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광주 비디오: 사라진 4시간> 이조훈 감독 인터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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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2일 '5.18진상조사위원회'가 조사를 개시했다. 2018년 2월 여야 합의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된 지 15개월 만의 일이다. 조사위원회는 1차 조사과제로 ▲발포 명령자 ▲민간인 집단 학살 ▲북한군 600명 투입설 ▲여성 성폭력 문제 등을 선정했다. 

그러나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번에도 조사위원회에 강제 조사권은 없기 때문이다. 5.18 관련 조사만 벌써 열 번째인데, 그동안 한 번도 강제 조사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조사 대상자가 출석하지 않겠다고 하면 조사위원회는 그를 조사할 방법이 없다. 지난 6월 민주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왜곡하면 형법상 명예훼손죄보다 무겁게 처벌하는 '5.18 역사왜곡 처벌법'과 함께 조사위원회에 강제 조사권을 부여하는 진상규명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새로운 시사점을 던지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오는 16일 개봉 예정인 다큐멘터리 <광주 비디오: 사라진 4시간>(아래 <광주 비디오>)은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벌어진 발포 4시간의 기록을 추적한다. 

5월 18일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을 알리기 위해 당시 시민들은 직접 영상물을 만들고 VCR(비디오 카세트 레코더)을 통해 전국에 전파했다. '광주 비디오'라 불렸던 이 영상물은 삼엄한 감시를 피해 전국 대학가, 교회 등지에서 상영됐고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실제 당시 광주 비디오를 만든 주역들을 직접 섭외해 '광주 비디오'의 탄생기와 복사 및 유포 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또한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5월 21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전남도청 앞 광장을 촬영한 기록이다. 계엄군은 이날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오후 1시부터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당시 외신 기자들은 물론, 국내 언론, 보안사령부 편의대 등 수십 대의 카메라가 현장에 존재했지만 사라진 4시간의 기록은 40년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군사안보지원 사령부(옛 기무사령부)는 5.18 광주항쟁과 관련된 1700여 장의 사진 자료를 국가기록원에 이관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4시간을 기록한 자료는 없었다.

이조훈 <광주비디오> 감독은 누군가에 의해 편집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당시 광주에서 촬영된 국내 언론의 사진들은 대부분 신문사 자체 검열과 보안사 검열을 거쳐 공개됐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취재 과정에서 황종건 동아일보 기자를 만났다. 당시 필름은 보통 24장이지 않나. 6장씩 4줄인데, 먼저 신문사에서 스스로 검열을 하고 6장 중 2장을 골라냈다더라. 4장씩 4줄만 보안사령부에 제출을 한 거다. 그걸 또 시청에 있던 보안사가 보고 다시 검열해서 보도되는 식이다. 동아일보든, 보안사든 누군가는 원본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KBS에 남아 있는 5.18 기록물들의 상당수도 이미 편집된 상태라고 말했다. 

"KBS에 남은 자료들도 꽤 많은 필름이 잘려 있더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이름이 나올 만한 타이밍에 끊긴다든가.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은 다 가려져 있다. 이건 분명 원본 영상이 아니다. 누군가 편집하고 (원본은) 따로 보관하지 않았을까 싶다. 1차 진상조사위에서 활동했던 김희송 교수님과 인터뷰를 했을 때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원본은 버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원본이 있어야 왜곡한 자료와 자꾸 비교하면서 완성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범인들이 거의 원본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더라. 서류도 마찬가지고. 아마 누군가 갖고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는 당시 군이 광주 항쟁을 왜곡하기 위해 연출을 시도한 정황도 포착했다고 말했다. KBS에서 기록 영상물을 보다가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는 "위치, 각도상 편의대가 찍은 걸로 추정되는 (해당 영상에서) 군인이 계속 반복해서 재연한다. 한 시민을 잡아끌어서 데려가는 장면인데, 계속 다시 하라고 한다. 연출을 하는 거다. '다시 와, 다시 걸어와.' 찍고 한번 더 찍고 또 찍는 장면이 영상으로 남아 있다. 홍보용으로 찍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라진 4시간의 기록, 꼭 찾아야 했던 이유
      

▲ 이조훈 감독, 영화 <광주 비디오: 사라진 4시간> 만든 이유 다큐멘터리 영화 <광주 비디오: 사라진 4시간> 연출을 맡은 이조훈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CVG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린 특별 시사회에 참석해 영화를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 유성호

 
<광주 비디오>는 지난 5월 15일 KBS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송돼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광주 비디오>는 15일 방송분에 20여 분가량의 감독 확장판을 추가한 버전이다.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모처에서 이조훈 감독을 만났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다큐멘터리 영화 <광주 비디오: 사라진 4시간> 이조훈 감독 인터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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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광주 항쟁을 주제로 여러 다큐멘터리, 극 영화가 나왔다. <광주 비디오>를 통해 어떤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나.
"지금까지 만들어진 광주에 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들이 주로 피해자의 관점에서 출발하지 않나. 그들은 어떤 고통을 겪었나, 가해자가 누구인가. 영화뿐만 아니라 방송국에서도 거의 매년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대부분 그런 내용이었다. 그 관점으로는 더 이상 보여줄 수 있는 게 없겠다 싶었다. 가해자들은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 취재해보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에서 공모작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템을 고민하다가, 제가 40대이고 광주항쟁 40주년인데 '우리 세대는 광주를 어떻게 접했나'라는 게 떠올랐다. 저는 광주 출신인데 당시엔 너무 어려서 잘 몰랐다. 나중에 '광주 비디오'라는 걸 접하면서 알게 됐다. 그 비디오는 누가 만들었을까를 찾다가 '오! 광주' 제작 이야기라는 아카이브 자료를 봤다. 민주화기념사업회에서 제작한 건데 너무 재미있어서 더 취재해보자 싶었다. 알고 보니 광주 항쟁을 기록한 비디오가 7개나 됐다. 일본 조총련에서 만든 비디오도 있고 캐나다에서 만든 것도 있고 광주 시민들이 직접 만든 것도 있고 미국 뉴욕 한인회에서 만든 것도 있고 여러 가지였다. 이걸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영화에서 당시 실제로 광주 비디오를 제작, 유포하신 분들이 직접 재연을 했고 상황을 실감나게 연출했다.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스태프들에게 '저 분들이 한 일이니 직접 연기하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일단 민승연 (미국 뉴욕 한인회 교민들이 만든 민주구락부) 회장님은 자기 이야기 하는 걸 되게 좋아한다. 어르신들이 원래 외로워서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시지 않나. 그래서 '직접 하세요' 그랬다. 전화 거는 장면도 부탁드리고 했더니, 엄청 열심히 하셨다. '휴대폰인데 어떡해? 집 전화로 해야하나?' 하면서 신나신 게 너무 귀여우셨다. 이야기의 브릿지를 아예 당사자들이 (연기)하게끔 연출하니까 보는 맛이 더 생겼던 것 같다. 

백미는 대구에 비디오테이프 전달한 이도준씨인데 그분도 정말 재미있었다.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는 분이다. 그런 분들은 시키면 정말 재미있다. 기차를 타러 가다가 거꾸로 타서 웃고 신부님은 화내기도 하고. 화면도 우리는 와이드로 찍는데 옛날 녹화분은 (화면 비율이 달라서) 끊어서 편집했다. 마지막에 비디오를 신부님에게 전달하는 장면에서 (화면 비율이) 늘어난다. 어느 순간부터 관객들이 잘 모르게, 보다 보면 화면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가 하게끔 편집했다. 그런 게 재미있었다."

- 사실 우리는 '사라진 4시간'에 발포가 있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그럼에도 4시간의 영상, 사진자료를 꼭 찾아야 했던 이유는 뭘까.
"저희도 기획 단계에서 그런 고민을 했다. '찾으면 뭐가 다르지?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니야?' 그래도 알고 있다는 것과 눈으로 확인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했다. 5월 광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1980년대에도 모두가 쉬쉬하면서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1985년 광주 사진전부터 시작해서 광주 비디오 상영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걸 눈으로 직접 확인한 거다. 그리고 분노하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40주년이니까 기념사적으로만 조명하고 지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과거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에서 끝날 것 같았다. 아직도 처벌 받아야 할 사람들이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현재적인 의미를 다시 찾아서, 그들을 처벌할 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총에 맞아 사람이) 죽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총에 맞는 장면을 본 적은 없지 않나. 그런 게 공개됐을 때 시각적인 충격, 공분이 만들어져서 처벌을 이끌어낼 수 있고 환기시킬 수 있을 것이다. 4시간에 대한 영상을 못 찾더라도 이야기를 끌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던져놓자. 진상조사위에서든 어디서든 재조사할 수 있게끔 하자는 게 목표였다." 

- 처음에는 사라진 4시간이 아니라 홍콩 민주화 시위로 연결지으려고 했다던데, 무산된 이유는 무엇인가.
"광주 5.18민주화운동에 관련된 단체의 몇몇 분들이 홍콩에 직접 가서 연대 발언을 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계셨다. 6.10 항쟁과 관련된 분들도 서울에 모여서 회의를 했다더라. 직접 갈까, 말까에 대해. 그런데 그게(가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분들이) 간다면 촬영팀은 무조건 따라가겠다고 했다. 거기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고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걸 기록해서 보여주면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광주 정신이라는 게 동아시아에서는 근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지 않나. 현재 진행형인 홍콩에서도 그래서 그걸 요구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무산됐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하셨지만, 아무래도 항쟁 현장에 있으셨던 분들은 비슷한 현장에 다시 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트라우마도 있으시고 여러 가지로 고민되신 것 같았다. 힘들어 하셨다. 연대 발언만 이쪽에서 한 걸로 마무리 됐다."

"2명밖에 안 죽었다"는 뻔뻔한 거짓말

- KBS와 협업해 제작하면서 KBS 자료가 영화에 많이 활용됐다. 영화에 넣지 못했지만 기억에 남는 자료가 있나.
"국가 기간방송사인 KBS를 거쳐간 자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내가 KBS와 오래 작업을 해왔고, 그래서 제안했는데 마침 KBS 본사에서도 5.18을 기념할 만한 작업을 찾고 있었다더라. 그러다가 내 '광주 비디오' 이야기가 채택된 거다. 계약 조건이 KBS 자료를 무상으로 쓰는 것이었다.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으니 너무 좋았다. 7차, 8차까지 자료실을 뒤졌다. 기존에 봤던 자료들도 있었지만 점점 못 보던 것들이 나왔다.

1980년 6월 초에 만들어진 '안정만이 살길이다'라는 제목의 대한뉴스(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든 국정 홍보물)가 있었다. 20분 분량인데 그 중 광주 분량이 5분 정도였다. 국정홍보처 기자들이 출연하는 장면들도 있었고. 1980년 서울의 봄 민주화운동이 5월 15일까지 있지 않았나. 그때까지 취재된 것들이 필름으로 나오더라. 5월 18일 상황부터는 필름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당시 홍보처는 광주까지 못간 것 같다. 그래서 일본 NHK가 찍어서 텔레비전에 방송되는 걸 카메라로 찍어서 급하게 편집해서 '안정만이 살길이다'를 만든 거다. '광주는 폭도들에 의해 장악됐다가, 계엄군이 완전히 진압했고 안정으로 돌아왔으니 까불지 말고 잘 살자'는 내용이었다. 

또 그걸로 영어판까지 만들었더라. '리벨리언 인 광주 시티'(Rebellion in Gwangju City)라는 제목으로, 영어 자막도 넣고. 대한뉴스의 성우가 영어로 녹음해서 7분 분량을 만들었더라. 그런데 편집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가편집 클립이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해외로 보냈다면 이미 편집이 완료돼서 클립이 없을텐데, 해외로 나가지는 않은 것 같다. 국내에서 만든 영상이 대기 상태로 KBS에 남아 있었던 거다. 그걸 발견한 게 재미있었다. 영화에도 나오듯, (정부에서) 폭도라고 규정하는 걸 그들이 자료로 남긴 거다. 그건 정말 이번에 최초로 발견된 자료였다. 연구자들도 보지 못했고 KBS를 뒤져야만 나오는 자료였다. 영화 특별 시사회 때 5.18 진상조사위에서 한 분과가 모두 오시기로 했다. 그 자료를 전달해서 진위를 파악해달라고 할 계획이고, 도움이 됐으면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광주 비디오: 사라진 4시간> 이조훈 감독 인터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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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계엄군이 진실을 어떻게 은폐했는지, 사람들이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촬영 화면으론 처음 공개된 것 같은데.
"5월 27일은 도청에서 시민군을 사살했다는 것이 이미 확증된 상태였고 그 숫자도 발표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20사단 대대장 김동진 대령은 미국 ABC 기자 앞에서 공식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그게 영상으로 남아서 보도가 됐다. MBC에도 각도가 다르게 찍힌 그림이 있더라. 두 명밖에 안 죽었다고 말한 게 그대로 5월 27일 뉴스에 보도됐다. '폭도는 2명만 죽었고 시민은 안 죽었다.' 폭도라고 부르건, 시민이라고 부르건 수많은 주검이 현장에 널려 있는데 그런 거짓말을 했다. 그 증거자료가 거기서 나온 거다.

재미있게도 KBS는 2003년에 그 ABC 짐 로리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27일의 상황도 듣고, 시체 100구를 넘게 봤다는 멘트도 받아놓고 왜 한 번도 방송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 찍었는데 왜 방송을 안 했을까. 저는 그걸 처음 영화에 갖다 쓴 것이다. 그 이후에 방송사들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밝히는 것을 등한시 했던 게 아닐까 싶다. 혹은 관심이 없었거나. 자료를 찾다보니까 당시부터 이미 (군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는 걸 드러내는 증거들이 굉장히 많더라. 1988년 청문회 때부터 증거가 많았지만 수사와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증거를 제시하면서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하지 않나. 그들이 청문회에서 '위증의 벌을 받겠다'고 했는데 한번도 그 벌을 받은 적이 없다. 김동진은 그 이후에 참모총장 거쳐서 국방부 장관까지 올라갔다."

- 광주 출신이지만 5월 18일의 진실을 '광주 비디오'를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어떻게 보게 됐나.
"1985년쯤 광주 시내 터미널에 가면 가판대에 빨간색 표지의 사진첩이 꽂혀 있었다. 첫 페이지에는 총에 맞아서 머리가 거의 부서진 사람의 사진이 네 컷 정도 다른 사진들과 함께 붙여져 있었다.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보기 힘드니까 안 보려고 하고 외면했다. 1988년, 1989년에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광주 비디오를 봤는데 역시나 충격적이니까 못 보겠다고 하고 중간에 뛰쳐나왔던 기억이 있다. 결국은 끝까지 보기는 봤다. 관련 책들도 사다 보게 되고, 사회 문제를 받아들이게 됐다. 아마 그 기억 때문에 저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것 같다. 영화에 나온 분들도 광주 비디오를 보고 외면할 수 없었다고, 자기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면에서 저도 똑같은 사람이었지."

과거사법 통과 이끈 <서산개척단>처럼, '광주 비디오'도...
 
 다큐멘터리 영화 <광주 비디오: 사라진 4시간> 연출을 맡은 이조훈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CVG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린 특별 시사회에 참석해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광주 비디오: 사라진 4시간> 연출을 맡은 이조훈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CVG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린 특별 시사회에 참석해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5월 출범했다. 발포명령자를 조사 과제로 내세웠지만 전두환은 아직 자기가 발포 명령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발포 명령을 한 사람을 40년간 찾아왔다. 그런데 패러다임이 바뀔 필요가 있다. 그 순간에 발포명령을 한 사람은 현장에서 판단하고 발포 시킨 사람이다. 그 사람은 조선대에 있었고 무전으로만 들으면서 명령한 사람이다. 현장에서 실탄을 언제 발포하느냐는 현장 지휘관이 알아서 할 몫이고 발포 명령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게 하나의 큰 작전이었다. 이들이 청문회에서 실탄을 언제부터 소지했냐는 걸 계속 위증한다.

실탄이 지급된 시점은 발포 명령이 이미 포함된 시점이다. 진돗개1 발령이다. 진돗개1 발령한 시점은 21일날 새벽 4시. 어디? 보안사 작전사령실. 책임자는 보안사령관 전두환. 이미 발포명령은 진돗개1 발령에 포함돼 있었던 거다. 그렇기 때문에 실탄이 지급됐고 군인 한 명당 60발씩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위증을 했을까. 4.19 혁명 당시 발포 명령을 내린 최인규, 곽영주가 사형을 당했거든. 판례가 있기 때문에 발포했다고 인정하는 순간 죽는 거다. 발포하라는 명령이 공개되면 안 된다고 입단속을 해왔고, 그래서 1988년부터 위증을 해온 거다.

1988년 청문회 자료들을 보고 있는데, 그때 도청 앞에 있었던 61대대장 안부웅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증언을 한다. '위증의 벌을 받겠다'고 해놓고 계속 위증을 한다. 다음 작품은 제목을 '위증'으로 해볼까 싶다. 그들의 위증을 하나씩 반박할 수 있다. 이제 자료들이 많기 때문에."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20대 국회에서 마지막으로 통과됐다. 앞서 영화화 했던 '서산개척단' 사건 역시 이번에 재조사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형제복지원 최승우씨가 몸으로 많이 싸워주셔서 국회에서 받아들여졌다. 통과된 날 서산개척단 정영철 어르신에게 전화가 왔더라. '보상이고 뭐고, 과거사법에 포함됐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당신이 큰일했다'고 하시더라. 저는 되게 신기했다. 많은 독립영화 감독,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15년, 20년 영화를 만들어왔지만 다 지쳤었다. '우리가 만든 것 누가 보냐. 우리끼리만 보는 것 아니냐.' 맨날 그렇게 얘기했는데 보는 사람이 있고 이게 (법에) 반영이 되는구나. 그게 너무 뿌듯하고 재미있었다. <광주 비디오>도 개봉되고 나면 사라진 4시간에 대한 자료를 찾게 되는 거 아닐까. 그런 기대감도 든다."

- 올해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인데 코로나 시국 때문에 크게 조명하지 못했다. 개봉을 앞두고도 아쉬움이 있나.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은 만들어놓으면 누군가는 보겠지, 언젠가는 꺼내보겠지 하는 마음이 있다. 이번 영화도 그렇다. 광주시에서 개봉 지원을 해주셨고 최대한 극장에서 많이 보실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코로나 19 때문에) 못 보시더라도 IPTV 통해서 공개할 것이고, 이를 통해 진상조사위에서 비슷한 비디오라도 찾는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때 또 재개봉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심어놓으면, 영화가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현실 속에서 진실을 추적하는 것과 영화가 추적하는 진실이 맞물려서 언젠가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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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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