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MOONSUN)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3월 29일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호텔수선화'에서의 공연이었다. 가수 민수와 함께하는 팀 모아(moi)의 이름으로 무대에 선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신시사이저의 건반을 누르자 복고적인 전자음이 고요한 공백 속 간결하게 차례차례 자리를 잡았고, 나른하게 혹은 부드럽게 아지랑이지는 전자음 위로 몽환적인 목소리가 얹히며 짙은 연기처럼 은은히 감각을 채워갔다. 무심하게 다가와 낭만적으로 다가온 음악이 봄날의 밤 긴 여운을 남겼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중인 문선이 본인의 이름으로 첫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지난 18일 공개된 <균열(龜裂)>에는 EP <미지>, 싱글 '느려요' '언젠가 마주칠 일이 또 있겠지'로 꾸준히 본인의 색을 보여온 문선의 세계가 집약되어있다. 지난 결과물처럼 미니멀한 복고의 색이 지배적임과 동시에 실험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 24일 문선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6월 18일 첫 정규 앨범 <균열>을 발표한 가수 문선.

지난 6월 18일 첫 정규 앨범 <균열>을 발표한 가수 문선. ⓒ 영화(@oldboyung, @innalake)


"가사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제목 그대로 '균열'을 담고 싶었어요. 평소 인지조차 하지 못하던 사소한 것 때문에 파생되는 큰 결과들이 많잖아요. 예컨대 바위에 생긴 작은 틈이 암벽을 가르는 자연적인 현상이라든지, 평소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데, 비밀 재료 하나만으로 맛이 확 달라진다든지 하는.
 
앨범 준비하면서 <데미안>을 다시 읽게 됐어요. 책 속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존재를 만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겪게 되었던, 일상의 균열들로 초래된 가치관의 큰 변화에서 전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 제가 맞닿아있는 상황과도 비슷한 지점이 있었던 것 같고요. 음악적으로 좀 더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뚫고 나온, 인생의 균열점으로 봐주셨으면 해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데미안'의 한 구절로부터 시작되는 <균열(龜裂)>은 설명처럼 문선의 자아 속 일어난 틈으로부터의 소리를 담는다. 작품을 시작하는 '나에게 정을 주지 마요'의 허무함부터 은근한 리듬 위 다가와주기를 바라는 '조바심', 넘실대는 마음의 '고도'와 안정적인 '두 세계'가 감정의 파고를 만든다. 래퍼 쿤디 판다(Khundi Panda)가 목소리를 더한 '옵'의 불규칙한 리듬이 혼란스럽기도 하다.
 
"첫 EP <미지>는 과거 제가 발표한 싱글들을 모아 발표한 결과물이었죠. 이번 앨범은 날 것인 저 그대로가, 처음 내러티브를 구성해 본 결과였던 것 같아요. 가장 나다운 소리를 내보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고, 마구 망치고 엉망이어도 된다는 전제를 스스로 붙이며 작업에 임한 덕분에 제 능력 안에서 헤집을 수 있는 공식들을 마구 헤집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첫 앨범이라, 풋풋하고 어린 느낌도 주고 싶어서 앨범의 전체적인 멜로디는 쉽게 구성했답니다.
 
가사 같은 경우는 일상에서 형식적으로 박혀있던 것들을 많이 깨려고 했던 것 같아요. 꼭 좋아하면 꼭 옆에 두어야 한다는 개념들을 깨보고 싶어서 '나에게 정을 주지 마요'와 '조바심'의 가사를 쓰게 되었어요. '거울'에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평생 그대로 볼 수 없는 아이러니함을 담았고요. '균열요정'은 동사 없이 주어만으로 가사를 써서 상상하는 바를 마음대로 노래할 수 있게 된 곡이죠. 사운드적으로도 이게 밝은 노래인지, 어두운 노래인지 그런 느낌조차 오묘했으면 했어요."  
 
 첫 앨범 <균열>을 발표한 문선의 음악은 오묘하면서도 세상에 없는 개성을 갖추고 있다.

첫 앨범 <균열>을 발표한 문선의 음악은 오묘하면서도 세상에 없는 개성을 갖추고 있다. ⓒ 한보경(@bokyoung_han)


언뜻 첫 인상이 낯설수도 있지만 자세히 듣다 보면 익숙한 선율이 들린다. 문선의 음악은 1990년대 장필순, 낯선사람들, 오소영 등 하나음악의 향취와 1990년대 말 밴드 롤러코스터 등 복고적인 한국 가요의 색을 띤다. <균열(龜裂)> 이전 모아의 활동때도, EP와 싱글로도 문선의 음악은 레트로 스타일의 신스음으로 현재의 풍경을 그려왔다.
 
"어릴 때부터 아빠 엄마와 드라이브 다니면서 들었던 1970, 1980년대 음악이 기억에 남아있어요. 송창식, 김민기, 트윈폴리오, 양희은 등 옛 그 시절 감성의 깨끗하고 순수한 가사들이 오래 듣기에 편하더라고요. 1990년대는 제가 살아온 시절이니까 자연스럽게 그 감성들이 흡수되었던 것 같고요. 영어든 한글이든, 가사도 더 제멋대로 쓰고 싶어요. 이번엔 어떤 말이 쓰여있을까, 하고 가사집을 들여다보게 하는."
 
다만 이번 작업에서 개인적으로, 사운드적으로나 편곡적으로 조금 아쉽고 헐거운 부분들이 있었는데, 앞으로 점점 투박하고 날 것이지만 견고하고 단단한 저만의 음악들을 만들고 싶어요.
 
문선이 처음부터 음악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브랜딩, 그래픽 디자인, 공간 기획 및 스타일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그 첫 음악 결과물은 2017년 발표한 싱글 '녹녹(Nok Nok)'이었다. 그래서 문선의 음악은 소박한 청각으로 다가와 뚜렷한 시각적 이미지를 만든다.
 
칸딘스키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균열(龜裂)>의 앨범 커버는 여백으로 출발해 여러 형태가 자리를 잡는 문선의 음악과 꼭 닮았다. '꿈틀꿈틀 매일매일이 다 붙어버릴지도 몰라 / 따끔따끔 찌르다가 슬금슬금 조이다가 팔랑팔랑 흔들다가(…)' ('멍하니') 같은 구체적인 묘사도 새롭다.
 
"요새 가사들에서 자주 보이는 표현과 다른, 더욱이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나만의 것을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나와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 위한 실험이자 도전이었죠. 어릴 때 좋아하는 뮤지션의 노래를 들으면 가사를 들여다보면서 듣는 버릇이 있었어요.
 
모두에게 외면받더라도 제가 만족하면 되는 취미로 출발한 덕에 평소 생각들을 더 솔직하게 적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진심으로 쓰니까, 자기 만족적인 취미로 하는 거니까, 라고 생각했던 출발점 덕분에 평소 생각들을 더 솔직하게 적었고, 그렇게 솔직하게, 진심으로 쓰니까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가사를 들여다보며 공감해주시더라구요."

 
 브랜딩, 그래픽 디자인, 공간 기획 및 스타일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문선은 <균열>로 새로운 본인만의 색을 표현한다.

브랜딩, 그래픽 디자인, 공간 기획 및 스타일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문선은 <균열>로 새로운 본인만의 색을 표현한다. ⓒ DECADENCE OF SEOUL


현재 문선은 <균열(龜裂)>의 CD 발매를 위해 막바지 작업 중이다. 오는 7월과 8월에는 개인 공연을, 9월에는 새로운 뮤지션들과 함께 작은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있다. 스쳐가는 순간 속 빈 틈으로부터 소리를 이끌어내는 문선은 더 큰 확장을 꿈꾸고 있다.
 
"엉망인 채로. 서툶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제 것을 쌓고 싶어요. 소중한 것에 갇혀서 다른 소중한 것들을 못 보고 지나치기보다는, 하나하나 세심하게, 지금 있는 나 그대로를 들여다보고 계속 넓히고 확장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이 또한 오래 음악 하는 데 하나의 거름이 되지 않을까 하고요. 천천히 오래오래, 음악 안에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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