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침입자>를 연출한 손원평 감독.

영화 <침입자>를 연출한 손원평 감독.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2001년 평론가로 데뷔한 후 영화계에 몸담았으니 햇수로 치면 19년이다. 처음부터 영화 감독을 꿈꿨다는데 스크립터, 각색, 각본, 그리고 소설가로 더 이름을 날렸다. 몇 편의 단편 연출 후 장편 데뷔를 꿈꿨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오는 4일 개봉하는 <침입자>는 손원평 감독에겐 기나긴 담금질의 결과물일 것이다. 8년 전부터 구상했고, 여러 방향으로 각색되기도 했던 이 이야긴 가족의 의미와 인간 심리 본연에 숨겨진 의심, 불안을 토대로 한 스릴러물이다. 아내를 사고로 잃은 뒤 신경증을 앓고 있는 한 남자에게 오래전 실종된 여동생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그리고 있다.
 
여성 캐릭터가 강해지는 서사

"이렇게 늦게 데뷔할 줄 알았으면 영화 일을 안 했을 거다"라며 반 농담으로 웃으며 손원평 감독이 운을 뗐다. 출산 직후 들었던 생각, 즉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혈연이 돌아왔을 때 자신과 상반된 가치관을 품고 있다면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의심 아닌 의심이 이 영화의 핵심 주제였다. 지난 8년간 주인공은 엄마에서 남편으로, 남편에서 친동생으로 바뀌었고, 캐스팅과 투자가 결정되며 지금의 구조를 갖게 됐다고 한다.
 
"남자가 악역일 때 오는 뻔한 느낌이 있더라. 그 이후 다시 고칠 땐 여성 캐릭터를 독보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위협과 공포보단 뭔가 조심스럽게 침투해서 서서히 장악해가는 캐릭터로 그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순탄치 않았던 영화화 과정 도중 손원평 감독은 <아몬드>라는 소설을 냈다. <침입자>와는 좀 결이 다르지만, 주제의식은 같은 작품으로 국내와 일본에서 고루 호평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꽤 오랜 시간 가족이라는 화두를 품고 고민했을 것 같다는 물음에 손 감독은 "1, 2년 정도 그 화두를 품다가 보냈다"며 "스토리텔러로서 여러 방식으로 풀어가는 게 재밌어서 소설과 시나리오 등으로 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신경증 환자인 서진, 서진의 친동생으로 갑자기 나타난 유진 역으로 김무열과 송지효가 캐스팅됐다. 꽤 신선한 조합이다. 특히 송지효는 대중에게 예능 프로 출연 이미지가 있기에 모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손원평 감독의 생각은 좀 달랐다.
 
 영화 <침입자> 관련 사진.

영화 <침입자> 관련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지효씨가 캐스팅 됐을 때 되게 좋았던 것 같다. 예능인보단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고괴담3>를 봤을 때 데뷔작임에도 참 연기 잘 하는구나 생각했다. 처연하고 서늘한 느낌이 있는데 오랫동안 영화에서 꺼내지지 않은 것 같아서 그걸 발굴하고 싶었다. 지효씨 본인도 그래서 더욱 의욕적이었던 것 같다. 대중들이 부디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남자 배우 캐스팅이 참 중요했다. 연기를 정말 잘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무열씨가 한다고 했을 때 모든 시름을 놨던 것 같다.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유명한 배우라도 영화에서 같은 표정이 보이는 이들이 있잖나. 이 배우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와 여러 이야길 많이 했다. 표정, 동작 등을 서로 얘기했다."

 
주연 배우 캐스팅과 함께 감독이 특별히 공을 들인 건 주조연의 조합이었다. 그간 한국 상업영화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중견 배우를 대거 기용했다. 예수정, 최상훈, 허준석, 소희정 등 무대 연기에서 두각을 나타냈거나 과거 TV 드라마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이들이 <침입자>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새로운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주연, 조연 모두 새로운 배우, 새로운 모습을 소개하고 싶었다. 예수정 선생님 빼고, 모든 배우께 다이어트를 요구하기도 했다. 다들 힘드셨을 거다(웃음). 그래도 너무 잘 해주셔서 감사하다.
 
촬영 현장에서 아침마다 분장실을 찾았다. 배우가 이미 콘티를 숙지한 채 분장을 받고 있으면 곁에 가서 오늘 촬영에선 이런 감정이었으면 좋겠다 의견을 말하고, 배우의 얘길 듣기도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그걸 반영하기도 하면서 소통해갔다. 물론 현장 상황에 따라 충분히 얘길 못 할 때 제가 밀어붙이는 역할을 했었지."
 

후반부에 감정신이 몰려 있던 탓에 손원평 감독은 마지막 촬영 때를 "전쟁처럼 끝났다"고 표현했다. 켜켜이 무거운 감정을 쌓아가야 했던 배우들에게도 내심 미안함을 드러냈다. 오랜 기다림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였을까. 손원평 감독은 그렇게 치열하게 현장에 녹아 있어 보였다.
 
 영화 <침입자>를 연출한 손원평 감독.

영화 <침입자>를 연출한 손원평 감독.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자기 확신

이제야 첫 상업영화를 선보인 늦깎이 신인이지만 그는 계속 영화를 꿈꾸고 있었다. <침입자> 외에도 준비하던 몇 개의 장편이 좌초되는 경험을 하면서 꽤 단단해져 있어 보였다. 오랜 기다림의 한쪽엔 여성 영화인으로서 겪었던 차별 아닌 차별은 없었을까. "제겐 직업과도 같고, 나름 재미를 느꼈기에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손 감독은 자기 확신을 강조했다.
 
"교양 수업 과제로 읽었던 <미술관 옆 동물원> 시나리오가 시작이었지. 남들처럼 회사에 취업하기보단 막연하게 창작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평론가로 데뷔하면서 기자 제의도 받았다. 그러면서 한국영화아카데미와 독립영화워크숍을 거쳤다. 그렇게 하나씩 해오면서 도중에 1, 2년간은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스스로도 모르고 있더라. 꽤 비싼 수업료를 낸 셈이지. 물론 그걸 깨달은 이후에도 특별히 잘 풀린 건 아니지만(웃음).
 
여성이라고 차별받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여성 영화인이 할 수 있는 영화를 시장이 원하진 않는다는 생각은 했지. 사실 세계적으로 여성 감독이 드물긴 하다. 장르의 경계가 분명한데 여성 감독은 뭐랄까 그 장르 사이 틈을 바라보는, 장르 중간 지점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시장의 시선에 맞추기 위해 여성 영화인의 시선이 깎이기도 하고 그런 어려움이 있긴 했지.
 
여성 영화인이 온전히 자기 목소리를 내려면 규모가 작은 영화를 해야 하는데 마냥 작은 영화만 할 순 없잖나. 특히 영화는 남의 돈으로 하는 거라 좀 더 조심스러울 수 있겠는데 그래도 다행인 건 시간이 흐르면서 고정관념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미래의 여성 영화인들은 좀 더 다양한 영화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던 학부생에서 영화 평론가, 그리고 소설가까지. 이 사이에 손학규 전 의원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자리할 공간은 없어 보였다. 손원평 감독 스스로도 "집안 이야기 보단 내 이야기와 작품에 집중했으면 한다"며 영화인으로서 살아온 자신의 과거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자기 확신을 갖고 버텼던 순간, 좌절했던 순간 모두 그의 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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