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 <검사내전> <블랙독> <아무도 모른다> 등, 최근 드라마계에서 신인 작가들의 작품이 연이어 주목받고 있다. 신선한 소재와 과감한 도전, 대중문화 트렌드에 걸맞은 여성 서사 등 새로움을 무기로 한 이들 작품은 스타 작가의 드라마와 동시간대 맞대결에서도 지지 않는 저력을 보여줬다. 이에 <오마이스타>는 신인 드라마 작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드라마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말]
 SBS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

SBS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 ⓒ SBS

 
주목할 만한 신예의 등장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어느 조직, 어느 산업이든 새로운 인재가 계속해서 유입된다는 것은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년새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 위기를 맞은 방송 산업이기에, 그 한가운데서 신인 드라마 작가 열풍이 불고 있다는 점은 특히 고무적이다. <오마이스타>가 신인 작가들을 주목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 것도 그래서다. 이들의 어떤 면이, 이들 작품의 어떤 면이 시청자들을 끌어들인 것일까. 

지난 4월 종영한 SBS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의 김은향 작가가 그 첫번째 주자다. 하지만 15일 서울 마포구 스튜디오S 사무실에서 만난 김 작가는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기를 주저했다.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계기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는지,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등 여러 질문에 말을 아끼고 조심스러워 했다. 신인 작가들의 드라마가 연이어 사랑받는 커다란 흐름을 몇 가지 개인적이고 단정적인 이유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대신 드라마를 집필하면서 어떤 것을 조심하고 고려했으며 무엇을 얻었는지를 말할 때는 눈에 띄게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가 얼마나 섬세한 감수성과 깊은 고민을 통해 드라마를 완성해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연출, 배우, 스태프까지 모두의 합이 좋았다"

경계에 서 있는 아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는 방영 당시 흡인력 있는 스토리와 연출, 그리고 김서형 등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최고 시청률 11.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했다.

데뷔작부터 월화 드라마 시청률 1위에 오르며 흥행에 성공한 김은향 작가는 "모든 것이 제 기대 이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장편 드라마를) 잘 완주해낼 수 있을까, 사람들이 이야기에 공감해줄까 걱정이 많았다"며 "'웰메이드'라는 평가는 낯부끄럽게 느껴진다. 연출, 배우, 스태프까지 모두의 합이 좋았던 것 같다. 나는 운이 좋았다"고 손사래를 쳤다.

<아무도 모른다>가 아랫집 중학생 고은호(안지호 분)와 형사 차영진(김서형 분)의 관계를 통해 말하는 것은 결국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다. 김은향 작가는 차영진에 대해 "내가 평소에 꿈꾸던 이상형 같은 인물"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했다. 차영진은 아랫집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을 모른 척 하지 않고 고은호를 구해냈으며, 또한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언제나 돕고 살피는 좋은 어른이었다. 김은향 작가는 이러한 드라마의 기본 토대가 같이 작품을 한 이정흠 감독에게서 나왔다고 말했다. 

"기획 단계부터 이정흠 감독과 함께 했다. (이 감독은) 사건보다는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김은향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시고 내게 제안했다. 처음 만날 때 감독님이 영화 <글로리아>를 보고 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영화는 강인한 여성이 어린 아이를 구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영화를 토대로 만든 아이디어로 내가 기획안을 드렸을 때 감독님은 오히려 난감해하셨다. 연쇄 살인이라는 소재가 들어갈 것이라 생각도 못하신 것 같았다. 다행히 내 이야기가 감독님이 원하는 메시지와 잘 맞아 떨어지면서 합의가 잘 됐다."

"드라마 안에서는 아이들 가능성 보여주고 싶었다"  
 SBS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의 한 장면

SBS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의 한 장면 ⓒ SBS

   좋은 어른이 좋은 아이를 만든다는 메시지에 맞게, 극 중에서 은호는 차영진의 영향을 받아 따뜻하고 배려심 많은 아이로 성장한 모습이었다. 현실의 중학생을 생각하면 오히려 판타지에 가깝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최근 청소년 흉악범죄가 늘고 있고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만큼, <아무도 모른다>에도 학교 폭력, 성적 조작, 입시 문제 등 여러 청소년 문제가 등장했다. 그러나 드라마가 그린 청소년 문제는 예리하기보다 따뜻했다. 학교폭력을 일삼았던 동명(윤찬영 분)은 좋은 친구 은호를 통해 과거를 반성하고, 시험문제 유출로 높은 성적을 얻은 민성(윤재용 분) 역시 좋은 어른을 만나면서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 이유에 대해 김은향 작가는 "제가 평소에 갖고있는 시각과 드라마 내용이 꼭 일치하진 않는다"면서도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목적은 뉴스와 다르지 않나. 그런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기능도 (드라마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드라마 안에서라도 아이들을 나쁘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건 이정흠 감독과 제 의견이 전적으로 같았다. 이 이야기를 할 때 아이들을 나쁘게 묘사하지 말자. 실제로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이나 성적조작 등은 결국 어른 사회의 축소판이지 않나. 입시 문제는 실제로 어른들이 주도하기도 하고. 사실 청소년 문제는 너무 (다루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드라마 안에서 만큼은 아이들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김은향 작가 이러한 섬세한 면모는 악인 백상호(박훈 분)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릴 적 학대 당하며 자란 백상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사람을 죽이는 어른이 된다. 강해진 백상호는 자신처럼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을 구해주지만 동시에 그들을 조종하고 더 나쁜 길을 걷도록 만든다. 김 작가는 시청자가 백상호를 비롯한 밀레니엄 호텔의 악당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게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초반에는 백상호와 그가 구한 밀레니엄 호텔 인물들 사이에 유대감이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들의 악행과 분열만 남는다. 이야기를 갈무리하기 위해서는 연민을 줘선 안 된다는 (제작진의) 합의가 있었다. 백상호가 어릴 적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였다는 설정 때문에 (시청자에게)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과거가 있었다고 해도 그 이후에 저지른 악행들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지 않나. 더구나 백상호는 망설임 없이 유희처럼 사람을 죽였으니까."

김 작가가 꼽은 잊을 수 없는 댓글, "고맙다"

한편 드라마 방영이 '코로나 19' 확산 시점과 맞물리면서 특정 종교를 비판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20년 전 수정(김시은 분)을 죽인 연쇄살인사건부터 은호의 갑작스런 추락사고, 20년 만에 나타난 살인사건의 진범 서상원(강신일 분)의 자살 등 드라마 속 주요 사건들이 모두 종교와 연관돼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20년 만에 잡힌다는 설정 역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가 나타나면서 본의 아니게 리얼리티를 살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드라마 제작 시스템상 이미 방송 수개월 전에 드라마의 큰 골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정말 우연의 일치였다고. 김은향 작가 역시 "개연성이 약한 설정 아닌가 걱정했는데 오히려 현실과 맞물려서 더 신기했다"며 웃었다. 

그럼에도 이는 드라마에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잘 담겨있었기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보인다. 김은향 작가는 "저는 무교이지만 종교가 때로 사회의 어른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어른, 나쁜 어른이 있듯 좋은 종교, 나쁜 종교도 있지 않겠나. 어떤 좋은 시스템도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의 손에 들어간다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상처받고 마음 여린 사람을 파고드는 나쁜 존재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아무도 모른다>는 시청률 면에서도 성공을 거뒀지만 무엇보다 올바른 메시지를 전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많은 호평을 얻었다. 첫 작품이었기에 시청자들의 반응 하나하나는 김은향 작가에게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고. 김 작가는 "고맙다"는 댓글을 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연출이 너무 좋다', '완성도가 높다' 그런 말에 신나고 짜릿하고 그랬다. 그런데 오래오래 남는 댓글은 '고맙다'는 말이었다. 저는 제 일을 하는 것이고, 생산자일 뿐이지 않나. (드라마를) 소비해주시면 제가 감사한 건데, '재밌다'가 아니고 '고맙다'는 말을 봤을 때는 뭔가 겁이 났다. 우리가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의사라든가, 경찰·소방관이라든가 그렇지 않나.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보람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다음 작품 어떻게 하지?' 싶었다."

치열한 회의를 통해 만든 결과물
 
 SBS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의 한 장면

SBS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의 한 장면 ⓒ SBS

 
최근 신인 작가들의 흥행 열풍에 대해 드라마판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전개, 트렌드를 적절하게 반영한 내용, 예민한 문제를 섬세하게 다루는 감수성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테다. 그러나 김은향 작가는 무엇보다 시스템의 승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대중이 원하는 트렌드가) 미리 준비했던 것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여전히 신인작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워낙 제작비도 많이 들어가지 않나. 그래도 예전보다 기획팀의 역할이 커진 것 같다. 예전에는 작가가 하고싶은 이야기로 대본을 쓰면 감독이 연출을 맡거나 그랬다면, 요즘은 기획팀에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같이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들이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이날 인터뷰에서 김은향 작가는 드라마에 대해 치열한 회의를 통해 만든 결과물이었다고 여러 번 언급했다. 예를 들면 은호의 나이는 왜 중학교 3학년이어야 했는지, 은호 엄마 소연(장영남 분)의 성장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 잔악무도한 백상호의 결말 등이 치열한 회의 끝에 결정된 내용이었다. <아무도 모른다>를 함께 기획했던 강설 스튜디오S 기획팀 프로듀서 역시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기획팀은 중간 다리 역할을 한다. 방송사 차원에서는 공모전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좋은 작가님들의 작품을 드라마로 만드는 건 지상파 방송사의 의무이기도 하다. 신인 작가 발굴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는데 최근 그게 빛을 발한 게 아닌가 싶다. (성공 사례가 많아지면서) 내부에서 신인 작가들을 믿어주는 분위기도 형성됐다."(강설 피디)

현장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신인 작가가 드라마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만 한다. 해마다 공모전에는 1천 편 이상의 작품이 몰리고 그 중에 고작 몇 작품만 드라마 관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김은향 작가가 SBS 드라마국(스튜디오S의 전신)의 눈에 띈 것은 2012년 극본 공모전에서였다. 당시 미니시리즈 공모전에 당선돼 이듬해 SBS와 계약을 맺은 것. 이후 김은향 작가는 2014년 방송된 2부작 단막극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을 통해서도 4.2%라는 준수한 시청률과 방송국 안팎으로 눈여겨 볼 만한 신인 작가가 나타났다는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입봉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대중의 마음을 얻는 방법의 정답은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 작품도 답을 찾아서 쓴 건 아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얘기, 하고싶은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저시청률 찍으면 어떡하나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저게 '김은향처럼 마이웨이 작가를 못봤다'고 하더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어떤 건지 잘 모르겠고 그걸 알아도 제가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조언을 더 들어야 할 위치가 아닐까. 두 번째 작품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작가는 좋아하고 재미있어야 할 수 있는 일"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딘 김은향 작가가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은 어떤 것일까. 그는 "오만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어떤 이야기를 다루든,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 안 내는 이야기를 하고싶다"는 소신을 밝혔다. 이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하고싶지 않은 이야기도 해야할 때가 있다. (우리 드라마에도) 자극적인 살인을 넣어야 됐으니까. 그런 사건을 다룰 때 늘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꿈꾸는 바보들을 위하여."

김은향 작가는 마지막으로 데뷔를 꿈꾸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영화 <라라랜드>에서 주인공 미아(엠마 스톤 분)가 부르는 노래 속 한 구절을 읊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과 힘겹게 사투를 벌였던 영화 속 미아처럼, 결코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꿈 꾼다고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무조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안 힘든 직업은 없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노력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그래도 결국은 (일이) 좋아야 할 수 있는 것 같다. 대본을 쓰면서 나도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있었는데, 99가 힘들었다면 찰나의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그 1 때문에 포기를 못하는 것 같다. 좋아하고 재미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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