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드; 나에게로의 여행

라이드; 나에게로의 여행 ⓒ 티캐스트

 
엄마에게 '아이'는 '또 다른 나'이다. 영화 <라이드 : 나에게로의 여행>(2014)의 엄마 재키는 아들 앤젤로를 향해 자신에게도 '너(앤젤로)'에 대한 소유권이 있음을 주장한다. 안젤로가 자신의 '질'을 통과했다는 이유로. 하지만 굳이 그 과정이 아니더라도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각별하다. 아이라는 한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정자 역할을 제외한 피와 살과 뼈가 이뤄지는 과정 전체가 오롯이 엄마의 몫이다. 그렇기에 엄마는 아이를 세상 밖에 내놓은 뒤에도 언제나 또 다른 나를 대하듯, 나의 일부인 듯 일체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은 좀 다르다. 엄마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한 생명으로 서고 자라난 아이는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아가길 원한다. 과거 밤이고 낮이고 보채며 엄마의 사생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살핌을 갈구하던 아이는 어느덧 자라 '엄마'란 둥지를 떠나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를 떠나보낼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엄마는 '빈둥지'를 감싸 안고 허탈함이란 공황상태에 빠지고 만다. 아이 없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렇게 '빈둥지증후군'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엄마에게 배우이자 감독인 헬렌 헌트는 새로운 둥지를 권한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한 둥지를 말이다. 엄마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삶의 방향을 잃은 그 누구라도 헬렌 헌트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 옳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엄마라는 둥지에서 날아가 버린 아들
 
 라이드; 나에게로의 여행

라이드; 나에게로의 여행 ⓒ 티캐스트

 
재키(헬렌 헌트 분)는 엄마다. 그런데 이 엄마 좀 이상하다. 아들 앤젤로(브렌튼 스웨이츠 분)의 방문 앞이 재키의 잠자리다. 앤젤로가 어렸을 적 엄마 재키는 아들 방 문 앞에서 책을 읽다 잠을 청했다. 과거엔 아들이 어려서 그랬다 치지만, 재키의 이상한 잠버릇은 아들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지속됐다. 심지어 재키는 아들이 집에서 고작 몇 백 미터 떨어진 대학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자, '멘붕'에 빠진다.
 
그런데 사고가 생겼다. 그렇게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부서질까 밤낮 가리지 않고 소중하게 지키던 아들이 사라진 것이다. 재키는 아들이 대학 입학 전에 이혼한 전 남편이 사는 LA로 잠시 휴가를 떠난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대학에 자퇴서까지 내고 떠났다. 당연히 재키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엄마 재키는 아들을 찾기 위해 LA로 향한다.  
 
LA로의 여행은 그녀에게 보통의 도전이 아니다. 오랫동안 뉴욕에 있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한 재키는 '워커홀릭'이었다. 그동안 그녀는 남들 다 가는 휴가 한 번 안 갔을 뿐만 아니라 헬스장에서 원고 교정을 볼 정도로 일에 매몰돼 있었다. 그런 그녀에겐 하던 일을 멈추고 살던 곳을 떠난 아들을 찾는 여정 자체가 버거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LA에서 아들을 만났지만, 아들은 도리어 엄마에게 큰 소리를 친다. 자신은 작가가 되려고 하고 작가는 꼭 대학을 다닐 필요가 없으니 이 여유로운 LA 바닷가에서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글을 쓰겠단다. 엄마 재키는 그런 아들 앞에서 대학에 가지 않고 작가가 되었지만 말년이 불행했던 작가들의 이름을 늘어놓지만, 아들은 요지부동이다. 심지어 뉴요커에 워커홀릭인 엄마를 비웃는다. 서핑 한 번 해보지 않은, 아니 수영을 해도 물에 머리 넣는 것조차 하지 않는 엄마가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알겠냐는 것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엄마의 그 지독한 모성애로 인해 숨이 막힌단다.
 
엄마란 둥지에서 당당하게 떠나 그동안 그 둥지가 자신을 옭아맸다고 고백하는 아들을 바라보던 재키는 이후 의외의 선택을 한다. 바로 서핑을 배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재키는 편집자로서 작가지망생인 아들의 글에 시시콜콜 간섭하던 자신이 아들이 좋아한다는 서핑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또 그런 자신을 무시하는 아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들 앞에서 당당히 서핑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말겠단 결심으로 서핑에 도전한다.
 
그런데 보기엔 그저 만만해 보이던 서핑이 쉽지가 않다. 서프보드를 물 위에 띄우고 올라가서 서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올라타는 것조차 난관이다. 그래서 바닷가에서 만난 이언(루크 윌슨 분)에게 서핑을 배우며 아들 앞에 당당하게 나설 날을 손꼽지만, 녹록지가 않다. 설상가상으로 오랫동안 휴가 없이 일해 온 직장에선 연락이 두절됐단 이유로 해고 통보까지 받는다. 결국 재키는 폭발하고, 아들 앤젤로를 향한 집착적인 모성에 다른 이유가 있음이 드러난다.
 
큰 일을 겪고 남편과 이혼한 뒤 오로지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들여다 볼 시간조차 없이 일만 하던 재키. 그렇게 오랜 시간 살아온 그녀는 아들을 찾아 온 LA에서 그동안 자신의 삶을 지탱해 온 '삶의 루틴'에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바다로 간 엄마 
  
 라이드; 나에게로의 여행

라이드; 나에게로의 여행 ⓒ 티캐스트



재키는 파편만 남은 빈 둥지에서 망연자실하는 대신 바다로 향한다. 그녀에게 원래 서핑은 아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수단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직장도 잃고 아들도 잃은 지금 재키에게 위로를 주는 건 오로지 서핑뿐이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재키는 벽장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LA의 바다로 온다. 서프보드를 타고 바다로 나간 재키는 상자 속에 담긴, 그동안 버리지 못했던 상처를 떠나보낸다. 그리고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겠다고 찾아온 앤젤로에게 자신은 LA 바다에 남겠다고 말한다. 이제 더 이상 아들을 지키겠다고 안달하던 엄마는 없다.
 
빈둥지증후군. 자신의 삶의 일부를 양보하며 아이를 키운 엄마들은 대부분 겪을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통과 의례다. 늘 누군가를 위해 살며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없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엄마들에게 <라이드 : 나에게로의 여행>이 전하는 메시지는 담백하고 명쾌하다. 자신을 돌아보라,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라. 멋지게 파도를 타는 재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확 뚫린다. 문득 나도 올 여름 서핑에 한 번 도전해볼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샘솟는다.
 
한동일씨의 저서 <라틴어 수업>에 '삶의 여집합'이란 말이 나온다. 나를 상실감에 빠뜨린 삶의 그 무엇이 있겠지만, 돌아보면 나를 슬프게 하는 그 무엇을 제외한 삶의 여집합이 여전히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삶의 나머지인 여집합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정답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아들을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 자신의 것이 된 서핑을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타는 재키처럼 우리도 자신의 '서퍼보드'를 챙겨보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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