방영이 시작됐지만 같은 문제로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조선구마사> 스틸컷

<조선구마사> 스틸컷 ⓒ SBS

 
드라마는 조선시대에 좀비가 역습한다는,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킹덤>과 <조선구마사>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역사다. <조선구마사>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실존 인물들을 차용하고 있지만, <킹덤>은 역사나 실존 인물들을 활용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임진왜란 이후 조선 어느메쯤이라고 상상할 수는 있지만 분명 허구의 판타지다. 하지만 그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누군가가 되는 순간 서사의 뉘앙스는 달라진다. 

대놓고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냉소하는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태종 이방원이 통치하던 조선 초를 배경으로 한다. 10년 전 생시(존비)와의 싸움을 끝으로 평화를 되찾은 조선, 그러나 곧 다시 생시가 등장한다. 그 생시를 없애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요한 신부를 데려온다. 그에게 훗날 세종이 될 충녕(장동윤 분)은 생시 출몰의 원인을 묻는다. 그러자 뜻밖에도 태종과 태상왕 태조 이성계에게 그 이유를 물으라는 대답이 나온다. 

태종에게 밉보인 세자 양녕(박성훈 분) 역시 원명왕후(서영희 분)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원명왕후는 '네가 왕위를 물려받으면 알게 될 것'이라며 답을 피한다. 두 상황을 통해 눈 밝은 시청자라면 10년 만에 다시 조선에 등장한 '생시'가 조선 건국 과정에서 벌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즉,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이성계와 이방원은 마치 영생을 위해 악마와 거래를 한 파우스트처럼 손을 빌려서는 안 될 세력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내용은 조선 건국 과정을 왜곡하고 그 정당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이러한 드라마의 톤은 요한 신부를 대접하는 과정에서 선조 목종도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자조적인 대답을 하는 충녕을 통해 용비어천가의 정당성을 냉소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조선구마사> 스틸컷

<조선구마사> 스틸컷 ⓒ SBS

 
박계옥 작가의 이러한 역사 왜곡은 이미 <철인황후>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철인황후>에서도 역시 왕실을 희화화하는 대사들과 설정은 시청자들의 우려를 자아냈지만 시청률만 높으면 된다는 미명 아래 <철인황후>는 무사히 막을 내렸고 결국 <조선구마사>의 사태까지 불러왔다.

드라마에서 늘 아버지 태상왕에 대한 심적인 부담을 안고 있던 이방원은 10년 전 의주에서의 트라우마로 인해 애꿏은 백성들을 집단 살상한다. 태종이 조선 건국 과정에서, 그리고 왕자의 난 등으로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지만 백성 살상 장면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드라마는 이렇게 묘하게 뉘앙스를 변조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물론 21세기에 과거 봉건 시대의 왕조에 대해 판타지를 가미해 비트는 것이 문제냐고 물을 수도 있다. 영국 BBC 드라마 <닥터 후>에는 영국 왕실이 외계인의 후손이라는 설정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리즈 중에 한 에피소드에 불과한 이야기였고 20부작의 역사극과는 영향력이 다르다. 특히 최근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왜곡된 역사를 주장하고 있는 시점에 우리는 이러한 퓨전 드라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조선구마사>는 고민을 남긴다. 

자극적 설정만으로는 어설픈 서사 

그런데 조선 건국 과정에서 생시를 불러올 만큼 부족한 정당성의 조선 초기라는 설정을 판타지로 본다고 해도, 다시 생시로 인해 혼란에 빠진다는 드라마의 전개는 어설프다. '19세 미만 관람불가' 시청등급을 내세우고 목을 자르고, 배를 가르는 등 자극적인 장면을 연달아 연출하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끌어 보지만 역부족이다.
 
 <조선구마사> 스틸컷

<조선구마사> 스틸컷 ⓒ SBS


원죄가 있는 이방원, 그리고 그의 두 아들 양녕과 충녕 사이에 벌어진 왕위 승계의 갈등을 구마라는 특이한 설정을 통해 풀어보려 한 <조선구마사>의 구도는 지나치게 산만하다. 태종과 양녕, 그리고 충녕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유기적 연결 없이 나열된다. 특히 요한 신부, 그를 대접한 중국 음식 가득한 식탁, 어설픈 국무당의 굿판 등 국적 불명의 설정들이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냉소적으로 조롱하고 있지만 정작 판타지를 구현하는 방식은 어설프다. 구마라는 설정을 만들어 놓았지만 상상력이 빈곤하다 보니 결국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여러 '구마 사제' 작품들의 장면들을 참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왕조에서 벌어진 구마 의식이 십자가와 성수라는 상황에 실소가 나온다. 하다못해 <손 the guest>의 전통 무속이라도 참조했으면 이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궁궐 한 가운데서 벌어진 국무당 무화(정혜성 분)의 굿판 역시 정체불명이다. 조선을 배경으로 한 엑소시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그러니 결국 드라마는 자극적인 연출로만 시청자의 눈을 끌려고 한다. 웅장한 OST에 어울릴 서사도 빈약하다. <육룡이 나르샤>, <녹두꽃>의 신경수 PD라고는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조선구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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