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드 가드> 스틸 컷

영화 <올드 가드> 스틸 컷 ⓒ 넷플릭스

 
죽지 않은 능력을 지닌 '앤디(샤를리즈 테론)'는 긴 시간 동안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이들을 모아 하나의 부대를 만든다. 정체를 숨긴 채 인류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던 팀은 어느 날 CIA 요원 '코플리(추이텔 에지오프)'의 요청을 받아들여 끌려간 여성과 아이들을 구하는 긴급 임무에 나선다. 그러나 그들이 작전지에 도착해 임무를 수행하려는 찰나에 그들은 기습 공격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그들의 능력을 확인한 천재 과학자 '메릭(해리 멜링)' 박사는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해결할 기회라고 판단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앤디와 팀을 사로잡으려 한다. 이에 앤디는 새로운 불멸자 '나일(키키 레인)'을 만나 팀에 합류하도록 설득하며 코플리와 메릭의 음모에 맞선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영화 프랜차이즈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프랜차이즈의 첫 번째 작품의 성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때 첫 번째 작품은 시리즈의 중심이 될 주인공의 개성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다른 프랜차이즈와의 차별점을 명확히 제시하면서 팬들이 지속적으로 시리즈를 찾을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시작을 알린 <아이언맨>은 토니 스타크라는 주인공을 매력적으로 구축하는 데 집중했고, 동시에 '슈트를 만드는 히어로'라는 차별화된 정체성을 확립하는데도 성공했다.

절반의 성공

7월 10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액션 영화 <올드 가드>에게 주어진 역할은 <아이언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말을 통해 속편을 암시하는 만큼, <올드 가드>는 죽지 않는 초능력자 그룹의 리더인 앤디만의 캐릭터성을 제시하고 액션 영화로서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줘야만 했다. 문제는 이 영화가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으로서 절반의 성공만을 거뒀다는 사실이다. 

우선 <올드 가드>는 냉소적이고 무뚝뚝해서 자칫 전형적인 첩보원 혹은 킬러로 보일 수 있는 주인공 앤디라는 캐릭터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데뷔시킨다. 특히 영화는 플래시 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그녀가 왜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는지를 공들여 묘사하고, 앤디의 과거에 대한 관객의 궁금증을 점진적으로 충족시키며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태어난 날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긴 시간을 살아온 앤디는 자신의 팀과 함께 정의를 위해 싸우며 인류를 보호했고, 그 투쟁만이 자신의 끝나지 않는 삶의 가치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오랜 투쟁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어린이 같은 약자 혹은 소수자들이 탄압받는 세상은 바뀌지 않고, 긴 시간 많은 이들에게 쫓기면서 동고동락한 전우들을 하나둘씩 잃게 되자 그녀는 또 다른 불멸자 나일의 존재를 깨닫고도 찾지 않을 만큼 지쳐버린다. 이처럼 카리스마와 냉정함 이면에서 수 천년 간 쌓인 앤디의 깊은 아픔과 슬픔을 영화는 가능한 한 차분하게 풀어내며 관객들로 하여금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회의감과 피로감에 물들어 있던 앤디는 다시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세상은 좋아지지 않았고 자신의 노력을 배신한다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세상이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부상을 치료할 약을 구하기 위해 편의점을 들린 앤디에게 직원은 어쩌다 다쳤는지, 범죄자인지 아닌지를 묻기보다는 대가 없는 선의로 응급조치를 해준다. 도움을 받은 만큼 다시 베풀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에 더해 러닝타임 내내 앤디를 밀어내던 나일은 그간 몰래 인류를 위해 싸워 왔던 앤디의 진심을 깨닫고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선의가 선의를 낳고, 도움이 또 다른 도움을 낳는 과정을 접하면서 앤디는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이처럼 캐릭터의 복잡한 내면과 그 변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묘사한 결과, 앤디의 좌절을 함께 경험한 입장에서 그녀의 변화는 다음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성공한 액션 영화의 필수 조건
 
 영화 <올드 가드> 스틸 컷

영화 <올드 가드> 스틸 컷 ⓒ 넷플릭스


그러나 주인공의 성공적인 데뷔에도 불구하고, <올드 가드>를 훌륭한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 전반적으로 차별화된 고유의 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선 액션 영화를 표방하는 <올드 가드>이지만, 작중 다른 영화들에서 보지 못한 신선한 액션은 찾아보기 어렵다. 죽지 않는다는 초능력을 이용해 상대방의 허를 찌르고 상대를 지치게 만들어 실수를 유발하는 식의 액션은 이미 엑스맨 시리즈가 울버린과 데드풀을 통해 20여 년간 보여주던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성공한 액션 영화들이 각기 자신만의 고유한 액션을 선보이면서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특히 아쉬운 부분이다. 예를 들어 제이슨 본 시리즈는 핸드 헬드 카메라와 짧은 쇼트들의 연결을 통해 현실적인 액션을 연출했다. <맨 오브 스틸> 같은 DC 유니버스 영화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존재들 간의 거대한 전투 스케일을 건물이 무너지고 도시가 초토화되는 식의 리액션을 통해 강조한다. 샤를리즈 테론이 출연한 다른 액션 영화 <매드 맥스> 역시 카 체이싱이 구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액션을 시도하며 관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올드 가드>는 그저 샤를리즈 테론의 아크로바틱 한 몸놀림을 카메라에 담는 것에 그치고 만다. 

작중 앤디가 독특한 형태의 도끼와 검을 즐겨 사용하는 것을 그나마 고유한 특징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주로 총격전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냉병기의 등장은 역으로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과거 동료들과의 인연이 담겨 있거나 고대로부터 활동해온 그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무기로 묘사할 수도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으면서 설득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앤디처럼 죽지 않고 치유력을 지닌 데드풀이 검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데드풀>이 그가 실수로 총을 집에 두고 왔다는 식의 유머로 어떻게든 이유를 제시하는 것과는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더 나아가 성공적으로 보이는 앤디의 캐릭터성도 다른 영화의 기시감을 완전히 피해가지는 못한다. 특히 죽지 못하는 삶에 지친 인류의 수호자라는 정체성은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배우 개인의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작품인 <로건> 속 울버린을 빼다 박은 수준이다. 본인의 능력을 잃어가면서 더욱 괴로움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하게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미래 세대의 후계자를 만나는 것, 그와의 충돌과 갈등으로부터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하면서 새로운 세대를 위한 삶을 살기로 마음먹는 스토리 전개 역시 매우 유사하다. <올드 가드>의 배경인 북아프리카 및 중동과 <로건>의 배경인 멕시코 북부는 위치만 다를 뿐 황량한 광야라는 공간적 특성을 공유하며 기시감을 더한다. 

지나치게 평면적인 악역

<올드 가드>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스토리의 전개나 액션 연출에 있어서 부족한 고유성과 차별성은 더욱 도드라진다. 넷플릭스의 장점 중 하나는 실험적인 영화나 특색을 살린 영화들이 제작될 수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CGI 기술을 도입했던 <아이리시 맨>,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흑백 영상으로 담아낸 <로마>, 근래 보기 드문 중세 시대의 전쟁과 정치적, 역사적 배경을 펼쳐 보인 <더 킹: 헨리 5세>, 마이클 베이 식 액션의 최대치를 보여준 < 6 언더그라운드 > 등이 그 예시다. 이 영화들과 비교하면 <올드 가드>는 과감하거나 독특한 시도가 거의 보이지 않으며 주연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한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그 외에도 악역을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설정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코플리는 가족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는 진부한 동기를 늘어놓는다. 앤디와 그녀의 동료들을 약품 개발을 위한 실험대상으로 취급하는 메릭 박사의 경우에는 설득력 있는 동기가 제시조차 되지 않는다. 그는 인권을 비롯한 보편적 가치를 저버린 이 실험이 인류를 위한 희생이라는 공리주의적 관점을 되풀이하는데, 근거를 말해주지 않다 보니 그의 주장은 원론적이고 공허할 뿐이다. 그렇다 보니 메릭 박사는 평면적이고 전형적인 소시오패스 유형의 악당에 그친다. 

따라서 <올드 가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갈리는 영화다. 주인공인 앤디의 인상적인 소개, 팝콘 무비로서 충분한 재미, 그리고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선사함에도 불구하고 기존 히어로, 판타지, SF 영화들과 다르지 않은 설정, 스토리 전개, 진부한 악역, 그리고 특색 없는 액션이라는 단점을 가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만족스럽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여전사의 데뷔, <올드 가드>는 이렇게 절반의 성공이자 절반의 실패로 마무리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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