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는 한 시즌에 타율, 홈런, 타점 타이틀을 모두 차지할 경우 '타격 트리플크라운',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타이틀을 모두 차지하는 선수에게 '투수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영광스런 수식어를 붙여준다. KBO리그에서 타격 트리플 크라운은 통산 세 차례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투수 트리플 크라운은 모두 6번에 걸쳐 달성됐다(두 가지의 타이틀을 차지하고도 나머지 하나의 타이틀을 놓쳐 트리플 크라운이 무산된 경우도 상당히 많다).

KBO리그에서 타격 트리플 크라운보다 투수 트리플 크라운이 더 자주 나왔던 이유는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1986년 첫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선동열은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면서 3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의 주인공이 됐다. 타격 트리플 크라운은 2010년의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이후 10년, 투수 트리플크라운은 2011년의 윤석민 이후 9년째 나오지 않았다.

올 시즌엔 kt 위즈의 외국인 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가 트리플 크라운을 넘어 10년 만에 타격 7관왕에 도전하고 있다. 아직 시즌은 70경기 가까이 남았지만 로하스의 기세가 워낙 대단해 부상 등의 변수만 없다면 7관왕 도전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평가 받고 있다. 실제로 올 시즌 로하스의 활약은 '역대급 몬스터시즌'으로 꼽히는 2010년의 이대호나 2015년의 에릭 테임즈(워싱턴 내셔널스)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9경기 연속 홈런 세계 신기록에 빛나는 조선의 4번타자

2010 시즌을 맞는 이대호에게 트리플 크라운은 그리 낯선 기록이 아니었다. 이대호는 이미 2006년에도 타율 .336 26홈런88타점으로 1984년의 이만수 이후 역대 두 번째로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이대호는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고도 투수 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에 밀려 정규리그 MVP 수상이 좌절되고 말았다.

철치부심한 이대호는 2010년 누구도 넘보기 힘든 엄청난 시즌을 만들었다. 타율 .364 44홈런174안타133타점99득점 출루율 .444장타율.667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전인미답의 '타격 7관왕'을 달성한 것이다. 도루를 제외한 개인기록은 따로 확인할 필요도 없이 모두 이대호가 쓸어 담았다. 이대호는 그 해 평균자책점(1.82)과 탈삼진(187개) 타이틀을 차지한 류현진을 제치고 정규리그 MVP에 등극했다.

2010년 이대호의 활약 중 가장 눈에 띄는 기록은 역시 9경기 연속 홈런이다. 이대호는 8월 4일 두산 베어스전을 시작으로 13일 KIA 타이거즈전까지 9경기 연속으로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켄 그리피 주니어를 비롯한 3명의 타자가 보유하고 있던 메이저리그 기록을 경신했다. 김선우(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와 류현진, 배영수(두산 투수코치), 아킬리노 로페즈 등 이대호에게 홈런을 허용한 투수들의 면면도 대단히 화려했다.

이대호가 2010년 엄청난 활약을 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 앞 뒤 타석에서 이대호를 보좌하던 동료들의 활약도 큰 도움이 됐다. 특히 타율 .350 26홈런116타점을 기록했던 홍성흔(AZL 파드리스 필드코치)이 5번 타순에 버티고 있어 투수들이 이대호를 쉽게 거를 수 없었다. 손아섭, 김주찬(KIA), 조성환(두산 수비코치) 등으로 구성된 상위타선도 이대호 앞에서 많은 출루를 통해 이대호에게 득점권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줬다.

아시아 최초 40-40 클럽 달성한 근육질의 괴물타자

2014년 한국야구위원회는 구단별 외국인 선수 등록을 3명으로 확대하면서 같은 포지션에 3명의 선수를 둘 수 없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투수 일변도였던 외국인 선수 시장에 야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규정 변화 이후 각 구단들은 뛰어난 이름값을 가진 외국인 야수들을 차례로 영입했지만 그 중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활약을 펼친 선수는 NC 다이노스에서 활약했던 테임즈였다.

KBO리그에서 3년 동안 활약한 테임즈의 최고 시즌은 역시 2015년이었다. 그 해 142경기에 출전한 테임즈는 타율 .381 47홈런140타점130득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며 타격 4관왕과 함께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다. 특히 .790의 장타율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KBO리그 역대 최고기록이다. 그나마 같은 해 박병호(키움 히어로즈)가 53홈런146타점으로 홈런과 타점 타이틀을 차지하며 테임즈의 완벽한 리그 지배를 저지할 수 있었다.

테임즈의 반전 매력 중 하나는 엄청난 근육질 몸매에도 상당히 뛰어난 주루능력을 겸비했다는 점이다. 테임즈는 2015년 무려 40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아시아 리그 선수로는 최초로 40-40클럽에 가입했고 평생 한 번 나오기도 어려운 사이클링 히트를 한 시즌에 두 번이나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 선수 중에는 2000년 박재홍 이후 20년째 30-30 클럽조차 나오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테임즈의 40-40클럽은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다.

테임즈는 2016 시즌이 끝나고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하며 KBO리그를 떠났지만 미국에서도 변함없는 한국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테임즈는 한글이름이 새겨진 보호대를 사용하는가 하면 원하는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갈 수 있는 '선수들의 주말'에 한글로 '상남자'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출전했다. 작년 1월에는 MBC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에 출연해 10cm의 <아메리카노>를 열창하며 또 한 번 한국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스피드 포기하고 엄청난 파워 얻은 성장형 외국인 선수

2010년의 이대호는 7관왕을 달성하기 전부터 이미 KBO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 중 한 명이었고 테임즈는 KBO리그에 입성하자마자 격이 다른 실력을 뽐냈다. 하지만 KBO리그 진출 당시 평범한 외국인 타자 중 한 명에 불과했던 로하스는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성장하면서 올 시즌 비로소 KBO리그를 지배하는 타자로 우뚝 섰다는 점에서 이대호, 테임즈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그 흔한 빅리그 경력조차 없이 만26세의 젊은 나이에 KBO리그에 도전장을 던진 로하스는 입단 첫 해 타율 .301 18홈런으로 가까스로 재계약에 성공했다. 로하스는 KBO리그 2년 차였던 2018년 43홈런114타점114득점을 기록하며 정상급 외국인 타자로 도약했다. 작년에는 타율 .322 24홈런104타점의 성적으로 첫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한국 무대 4년째가 된 올 시즌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리그 최고의 타자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 진출 당시 빠른 발과 장타력을 겸비한 호타준족형 타자로 알려졌던 로하스는 올 시즌 75경기를 치르면서 아직 단 하나의 도루시도조차 없다. 타석에서 철저히 배트를 휘두르는데 모든 힘을 쏟아 붓고 있는 로하스는 타율(.392)과 홈런(28개),타점(72개), 출루율(.453),장타율(.770) 부문 단독 1위, 최다안타 공동 1위(116개), 득점 2위(70개)를 달리고 있다. 통산 4번째 트리플 크라운은 물론 2010년의 이대호에 이어 타격 7관왕을 노리기 충분한 성적이다.

로하스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제안이 오더라도 무조건 'OK'는 아니다"라며 "만약 팀에서 계속 나를 원한다면 kt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단순한 립서비스라 하더라도 kt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설레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kt팬들은 이미 내년 혹은 그 다음 시즌 로하스가 유니폼에 'C'자를 새기며 KBO리그 최초의 외국인 주장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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