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말]
9일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막을 내렸다. '자아를 잃어버린 소년' 강태(김수현), '감정이 없는 깡통 공주' 문영(서예지), '박스 속에 갇혀 사는 아저씨' 상태(오정세). 과거의 상처에 꽁꽁 매여 살아가던 이 세 사람이 똘똘 뭉쳐 그토록 갈구하던 안전하고 행복한 현재를 맞았다. 16회 '진짜 진짜 얼굴'을 찾은 이들은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티격태격하면서도 진심으로 활짝 웃으며 마음껏 즐긴다. 

그리 쉽게 웃어질 것 같지 않은 상처를 지닌 세 주인공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이들이 상처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찾아온 여정을 되짚어본다. 

'거짓 자기'를 벗어던진 문영 

문영은 '사이코패스' 엄마에게서 양육됐다. 딸을 자신의 '작품'으로 여기고 자신과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 어머니와의 어린 시절은 분명 끔찍했을 것이다. "엄만 무섭고 숨막혔어. 그래도 엄마는 엄마니까"(12회) 대사처럼 문영은 오직 자기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는 '무서운' 엄마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저항하기보다는 체념한 채 살아온다.  

대상관계 정신분석학자 도날드 위니콧에 따르면 양육자가 자기 자신에게 몰두한 채 자신의 느낌을 아이에게 강요할 때 아이는 '거짓자기'를 발달시킨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 즉 '참자기'를 숨긴 채 양육자가 요구하는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문영 역시 그랬다. "사랑해 우리 딸. 너는 곧 나야" 라는 엄마의 목소리는 문영에게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숨긴 채 '강하고 잔혹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한다. 그녀의 화려한 옷차림은 온기를 그리워하는 '참자기'를 숨기기 위한 수단이었을 게다. 

위니콧은 이런 사람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것이 '안아주는 환경'이라고 했다. 어릴 적 조율되지 못했던 감정을 반영해주고, 존중해주는 환경이 만들어질 때 사람들은 '거짓 자기'를 내려놓고 '참자기'를 회복해갈 수 있다.

문영이 '안전핀'이라 부르는 강태는 바로 문영에게 이런 '안아주는 환경'을 제공해줬다. 강태는 드라마 초반 문영에게 감정을 가라앉히는 법을 가르쳐주고, "지금 정확히 어떤 감정이야?" 라고 물으며 잃어버린 감정을 인식하게 도와준다. 이 후 차츰 문영에게 마음을 연 강태는 연약하고 돌봄받고 싶어하는 문영의 '참자기'를 알아봐 준다. 9회 강태와의 첫 키스 때 어린 문영의 모습이 등장한 것은 상처받은 문영의 내면아이가 강태와의 새로운 애착관계를 통해 치유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찾은 문영은 자신의 가족 사진을 들여다보며 과거를 직시한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진짜 삶'과 정서적 학대를 당했던 '과거의 삶'을 분리시킨다. 나아가 어머니에게 "나도 엄마처럼 아귀가 될 뻔했는데 그렇게 안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 난 엄마랑 달라." (16회)라고 명확히 선을 그으며 현재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한다. 
 
 강태는 문영에게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강태는 문영에게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 tvN

 
과거와 명확히 선 그은 강태  

강태는 어린 시절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형을 돌보라는 압박을 받으며 살아온 인물이다. "엄마가 너 그러라고(형을 돌보라고) 낳았어"라는 말은 강태에게 그대로 내사되고, 어머니가 사망한 후에도 강태의 내면에 살아 움직인다. 이에 강태는 스스로를 '돌보는 자'라는 틀 안에 가둔다. 강태의 직업이 '보호사'인 것은 이런 자신에 대한 상이 반영된 것일 테다. 

자신에 대한 경직된 틀은 현재를 보지 못하게 한다. 때문에 강태는 어른이 된 형을 여전히 아기처럼 돌보며 '형 때문에'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가둔다. 문영의 자유분방함은 이런 강태의 마음을 열어준다. 강태는 문영과 함께 지내면서 자신이 가둔 틀을 깨고 억압된 욕망을 인지하며, 차츰 지금-여기에서의 경험들에 개방적이 되어 간다. 

그러던 11회 마침내 강태는 상태를 '아기'가 아닌 '형'으로 대한다. "형이면 형답게 좀 굴어"라고 소리치며 한바탕 치고받은 강태는 "막상 치고받고 하니까 속이 후련해"라고 말한다. 어른으로 대해주자, 상태도 변화한다. 이 후 상태는 강태에게 밥을 사주고, '형'노릇을 하며 보다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즉, 형을 형으로 대하자 그토록 원했던 든든한 형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현재'에 살게 된 강태는 위기의 순간에도 과거가 아닌 현재를 선택한다. 문영의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 살해범임을 알게 되었을 때 강태는 괴로워한다. 하지만, 곧 결론 내린다. "너랑 너희 엄마는 달라, 나 죽어도 절대 너 안 떠나. 나한테 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그냥 고문영이야"라며 문영과 문영의 부모를 분리하고, 명확한 선을 긋는다.

15회 도희재(장영남)와 맞닥뜨린 후에도 강태는 자신의 고통은 인정하되, 현재 내게 소중한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보호사'라는 당위를 벗어던지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나선다.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고 자신을 수용하는 강태의 이 같은 용기는 세 주인공의 해피엔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트라우마 극복의 정석 상태
 
상태는 '나비'에 사로잡혀 온 인물이다. 어머니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후 살인범에게 "너도 죽일 거야"라는 위협을 들은 상태는 살인범의 옷에 붙어 있었던 브로치의 나비 문양에 공포를 느낀다. 상태는 이 공포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온다. 즉 몸은 자랐지만 여전히 과거에 매여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엔 문영의 역할이 컸다. 문영은 처음부터 상태를 어린 아이로 대하지 않는다. 강태처럼 무조건 참고 맞춰주지 않고 상태와 말다툼도 하며 '어른'으로 대해준다. 아마 문영의 이런 태도는 상태에게 아이가 아닌 어른인 '현재'에 살도록 도왔을 것이다. 이에 상태는 점차 '어른스러워'져 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강태가 자신에게 화를 내며 아이가 아닌 '형'으로 대해줬던 날, 상태는 진짜로 '어른'이 된다. 

이제 상태는 변하기 시작한다. "강태는 내꺼야"라며 구속했던 태도를 버리고 강태에게 밥을 사주고, 용돈을 주며, 적절한 조언도 해주는 든든한 형이 된다. 그리고 늘 도망만 쳐왔던 '나비'를 마주할 용기를 낸다. 12회 괜찮은 병원 오지왕 원장(김창완)이 "나비가 고대 그리스어로 프쉬케거든. 프쉬케가 뭘 상징하는지 알아? 치유. 이 세상에 무서운 나비보다 치유를 상징하는 좋은 나비가 훨씬 더 많아" 라고 말했을 때 상태는 이 말을 깊이 새겨 듣는다. 

이 후 상태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정석을 보여준다. 조금씩 조금씩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나비를 그려보며 상처를 마주한다. 14회에는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무서워했던 돌연변이 나비를 스케치북에 그려낸다. 이는 더 이상 과거에 사로잡혀 살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그런 상태는 15회 결정적인 순간 문영과 강태를 구해낸다. 더 나아가 삽화작가로서 살고픈 자신의 욕망을 명확히 인지하고 꿈을 위해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과거와 선을 긋고 현재를 선택할 때 
 
 과거의 상처와 선을 그은 문영, 강태, 상태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 함께 하는 행복한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의 상처와 선을 그은 문영, 강태, 상태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 함께 하는 행복한 '현재'를 살아간다. ⓒ tvN

 
저마다 다른 심리적 상처에 갇혀 있었던 세 주인공. 하지만 이들이 행복을 찾은 비결은 결국 하나였다. 과거와 선을 긋고 '현재'를 선택한 것이 자기 자신과 행복을 되찾은 공통된 방법이었다. 강태, 문영, 그리고 상태는 서로 든든한 안전기지가 되어줌으로써 과거의 상처와 마주할 용기를 냈고, 각자의 상처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 일들은 과거의 것이었고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서는 용기를 내 상처를 도려내고 새로운 삶을 찾았다. 

'나비'는 이들을 옥죄고 있던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드라마에는 이 나비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나온다. 오지왕 원장의 해석처럼 나비를 뜻하는 고대어 프쉬케는 '치유'의 의미를 갖는다. 동시에 프쉬케는 도희재의 말처럼 '사이코'라는 뜻도 갖는다. '나비'라는 한 단어 안에 이 뜻이 모두 들어있듯, 과거의 상처는 우리에게 양면성을 갖는다. 상처를 마주하고 그것으로부터 내가 받은 영향을 직면하고 이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할 때 과거의 상처는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디딤돌이 되어준다. 하지만 두려워 바라보지 못하고 매몰되어 있을 때 이는 '사이코' 그러니까 영혼을 갉아먹는 병이 된다. 

'나비의 존재' 즉, 우리가 겪은 과거의 상처 자체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 상처에 영향을 받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선을 긋기로 결심하면, 그 어떤 과거의 상처도 지금의 나에게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는 드라마 속 괜찮은 병원 환자들이 부르던 노래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를 내게 불러주는 것이다. 괜찮지 않아도, 그러니까 과거의 상처가 좀 있어도 현재의 나는 괜찮게 살아갈 수 있음을 믿을 때, '나비'는 '치유'가 된다. 우리 모두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내가 현재에 살기로 결심할 수 있다면 말이다. 설령 '나비'가 내게 '사이코'였던 적이 있어도 '괜찮다'. 강태와 상태, 문영이 그랬듯!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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