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바람과 구름과 비>의 한 장면

TV조선 <바람과 구름과 비>의 한 장면 ⓒ TV조선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TV조선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도 시련을 겪고 있다. 과거의 여느 드라마들과 달리 이 드라마는 흥선군(전광렬 분)을 아주 가난하게 묘사하지는 않는다. 드라마 속의 흥선군은 난초 그림을 팔아 생활에 보태기는 하지만, 그리 어렵게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흥선대원군으로 격상되기 이전의 흥선군의 품위나 위상과 관련해서는 여느 드라마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실제 역사와 너무도 대조되는 방향으로 흥선군의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다.
 
드라마 속의 흥선군은 세도가문인 장동 김씨(안동 김씨)들한테 말 못할 수모를 당한다. 최근 방송분에서는 정권 실세인 김병운(김승수 분)이 주점 술자리에 동석한 흥선군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장면이 묘사됐다. 동석한 여성의 치마 밑을 기어보라고 시켰던 것이다. 주점에 고용돼 일하는 그 여성이 크게 놀라는 가운데, 흥선군은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웃음을 띠며 치마 밑을 기어 통과했다.
 
흥선군이 안동 김씨들에게 수모를 당한다는 이 같은 설정은, 흥선군을 상갓집 개로 묘사한 김동인의 소설 <운현궁의 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933년 4월 26일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된 <운현궁의 봄>은 아들이 왕이 되기 전의 흥선군을 세상에 둘도 없는 불쌍한 처지로 만들어놓았다.
 
이 소설은 흥선대원군 이전의 흥선군을 다루는 대목에서 그를 17회나 '상갓집 개'로 표현했다. 이 단어를 한자어로 바꾼 상가구(喪家狗)까지 포함하면 18회 분량이다. "상갓집 개와 같이 가는 곳마다 구박을 받는 이 공자는 그래도 행여 구박하지 않는 고마운 세가(권세가)가 있지 않나 하여, 대목의 바람 찬 거리거리를 헤매고 있었다"고 소설은 묘사한다.
 
하지만 이것은 소설 이야기다. 실제의 흥선군은 전혀 상반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왕실 종친 중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왕족이었다.
 
훗날 고종 임금이 될 둘째아들 이명복이 태어나기 14일 전이었다. 음력으로 철종 3년 7월 10일, 양력으로 1852년 8월 24일이었다. 선비들의 여론을 대변하는 홍문관에서 종5품 부교리 김영수가 철종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이 날짜 <철종실록>에 따르면, 상소문에는 "종친들의 행동은 한결 같이 남연군·흥인군·흥선군을 본받도록 하소서"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남연군은 흥선군의 아버지이고, 흥인군은 형이다.
 
 본문에 인용된 “종친들의 행동은 한결 같이 남연군·흥인군·흥선군을 본받도록 하소서”라는 <철종실록>의 문구.

본문에 인용된 “종친들의 행동은 한결 같이 남연군·흥인군·흥선군을 본받도록 하소서”라는 <철종실록>의 문구. ⓒ 저작권 소멸

 
상소문에서 드러나는 것은, 선비들이 일부 왕족들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낸 동시에, 왕족 중에서도 흥선군 가족에 대해서는 존경의 시선을 보냈음을 알려준다. 흥선군이 상갓집 개처럼 천덕꾸러기 생활을 했다면, 이런 상소문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흥선군이 받은 대우는 상갓집 개와는 너무도 판이했다. 그는 세상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가 왕족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결정적 이유가 구한말의 저명한 정치평론가인 황현의 <매천야록>에 나타난다.
 
이 책에 따르면, 이미 철종시대 초반부터 '운현궁에 왕기(王氣)가 떠돈다'는 소문이 나돌고, '관상감에서 성인이 나실 것'이라는 민요가 유행했다. 오늘날의 기상청에다가 예언적 기능을 더한 관청인 관상감은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현대건설 본사 부근에도 있었지만, 한때는 그 인근인 운현궁 자리에도 있었다. 그래서 '관상감에서 성인이 나실 것'이라는 민요는 '운현궁에 왕기가 떠돈다'는 소문과 같은 내용이었다.
 
운현궁에서 왕이 나올 거라는 예언은 사실 예언이랄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철종이 후계자를 낳지 못할 경우에는 남연군의 후손들 중에서 다음 왕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2008년에 <한국인물사연구> 제10호에 실린 역사학자 임혜련의 논문 '19세기 신정왕후 조씨의 생애와 수렴청정'은 철종의 후계자 문제를 다루는 대목에서 "철종이 승하하였을 때 왕실의 종친으로는 남연군의 후손들이 유일하였다"고 한 뒤 "남연군과 그의 아들들은 이미 순조대 이후로 종친으로서 왕실의 행사에 참여하여 그 입지를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을 왕계(왕통)로 입후(입양)하여 즉위시키는 것보다는 안정적인 계승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흥선군의 집에서 차기 임금이 나올 거라는 소문은 단순한 예언 차원에 그치지 않고 노랫말로까지 만들어져 조선 대중가요의 유행가 목록에까지 올랐다. 그런데도 흥선군 일족은 신변의 위협을 겪지 않고 이 시대를 무사히 넘어갔다. 경우에 따라서는 역모죄로 엮일 수도 있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는 흥선군의 지위가 그만큼 공고했음을 뜻한다.
 
사정이 그랬기 때문에 안동 김씨들도 흥선군에게 깍듯이 대할 수밖에 없었다. 사극에서처럼 망신을 주고 수모를 주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1885년에 개화파 인사가 집필한 것으로 추정되는 책으로, 일본 덴리도서관에 소장돼 있다가 한국인 학자 김의환에 의해 발견돼 1987년 국내 학계에 소개된 <흥선대원군 약전>에도 안동 김씨들의 태도가 잘 나타난다.
 
이 책에 따르면, 안동 김씨의 좌장인 김좌근은 흥선군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김좌근은 흥선군과 함께하는 자리에 자기 첩인 양씨를 동석시키곤 했다. 세 사람은 아주 허물없이 지냈다. 또 김좌근의 정치자금이 양씨의 손을 거쳐 흥선군 수중에 들어가기도 했다.
 
김좌근과 함께 안동 김씨 4인방의 일원이었던 김문근·김병국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왕족의 위신에 구애받지 않고 인간관계를 활달하게 넓혀가는 흥선군을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깍뜻하게 대했다. <흥선대원군 약전>은 "김문근과 김병국 역시 대원군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서면서도 대접은 매우 후하게 했다"고 설명한다.
 
4인방 중의 또 다른 멤버인 김병기는 달랐다. 그는 사람들을 허물없이 대하는 흥선군을 무시했다. "다만, 김병기 만큼은 그를 매우 가벼이 여겨 예를 다해 대접하지 않아, 흥선군이 늘 원망했다"고 위 책은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병기가 흥선군에게 수모를 주거나 함부로 대한 것은 아니다. 왕족을 대할 때 표해야 할 최상의 경의를 흥선군에게 표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처럼 역사 기록 속의 흥선군은 아들이 왕이 되고 자신이 흥선대원군으로 격상되기 이전에도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살았다. 집권세력인 안동 김씨의 지도부 4인방에서 중 3명이 그를 극진히 대했다면, 그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바람과 구름과 비>를 비롯한 우리나라 사극들이 흥선군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묘사하는 것은,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는 고대 영웅담의 관점에서 그를 재조명한 <운현궁의 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TV조선 <바람과 구름과 비>의 한 장면

TV조선 <바람과 구름과 비>의 한 장면 ⓒ TV조선

 TV조선 <바람과 구름과 비>의 한 장면

TV조선 <바람과 구름과 비>의 한 장면 ⓒ TV조선

 
영웅이 하층민보다 못한 역경을 이겨낸다는 설정이 20세기 이후의 민주화 흐름에 부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왕족이나 귀족의 자제가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제자리를 회복한다는 고대 영웅담은 실상은 인본주의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아버지 해모수의 혼외자로 출생해 온갖 고초를 겪다가 동부여에서 도망치던 주몽을 물고기와 자라들이 나타나 도와준다는 주몽의 영웅 스토리에 깔린 것은 영웅에 대해 신의 은총을 입히고자 했던 고대인들의 세계관이다.
 
군주가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며 신의 이름으로 나라를 운영하던 고대에는, 신의 은총을 받았다는 이미지가 권력을 정당화하는 최대 무기였다. 이 시대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피해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역경을 신의 은총에 힘입어 극복한다는 스토리가 매력적으로 들렸다. 현대인들은 자기 힘으로 고난을 극복하는 인간을 존경하지만, 고대인들은 신의 은총으로 그렇게 하는 인간을 경외했다.
 
100년 전 작가인 김동인이 왕족을 상갓집 개처럼 묘사한 것은 이때만 해도 고대 영웅담이 통하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비약적으로 발달한 지금 시대에는 신의 은총으로 왕족·귀족의 위상을 되찾는다는 고대 영웅담이 대중의 정서에 부합하기 힘들다. <운현궁의 봄>이 나온지 9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흥선군이 상갓집 개로 묘사되는 것은 한국의 드라마들이 90여 년 전 김동인의 상상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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