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라는 얘기에 시어머니로부터 고통 받는 여성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여기서 '시어머니'와 '여성'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게 된 의식의 흐름을 짚어보고 싶다.
엄마는 나를 낳고 기르고 보호해주는 데 헌신한 이로서 여성과 개인이라는 정체성보다 엄마, 모성이란 것으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엄마 대신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반면 시어머니는 어떠한가. 한국 드라마에서 그들은 홧병의 근원이자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는데 한 역할하는 이들이다. 우리 엄마의 시어머니만 해도 내가 태어났을 때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눈물을 보이셨다고 한다. 당시 엄마가 받으셨을 상처에 비할 데 없지만 이는 이따금씩 잊을만하면 나를 울컥하게 한다. 내 탄생이 축하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런 대우를 받아야 했을 엄마 곁에 '지금의 내가' 있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서다.
보통 드라마 속 '시월드'에서 나쁜 역할은 시어머니가 도맡아 한다. 시아버지는 '며느리 사랑'을 보여주거나 혹은 중요한 때엔 꽁무니 빼버리는 얄미운 대상이기에 이 빗나감에 당황했다. 언제, 어디까지 여성들은 악역을 자처해야 하나. 주입된 'K-드라마 공화국'에 물든거 같아 괜히 민망하고 화가 났다.
그러나 영화 <웰컴 투 X-월드> 속 주인공 최미경은 오래 전 사고로 남편을 여의고 12년째 시아버지를 보필하고 있다.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어렸을 때 매일 "엄마, 그냥 아빠랑 이혼하면 안 돼?"라며 마치 구멍가게에 가서 과자 사오는 일처럼 묻곤 했던 그때의 마음 같았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그 시아버지를 보필할 사람이 미경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을 때는 배신감마저 느꼈다.
'큰며느리의 업보'였다
미경의 '시월드'는 시아버지의 갑작스런 '독립 통보'로 흔들린다. 12년을 함께 살아온 식구인데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을 지는 상상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시아버지는 방 안 냉장고에 생라면을 넣어두고는 곳곳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며 본인만의 세상을 구축하신 듯한 분이다. 면의 숙성도와 쫄깃함을 높이기 위한 고단수의 노하우이신걸까. 때때로 '창문'을 넘어다니는 모습을 보노라면 여러 세상을 넘나 드는 듯한 기이함까지 느껴진다.
딸 한태의는 방문 하나 없는, 열린 공간에서 그 둘과 함께 기거한다. 여지껏 평생 내 방 한 칸 가져보지 못한 이로서 그 고충을 알만 했다. 할아버지가 '방문'을 떼어버렸다는 대목에서 나는 기겁했지만 태의는 크게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미경이 말하는 것처럼 한태의는 참 낙천적이다. 카메라 뒤에 숨어 그 고민들을 안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갑작스런 '독립'에 대해 여러가지 경우를 떠올려보다가도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며 카메라를 돌려버리는 한태의에겐 머뭇거림이 없다. 여리고 힘든 미경이 기댈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일까. 두 모녀의 관계를 보며 어느 때 보다도 '반려자'라는 단어가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눈물이 많은 엄마를 어느 순간부터 안아주게 된 나의 모습도...
영화에서 둘은 두 번의 결혼식에 동행한다. 카메라를 든 딸 태의는 엄마의 모습을 멀찌감치서 바라본다. 여전히 결혼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소녀처럼 맑고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고자 하는 그녀의 눈망울을 클로즈업한다. 두 번째 결혼식에서 미경은 부부가 된 이들을 보며 "둘이 닮으면 오래 산다던데"라고 말한다. 영화 초반에 미경과 그의 남편의 범상치 않았던 신혼 시절 사진들이 순간적으로 오버랩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두 사람, 참 예쁘고 근사했는데 그러면서 말이다.
카메라는 대게 집 안 곳곳에 놓이거나 엄마를 밀착해 따라 다닌다. 워낙 연예인들의 일상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이 일상이기에 누군가의 집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카메라는 무심코 밥상 위에 올려놓는 핸드폰처럼 그들의 일상의 일부처럼 놓일 뿐이다. 엄마의 뒷모습을 비추거나 프레임 안에 감독이자 등장인물인 딸 한태의가 들어가 대화를 시도하고 서사가 전개될 때는, 감정적인 사건과 시선이 발생한다. 마치 이것이 부재한 아버지의 시선인 듯 말이다. 카메라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며 감독이 카메라를 들게 된 시작점이 궁금해진다.
둘은 낙관의 힘으로 결국 새로운 보금자리를 갖춘다. 그리고 함께 처음 '선택한 가족'으로 강아지 '호주'를 맞아들인다. 타지에 사는 오빠와 빔 프로젝터로 화상 통화를 나누며 새로운 방식의 유대를 찾아가기도 한다. 시월드로부터 성큼 걸어 나와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미경에게 태의는 더 없이 근사한 동반자다. 나의 엄마 그리고 이모, 큰엄마. 더 많은 이들에게 이 영화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다양한 여성 개인들의 서사가 더 많이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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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 한국을 떠나 런던을 거쳐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이다. 비건(비거니즘), 젠더 평등, 기후 위기 이 모든 것은 ‘불균형’에서 온다고 믿기에 그것에 조금씩 균열을 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으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