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실' 스틸 사진

단편영화 '실' 스틸 사진 ⓒ 조민재

 
서울 창신동 한 옷가게의 셔터가 드르륵 올라간다. 컴컴한 옷가게에는 이내 불이 켜지고 주인인 명선(김명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옷가게에는 다양한 인종과 성격을 가진 손님들이 방문한다. 옷을 의뢰하려고 방문한 손님, 미싱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방문한 이주여성, 그리고 창신동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명선을 만난 프랑스인까지... 이들은 명선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될까. 

29분짜리 단편영화 <실(The Thread)>에 나오는 주인공 배우 김명선은 이 영화를 연출한 조민재 감독의 어머니다. 조 감독은 처음부터 어머니를 영화에 등장시킬 생각은 아니었다. 배우들이 미싱을 할 줄 모르니 서울 창신동에서 미싱사로 일하는 엄마를 자문 격으로 영화에 초대했다. 하지만 조민재 감독은 깨달았다.

"몸에 담긴 역사를 결코 따라 할 수가 없었다. 그제야 어머니가 (주인공을) 하는 게 맞다고 봤다." 

영화에는 실제 배우 김명선이 일하는 창신동 작업실이 그대로 등장한다. 다만 그의 작업실에 들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직업 배우다. <실>은 이번 21회 전주영화제에서 한국단편경쟁 부문에 올라 '심사위원 특별언급'으로 호명됐다.

조민재 감독은 영화 <작은 빛>으로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2018)' 독불장군상, 제7회 무주산골영화제(2019)에서 뉴비전상과 영화평론가상, 제7회 들꽃영화상(2020)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이나연 감독은 영화 <못, 함께하는>으로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2016) 우수상,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2016) 땡그랑동전상을 수상했다. 

5월 24일 조민재 감독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뒤 지난 6일 이메일을 통해 <실>을 공동 연출한 이나연 감독과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족을 영화에 담은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단편영화 '실'의 조민재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단편영화 '실'의 조민재 감독 ⓒ 조민재

 
- 배우가 된 어머니와 함께 작업하는 과정이 어땠나. 
조민재: "어머니가 좋은 경험이니 겪어나가겠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배우를 따로 섭외하고 미싱 자문을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그 몸에 담긴 역사는 결코 따라 할 수가 없겠더라. 무엇보다 어머니가 미싱을 돌리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연기라는 건 혼자 하는 건 아니고 상대 배우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때 어머니가 포용력이 강하다는 걸 깨달았다. 배우들과 같이 연기하면서도 어머니는 이들을 감싸주듯 연기했다. 

어머니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영화에 묻어났다. 어머니는 제게 하는 것만큼 자신의 공간에 오는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구나 싶었다. 어머니가 앞으로도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 창신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실>의 시나리오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다면? 
조민재: "창신동이 지난 2015년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되면서 외부의 예술가나 활동가가 창신동에 많이 유입됐다. 그런데 제대로 '도시재생사업'이라는 게 되지 않았다. 활동가들이 단발적으로 성과를 내고 싶어서 영상물을 촬영했는데 그게 나는 이미지의 착취라고 느꼈다. 

쇠락한 풍경을 영상에 담는 것으로 활기를 채우려 했지만 사실 뭔가를 착취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공간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이 만드는 영상이 과연 정확할까. 결국 2년 정도 후에도 성과가 안 나오니 서울시가 자금을 끊었다. 그 뒤 대부분 창신동을 떠났다. 2016년부터 <실>의 시나리오를 썼고 2019년 9월에 제작 지원을 받아서 촬영에 들어갔다." 

- 주인공이 직업 배우가 아니라서 촬영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나연: "(영화에서 이주여성으로 등장하는) '흐엉'이 옷 주머니를 예쁘게 달지 못해서 명선에게 도움을 구하는 장면이 있다. 시나리오에는 '흐엉이 도움을 구하러 온다'는 상황이 적혀있고 현장에서 디테일을 결정해야 했다. 명선 배우가 '이런 장면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각자 공장을 차린 기술자라면 이렇게 도움을 구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이 장면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하셨다.

실제 봉제 노동자들과 함께 영화를 봐도 거슬리는 부분이 없어야 했기 때문에 이 장면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고 있었다. 흐엉이 아이디어를 줘서 장면을 완성했다. 감독으로서 배우와 잘 소통한다는 건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었다. 배우의 말을 잘 듣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됐다." 

조민재: "처음으로 하루에 9시간씩 촬영했고 근로기준법에 맞춰서 작업했다. 물론 임금도 최선을 다해서 지급했다. 제작 지원을 받긴 했지만 사비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지킬 것을 다 지키고 나니 하나도 남지 않는 상황이 됐다. 그렇지만 뿌듯했다. 하나의 가능성을 본 것 같았다. 독립영화라고 하면 보통 임금에 대해서 당연하게 지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창작 행위를 한다는 명분 아래 폭력을 행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몸에 담긴 노동을 쉽게 빼앗는 것이기에 고민이 필요하다. 그 어떤 현장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독립영화라고 하면 모든 게 너무 당연해진다. 그런데 그 당연함이 사람을 힘 빠지게 만드는 것 같다. 저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엄밀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존중의 문제다. 이번 현장에서 그 구조를 만들어봤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밥 먹을 때 다들 농약 친 제품 먹기 싫어하지 않나. 그런데 왜 영화는 그렇게 대하지 않나."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단편영화 '실'의 이나연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단편영화 '실'의 이나연 감독 ⓒ 이나연

 
- 대체로 공동 연출을 맡은 이나연 감독이 연기 지도를 했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연기 지도(디렉팅)는 어떻게 진행됐나. 
이나연: "사전에 배우들과 리허설로 관계를 형성하는 걸 중요한 작업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어 배우들과 한두 번 만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연기 연습은 아예 하지 않았다. 대신 삶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거기서 (지도하는 방식을) 많이 훔쳤다. 

비전문 배우들도 있었기에 사전 작업 없이 촬영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지만 배우들이 가진 용감하고 건강한 기운만 믿고 갔다. 배우들이 뭔가를 흉내 내거나 억지로 만들지 않고 편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걸 가장 중요시했다." 

"창신동이라고 하면 전태일을 많이 떠올리는데..."
 
- 관객들이 영화 <실>을 통해서 봐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나연: "주인공의 세계만 중요하게 다뤄지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영화를 볼 때 아름답다고 느낀다. 인물 각자가 다르면서도 어떻게 연결돼있는지를 봐주셨으면 좋겠다. 페미니즘을 접한 이후로는 미디어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주류'가 누구인지 그 목소리가 어떤 삶을 삭제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실>에서 여성, 이주민, 노동을 키워드로 가져가면서도 그들의 삶을 소수자성 안에서만 단편적으로 그리지 않으려 했다."

조민재: "'공간의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이 영화의 핵심이다. 영화에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나온다. 네팔이나 베트남인은 창신동에서 굉장히 오래 살았던 근로자들이다. 이주민들이 정착할 곳을 찾던 와중에 창신동에 모이기 시작했고 이주민들이 만든 도시라는 이미지에서 영화를 시작했다. 

창신동이라고 하면 전태일을 많이 떠올리는데, 여성 노동자의 역사가 가려졌다고 생각했다. 창신동을 전태일의 도시라면서 관광하는 모습들을 많이 봤다. 물론 도시의 중요한 상징이지만 현재 사는 사람들이 가려지고 있고 이 사람들의 역사는 어디에 있나를 생각했다. 결국 그 사람들이 만드는 옷과 공간에 역사가 배어있다고 본다. 창신동이라는 공간의 언어와 역사를 영화에 최대한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영화 속에는 공간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바로 창신동을 촬영하던 프랑스인이다. 공간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과 미디어는 달콤하게도 정치적인 상황과 역사들을 이렇듯 쉽게 가져온다. 프랑스인은 그래서 영화 속에서 비판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 보통 영화와 달리 감독이 두 명이다. 어떤 방식으로 역할을 배분했나. 
조민재: "처음에는 제가 연출을 맡았고 이나연 감독이 촬영감독이었다. 여성 스태프들로만 이뤄진 영화를 찍자고 했다. 나를 제외하고 모든 스태프가 여자였는데 리더로서 아무래도 끌고 나가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감수성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나연 감독에게 연기 연출을 부탁했다. 저희가 영화에 여성 인권과 노동을 화두로 들고 와놓고 현장 환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 

왜 영화 현장에서 영화 스태프들의 인권이 낮을까, 분명 권력 문제가 들어가 있다. 촬영감독은 보통 남성들이 많이 하고 임금이 높다. 그러니 현장 내에서도 권력이 강하다. 영화과에서는 매번 비슷한 남녀 비율로 졸업을 하는데 그 여성들이 어디 갔을까. 실력이 없어서 없는 게 아니다. 여성 스태프들에게도 기회를 많이 줘야 하고 경험을 쌓게 만들어줘야 한다. 여성 스태프만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역시나 문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단편영화 '실' 스틸 사진

단편영화 '실' 스틸 사진 ⓒ 조민재

 
- 두 감독의 다음 영화가 궁금하다. 조민재 감독은 '감독 소개'에 '이름 없는 몸의 노동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돼 있던데. 
이나연: "첫 장편영화를 준비 중이다. <실>과 마찬가지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오가는 작품이 될 것이다. 성폭력 생존자인 여성 창작자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주 많은 여성이 나온다. 저에게는 큰 숙제 같은 이야기라서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아놓기만 하고 쓰지 못했는데 하루빨리 촬영에 들어갔으면 한다."

조민재: "기본적으로 몸으로 하는 노동은 휘발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만들고 돈을 받으면 몸의 가치가 사라진다. 나는 5년째 건설 현장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는데 현장에서는 어떻게든 나의 경험과 기술을 저렴하게 사용하려고 한다. 몸은 하나고 복제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도 나는 건설 기술자로 살아갈 텐데 내 몸의 가치는 줄어들 것이다. 반면 미디어를 비롯한 영상물은 끊임없이 복제가 가능하다. 복제되는 가치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지 않나."

- 지금 영화를 찍으면서 동시에 건설 기술자로 일을 하고 있다고? 
조민재: "맞다. 한 번은 내가 '투잡 뛰는 영화감독'으로 JTBC 뉴스에 나왔다. (웃음) 나는 건설 현장에서 5년 정도 일했고 기공 반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나온 것이다. (취재기자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드렸는데 '영화감독이 돈을 벌기 위해서 건설 현장에 나가서 일한다'라고 시나리오를 짰더라. 나는 건설노동자고 영화를 하고 있는데, 영화감독이고 어쩔 수 없이 일한다고 바꿔 버렸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를 염두에 두고 영화나 매체를 접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사실 다음 영화에 대한 내 생각을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영화라는 공간을 만들면 관객들이 잠깐 와서 놀다 가는 것이다. 누구든 그 공간에 들어와서 편하게 쉴 수 있었으면 한다. 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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