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비디오를 보면 영화나 만화가 시작되기 전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법비디오를 시청함에 따라 비행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라는 공익광고(?)가 나왔다. 하지만 호랑이는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이고 천연두라는 질병도 사실상 박멸됐으며 심지어 비디오도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이 캠페인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전쟁은 다르다. 소총이나 구식 수류탄을 들고 고지전을 벌이던 시대는 지났지만 현대의 전쟁은 각종 생화학무기와 미사일, 심지어 핵무기까지 등장한다. 따라서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야기시킨다는 점에서 전쟁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재앙이다. 영국의 소설가 겸 사회학자 허버트 조지 웰즈는 "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우리를 끝낼 것이다"라는 말로 전쟁이 가져 올 비극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사실 영화에서는 전쟁만큼 좋은 소재를 찾기도 힘들다. 전쟁 영화는 웅장한 스케일과 전우들의 갈등과 의리, 그리고 감동적인 드라마를 모두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 영화 명작들이 계속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던 올리버 스톤 감독은 1986년 <플래툰>이라는 영화를 통해 전쟁을 겪으며 파괴되는 군인들의 인간성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 출신 감독의 사실적인 묘사
 
 영화 팬들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플래툰>의 포스터는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패러디됐다.

영화 팬들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플래툰>의 포스터는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패러디됐다. ⓒ 이언픽처스

 
스물 한 살에 자원 입대해 베트남 전쟁을 몸소 경험했던 올리버 스톤 감독은 전역 후 뉴욕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1974년 <지옥의 여왕>으로 감독 데뷔를 한 올리버 스톤 감독은 1979년<미드나잇 익스프레스>로 골든 글로브 각본상을 받으며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이후 <코난-바바리안>, <스카페이스> 등의 각본을 쓰며 시나리오 작가로 이름을 날리던 올리버 스톤 감독은 1986년 <살바도르>를 통해 다시 연출을 재개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1976년에 시나리오를 완성했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전쟁 영화 <플래툰>을 1986년 연말에 선보였다. 묵직한 주제의식과 탄탄한 각본, 그리고 올리버 스톤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 <플래툰>은 북미에서만 1억38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크게 성공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올리버 스톤 감독이 연출한 영화 중 최고의 흥행 성적 기록으로 남아 있다.

<플래툰>을 통해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감독상을 휩쓴 올리버 스톤 감독은 1989년 톰 크루즈 주연의 <7월 4일생>으로 또 한 번 아카데미 감독상을 차지하며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 반열에 올랐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1991년 케네디 암살사건을 재조명한 영화 < JFK >, 1994년에는 범죄 드라마 <내츄럴 본 킬러>를 차례로 연출했다. 특히 <내츄럴 본 킬러>는 국내 개봉명이 <올리버 스톤의 킬러>였을 정도로 당시 올리버 스톤 감독의 명성이 높았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1995년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닉슨>, 1999년 알 파치노 주연의 <애니 기븐 선데이>를 연출하며 명성을 유지했다. 하지만 2004년 1억55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알렉산더>가 북미에서 3400만 달러의 성적에 그치며 '폭망'했다. 당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던 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티켓파워 덕분에 해외에서 1억3300만 달러를 벌긴 했지만 손해를 메우기엔 한참 부족했다.

어느덧 원로 감독이 된 올리버 스톤은 이제 더 이상 흥행 성적을 보장하는 감독도 아니고 골든 글로브나 아카데미 시상식에 단골로 노미네이트되는 감독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았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지난 2017년 전 미 중앙정보국 요원이자 내부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의 이야기를 다룬 <스노든>을 연출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총성이 난무하는 전쟁터 속 잃어가는 인간성
 
 6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플래툰>은 북미에서만 1억38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6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플래툰>은 북미에서만 1억38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 이언픽처스

 
<플래툰>에서는 끊임없는 진지작업에 투덜대거나 전역 날짜를 세며 기뻐하고 담배 한 개피에 하루의 피로를 날리는 군인들의 생활이 나온다. 이를 보면 전시나 평시나 세계 어디나 군인의 삶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플래툰>은 베트남전에 자원 입대한 신병 크리스(찰리 쉰 분)가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부사관 반스(톰 베린저 분)와 엘리어스(윌렘 데포 분)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 주요 스토리다. 얼핏 보면 민간인 사살도 서슴지 않는 반스는 악역, "별들 사이엔 옳고 그름이 없지. 그냥 존재할 뿐이니까" 같은 낭만적인 대사를 하는 엘리어스는 선역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쟁을 대하는 두 사람의 방식이 다를 뿐,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에게 선악의 구분은 크게 의미가 없다.

경험이 부족한 장교 울프 중위(마크 모지스 분)가 노련한 두 부사관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는 모습도 굉장히 현실적이다. 실제 한국 군대에서도 갓 부임한 하사나 소위들이 부대 생활에 익숙한 병장들에 비해 일처리나 늦거나 판단력이 떨어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회사로 치면 경력직 간부가 오래된 직원보다 회사의 특징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 것과 같다. 높은 직급이 높은 숙련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뭐니뭐니해도 <플래툰> 최고의 명장면은 포스터에도 쓰인 엘리어스의 장렬한 전사 장면이다. 사실 영화의 클라이막스도 아니었고 딱히 드라마적으로 힘을 줘야 하는 장면도 아니었지만 윌렘 데포의 명연기가 엘리어스 중사의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들었다. 참고로 이 장면은 시나리오나 콘티에 없던 윌렘 데포의 애드리브였다고 한다.

사실 <플래툰>은 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신작이자 똑같이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풀 메탈 자켓>과 제작 기간이 겹치면서 제작사나 배급사에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3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풀 메탈 자켓>은 고작 4600만 달러의 흥행성적에 그쳤다. 반면에 6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플래툰>은 무려 제작비의 23배에 해당하는 1억3800만 달의 흥행성적을 올리며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매의 눈'을 뜨면 찾을 수 있는 조니 뎁
 
 <플래툰>의 주역 착찰리 쉰은 <메이저리그>와 <못말리는> 시리즈 이후 빠르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플래툰>의 주역 착찰리 쉰은 <메이저리그>와 <못말리는> 시리즈 이후 빠르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 모건 크릭 프로덕션즈

 
주인공 찰리 쉰을 비롯해 톰 베린저, 윌렘 데포 등 <플래툰>의 주역들은 대부분 <플래툰>이 배우생활의 터닝포인트가 된 '출세작'이다. 특히 찰리 쉰과 톰 베린저는 1989년 <메이저리그>라는 야구 영화에서 강속구 투수와 퇴물포수로 또 한 번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제작진의 의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플래툰>에서 찰리 쉰이 연기한 인물이 크리스 테일러였고 <메이저리그>에서 톰 베린저가 연기한 인물의 이름은 제이크 테일러였다.

톰 베린저와 윌렘 데포는 <플래툰>을 통해 나란히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윌럼 데포를 제외한 <플래툰> 주역들의 행보는 썩 밝지 못했다. 톰 베린저는 <플래툰>과 <메이저리그> 시리즈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다. 찰리 쉰 역시 한 때 꽃미남 배우로 이름을 날렸지만 2000년대 이후 B급 배우로 전락했다가 2015년 11월 에이즈 감염 사실이 알려지며 세상을 충격에 빠트렸다. 

<플래툰>에서 캄보디아 국경 주변을 배회하던 군인들 중에는 훗날 할리우드의 대배우가 되는 슈퍼스타가 한 명 끼어 있다. 바로 게이터 러너 역을 맡았던 조니 뎁이다. 영화 속에서 게이터는 대사도 거의 없이 주인공들 사이에서 얼굴만 종종 스치고 지나가는 조·단역이다. 조니 뎁의 20대 초반 파릇파릇하던 시절을 볼 수 있지만 조니 뎁의 열성팬이라도 '매의 눈'을 가동하지 않으면 좀처럼 그의 얼굴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빅 해롤드 역의 포레스트 휘테커는 1988년 <버드>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연기파 배우다. 이후 <굿모닝 베트남>,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 <라스트 스탠드>, <사우스포>,<블랙팬서> 등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2007년에는 <라스트킹>으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연출에도 재능이 있는 휘테커는 1995년 고 휘트니 휴스턴 주연의 <사랑을 기다리며>, 2004년 케이티 홈즈 주연의 <대통령의 딸>을 연출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플래툰 올리버 스톤 감독 찰리 쉰 톰 베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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