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욕창> 포스터

영화 <욕창> 포스터 ⓒ 필름다빈

 
욕창은 한 자세로 있을 때 생기는 피부가 짓무르며 생기는 상처다. 영화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길순(전국향)의 욕창을 계기로 가족들의 욕망을 훔쳐본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엮여 있지만 남보다 더 못한 관계기도 한 가족의 허상이라 해도 좋다.

욕망의 상처 '욕창'

수옥(강애심)은 재중동포로 아픈 남편과 아들을 두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 길순과 창식(김종구)의 입주 도우미이자 길순의 간병인이다. 불법체류자 신세이기에 남들보다 낮은 월급에도 만족하며 집주인 창식과 가족처럼 지낸다. 최근 비자 문제로 남편과의 위장이혼 후 한국 남자와 위장결혼을 준비 중이다. 이집만큼 편의를 봐주는 곳이 없지만 자식들이 찾아와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통에 환멸을 느끼는 중이다.

한편, 창식은 아픈 아내를 대신에 살림부터 간병까지 도맡아 하고 있는 수옥에게 다른 마음이 생겨난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쉬는 날 수옥이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 같아 미행하기도 하고, 괜히 트집을 잡아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 마음을 모르는 수옥은 창식의 태도에 못내 서운하다. 이 집에서 가족같이 열과 성을 다하면 뭐하나 싶다. 가족같이 돌보고, 가족 같아서란 말은 인사치레일 뿐이다.
 
 영화 <욕창> 스틸컷

영화 <욕창> 스틸컷 ⓒ 필름다빈

 
삼 남매 중 둘째인 지수(김도영)는 자식이자 부모, 아내의 역할까지 해내는 억척이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오빠 문수(김재록)와 미국 간 동생을 대신에 유일하게 자식 노릇 하는 딸이다. 사춘기를 겪는 딸과 밖으로만 도는 남편과의 갈등은 지수를 더욱 힘들게 한다. 뭐든 완벽해 보이는 지수에게도 사실 말 못 할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고, 이를 해소하지 못해 마음의 욕창을 키운다.

아줌마가 쉬는 날이면 가끔 엄마를 돌보러 집에 들른다. 그때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엄마 대신 이 집 주인 행세하는 아줌마가 아니꼽지만 내칠 수도 없다. 이 월급에 이렇게 해주는 분을 찾기도 어려우니까 말이다. 그래서 요양원도 생각했지만 강경한 아버지의 반대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전신마비 환자인 엄마에게 욕창이 생기며 지수는 방문간호사를 부른다. 방문간호사는 욕창을 살피며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욕창은 겉에서 봐서는 몰라요. 속이 얼마나 깊은지 문제거든요." 이 말을 기점으로 곪아버린 가족들의 욕망과 상처가 드러난다.

창식과 길순이 40년 넘게 유지한 결혼 생활 동안 외관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내면에 많은 상처가 쌓여 있었을 것이다. 모든  과거를 안은 채 길순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돼 버렸다. 그래서 길순이 자리를 보전하면 할수록 가사도우미이자 입주 간병인 수옥은 이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간다.

티가 나지 않아 더 힘든 돌봄 노동
 
 영화 <욕창> 스틸컷

영화 <욕창> 스틸컷 ⓒ 필름다빈

 
가족이라도 지켜야 하는 선이 있고, 배려해야 하는 도리가 있는 거다. 부모와 자식, 배우자로서의 역할 균형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영화 속 가족은 위태로운 관계에 서 있는 우리 모두의 숨겨진 모습이다.

영화는 다분히 연극적인 요소로 몰입을 높인다. 겉으로 봐서는 쉬이 알 수 없지만 깊은 마음 속에 각자의 욕망이 욕창처럼 돋아났다. 마치 손을 쓸 수 없이 곰팡이 핀 벽지처럼, 뒤틀린 욕망의 퀴퀴한 냄새는 출처를 알 수 없이 더 진해지고 있었다.

영화 <욕창>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돌봄 노동의 실체도 낱낱이 밝힌다. 돌봄 노동은 혼자서 생활 및 생계를 이을 수 없는 노인, 아동, 환자 등을 돌보는 일인데, 여성들이 흔히 도맡는 가사도 돌봄 노동에 포함된다. 무급이거나 무급이 아니더라도 적은 돈을 받고, 그마저도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일. 특히 가족도 아닌 타인을 병간호 할 때면 열과 성을 다해 돌보더라도 돌아오는 질타까지 고스란히 겪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어떻게 죽느냐는 인간 존엄의 문제다. 욕창은 단순한 욕망의 표식이 아니다. 그 한 줌의 욕망도 가질 수 없이 사지가 마비된 수옥이 죽음 앞에서 '나 여기 있소'라고 존재를 드러내는 마지막 발악이다. 아직 살아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스크린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듯하다.

한편, <욕창>은 제16회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 우수상과 이날코 심사위원상 2관왕을 비롯해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되며 평단과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준 작품이다. 김종구, 강애심, 전국향, 김도영, 김재록, 강말금 등 베테랑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심혜정 감독은 실제 돌봄 노동을 하며 받았던 상념을 영화로 옮겼는데, 내러티브를 갖고 있는 강렬한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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