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마이클 조던은 1993년 시카고 불스를 3년 연속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1993-1994 시즌을 앞둔 조던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충격을 받고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선수로서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나이의 은퇴라 전세계 농구팬들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1994년 봄, 조던은 농구장이 아닌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스프링캠프 현장에 나타나 또 한 번 모두를 놀라게 했다.

1994년 화이트삭스의 더블A에서 활약한 조던은 127경기에 출전해 타율 .202 3홈런 88안타라는 초라한 성적을 올렸다(사실 그 안타와 타율로 51타점 30도루를 기록한 것이 더 대단하다). 결국 조던의 야구 도전은 1년 만에 막을 내렸고 1995년 농구 코트로 돌아온 조던은 불스를 또다시 3년 연속 우승으로 이끌며 '전설'이 됐다. 결과적으로 조던에게 야구란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던 셈이다.

영화 속 이미지가 관객들의 뇌리에 깊게 박히는 배우들의 경우 변신이 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홍콩 누아르의 아이콘'으로 마초적인 역할을 도맡아 오던 주윤발은 영화 <가을날의 동화>를 통해 애절한 멜로연기도 가능한 배우임을 증명한 바 있다. 
 
 <가을날의 동화>는 주윤발 필모그라피에서 흔치 않은 멜로 장르의 영화다.

<가을날의 동화>는 주윤발 필모그라피에서 흔치 않은 멜로 장르의 영화다. ⓒ 신라영화(주)

 
주윤발은 '누아르 전문배우'가 아니었다

1980년대 초·중반까지 홍콩 영화의 대표는 단연 성룡과 홍금보, 원표로 대표되는 무협(무술) 영화였다. 중국희극연구학교(경극학교)의 동문이기도 한 세 사람(성룡이 막내라 언제나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은 배우 데뷔 후 < 프로젝트A >와 <쾌찬차>,<'복성고조> 등의 영화에서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당시 이들은 홍콩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던 우상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1986년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홍콩영화의 판도는 뒤바뀌고 말았다(국내에서는 1987년 개봉). 특히 바바리코트 속에 각종 총기들을 숨기고 성냥개비를 입에 문 주윤발의 아우라는 코믹한 액션 연기로 친근하게 다가오던 성룡, 홍금보, 원표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내뿜었다. 80년대 후반을 시작으로 90년대 초반까지 아시아 청소년들의 우상은 단연 주윤발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영웅본색> 시리즈를 비롯해 <첩혈쌍웅>, <도신-정전자> 등 주윤발 주연의 액션 영화들을 보고 앞 다투어 주윤발을 흉내냈다. <감옥풍운>이나 <대호출격> 같이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영화들도 주윤발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비디오가게 대여순위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리고 주윤발의 화려한 액션 영화들 사이에서 잔잔하게 사랑을 받았던 영화가 바로 주윤발의 필모그라피에서 흔치 않은 멜로영화 <가을날의 동화>였다.

배우 종초홍과 함께 출연한 <가을날의 동화>에서 주윤발은 겉으로는 쿨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남몰래 종초홍을 짝사랑하는 선두척을 연기했다. 자신의 앞을 가로 막는 것들엔 가차없이 총을 겨누는 주윤발이 영화 속에서 종초홍의 말 한마디에 격하게 반응하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했다(주윤발과 종초홍은 <가을날의 동화> 외에도 <종횡사해> 등 여러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홍콩을 대표하는 배우로 군림하던 주윤발은 할리우드에 진출해 <리플레이먼트 킬러>, <와호장룡>,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까지> 등에 출연하며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중후한 중년이 된 주윤발은 <가을날의 동화> 같은 풋풋한 멜로 영화는 다시 찍지 못했다. 따라서 <가을날의 동화>는 '누아르의 아이콘' 주윤발의 새로운 매력을 끄집어 냈다는 점만으로도 그 시절 홍콩영화를 좋아했던 관객들에겐 매우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은 언제나 목마르다
 
 비록 격정적인 키스신 같은 장면은 없지만 <가을날의 동화> 엔딩신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비록 격정적인 키스신 같은 장면은 없지만 <가을날의 동화> 엔딩신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 신라영화(주)

 
<가을날의 동화>가 액션전문배우 주윤발을 캐스팅하고도 애절한 멜로물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여성 감독 장완정의 섬세한 연출 때문이다. 장완정 감독은 데뷔작이었던 <불법이민자>를 통해 1985년 홍콩 금장상 감독상을 받았고 2년 후 <가을날의 동화>로도 금장상 5개 부문을 휩쓸며 연출력을 인정받았다(국내에서는 여명과 서기가 출연했던 멜로 영화 <유리의 성>을 만든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속에서 선두척(주윤발 분)과 제니퍼(중추홍 분)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선두척이 제니퍼를 보고 첫눈에 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상 그 어떤 남자도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무상으로 책장과 욕조, 책상을 만들어주고 그녀를 위해 3일 동안 정성스럽게 그림(브루클린 다리)을 그리진 않기 때문이다.

베이비 시터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만난 남자가 운영하는 식당에 취직한 제니퍼는 선두척을 식당으로 초대한다. 제니퍼에게는 단순한 식사초대였지만 선두척은 처음으로 정장을 차려 입고 제니퍼가 일하는 식당을 방문한다. 하지만 제니퍼는 식당일이 바빠 선두척을 챙기지 못하고 그 사이 선두척은 웨이터의 스킬에 당해 비싼 값의 음식을 주문하게 된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고백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돈만 날린 것이다.

제니퍼는 바람둥이 식당 주인과의 사이를 오해한 안나 엄마에 의해 실직당한다. 하지만 어린 안나는 친절한 보모였던 제니퍼를 잊지 못하고 제니퍼에게 전화를 걸어 자장가를 불러 달라고 청한다. 제니퍼는 안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제니퍼의 노래는 1층에 있던 선두척에게 들린다. 그리고 선두척은 '안나를 위한 제니퍼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짝사랑하는 남자의 자기 위안이라고 하기엔 처량하기 짝이 없다.

선두척과 제니퍼의 마지막 재회 장면도 <가을날의 동화>를 벅찬 감동으로 이끄는 명장면이다. 선두척은 제니퍼와 바다를 찾아서 '대서양을 마주하는 곳에 식당을 차리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제니퍼가 안나와 함께 다시 찾은 바다에서 선두척은 샘판이라는 식당의 주인이 돼 있었다. "두 분이세요?"라는 선두척의 마지막 대사가 "사랑합니다"보다 훨씬 아름답게 들리는 <가을날의 동화>는 그렇게 훈훈하게 막을 내린다.

제니퍼의 마음 흔드는 전남친 빈센트
 
 빈센트를 연기한 진백강(왼쪽)은 지난 1993년 만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빈센트를 연기한 진백강(왼쪽)은 지난 1993년 만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 신라영화(주)

 
제니퍼는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있는 남자친구 빈센트(진백강 분)와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 2년 동안 열심히 돈을 모은다. 그렇게 뉴욕에 도착한 지 이틀째, 제니퍼는 기차역으로 빈센트를 마중 나오지만 빈센트 옆에는 페기라는 새로운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렇게 빈센트는 2년 만에 재회하는 제니퍼에게 잔인하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리고 선두척이 일하는 식당에서 다시 만나 제니퍼에게 자신을 잊고 다양한 경험을 해볼 것을 권한다.

하지만 빈센트가 여자친구를 쉽게 잊을 리 없다. 빈센트는 뉴욕에서 사귄 새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제니퍼를 찾아오고 예전에 홍콩에서 함께 들었던 음악을 무기로 제니퍼에게 다시 추파를 던진다. 물론 제니퍼는 빈센트가 자신을 찾아온 그 날이 선두척의 생일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

자신의 생일에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남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목격한 선두척은 울적해진 마음에 집을 나와 도박을 하고 패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제니퍼는 빈센트의 차를 타고 안나가 있는 롱아일랜드로 떠난다(물론 제니퍼가 빈센트의 마음을 받아준 것은 아니다).

선두척 입장에서 보면 빈센트는 중요한 순간마다 제니퍼 옆에 나타나 자신의 사랑을 방해하는 나쁜 놈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빈센트는 악역이라기 보다는 아직 사랑에 익숙하지 않은 평범한 젊은이에 불과하다. 실제로 빈센트는 자신에게 막말을 하는 제니퍼나 선두척에게 한 번도 화를 낸 적도 없고 나중에는 제니퍼가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롱 아일랜드까지 바래다 준다.

<가을날의 동화>에서 빈센트를 연기했던 배우 진백강은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홍콩에서 가수 겸 배우로 큰 인기를 누리던 스타였다. 특히 고 장국영과는 무명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는데 서로 스타가 되는 과정에서 사이가 멀어져 견원지간이 됐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진백강은 <가을날의 동화>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가 1993년 만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가을날의 동화 주윤발 종초홍 장완정 감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