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투병 중이던 남자 친구가 사망한 후, '실비(폴린 에티엔)'는 그의 유골함을 가지고 브뤼셀 국제공항으로 향한다. 자살을 결심해 굳이 돌아올 일이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모스크바로 가는 편도행 티켓을 발권해 비행기에 탑승한다.

그 사이 다급하게 서쪽으로 가는 비행기 편을 찾던 '테렌치오(스테파노 카세티)'는 심지어 공항을 경비하던 군인의 총을 강탈한 뒤 실비가 타고 있는 비행기를 납치한다. 테렌치오의 협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이륙시켜야 하는 기장 '마티외(로랑 카펠루토)'는 탑승객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이에 공군 헬리콥터 조종 경험이 있던 실비는 '부기장'으로서 마티외를 도와 태양을 피해 서쪽으로 향하는 비행을 시작한다.   

자연재해, 질병, 혹은 모종의 이유로 도래하는 아포칼립스(대재앙)를 묘사한 영화들은 서로 다른 지점에서 공포와 긴장감을 자아낸다. 우선 세상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그 원인 자체는 거대한 공포를 조성하기에 충분하다.

<월드 워 Z>에서 예루살렘을 덮치는 좀비들, < 2012 >에서 통째로 바다에 잠기는 캘리포니아 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세상의 종말이라는 맥락 안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이 일으키는 갈등과 대립은 공포와는 다른 긴장감을 유발한다. 상이한 가치관의 충돌은 어느 쪽으로든 동의할 수 있는 인물에게 관객들을 강력하게 몰입시키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어둠 속으로>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이 드라마는 태양의 변화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공포를 건드리면서 거침없이 어둠 속으로 내달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어둠 속으로>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어둠 속으로>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도래하는 아포칼립스, 원인은 바로 태양

<어둠 속으로>가 제시하는 재앙의 원인은 태양이다. 작중 태양은 자기장 축이 뒤집힌 결과, 기존 수치를 훨씬 능가하는 방사선을 발산한다. 빛이 닿는 곳의 모든 생명체를 한순간에 죽여버리는 희대의 살인마로 등장하는 것. 드라마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다 순식간에 사망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 재앙이 얼마나 빠르고 광범위하며 자비심이 없는지 보여준다. 사람들은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섹스를 하다가, 수술을 기다리다가, 깊고 어두운 곳으로 도망치다가 그대로 시체가 되어버린다.

이처럼 태양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은 주목해 볼만한 대목이다. 마냥 헛소리 같던 이 소문이 사실이라는 점을 깨달은 주인공들은 즉시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히고, 이전까지의 갈등은 뒤로한 채 생존을 위해 뭉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태양을 만나면 죽는다는 설정은 그동안 인간의 삶을 구성하던 질서를 뿌리부터 뒤집으면서 직관적인 공포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인간에게 태양은 언제나 가장 긍정적인 요소들의 집합이었다. 우선 어둠을 이기고 떠오르는 태양은 세상의 창조와 생명의 시작, 그리고 희망을 뜻했다. 또한 태양에서 나와 어느 곳이든 공평하게 닿는 빛은 정의였다. 실제로 이집트의 태양신인 라, 아몬, 프타 등은 세상을 창조한 신들이었고, 그리스의 태양신 아폴론은 광명의 신이었다. 

하지만 이제 창조의 태양은 모든 유기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더 이상 생명의 상징이 아닌 그 자체로 죽음을 의미한다. 본래 혼란과 절망을 뜻하던 밤과 어둠은 그 자리를 대신해 희망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사람들은 어둠을 추종한다. 태양에 대해 지니는 모든 관념은 전복되고, 지금까지 알고 있던 우주의 질서는 무너져 내린다. 그래서일까. 작중 사람들이 두려움과 혼란에 빠지는 것도, 그들이 그 어떤 이상한 행위를 해도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마음 가장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던 질서가 무너질 때 피어나는 근원적인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의미가 달라졌다는, 즉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과 그 질서가 무너졌다는 인식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질서의 필요성을 낳는다. 이때 새로운 질서는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질 수도 있고, 과거의 유산을 계승할 수도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작중 인물들은 치열하게 충돌한다. 비행기라는 새로운 사회 안에서 과연 누구에게 의사결정권이 돌아갈지를 두고 갈등을 겪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대립구도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주인공들이 있으니 바로 마티외, 테렌치오 그리고 실비다. 

'정치적 대립구조' 상징하는 주인공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어둠 속으로>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어둠 속으로>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비행기의 기장인 마티외는 과거의 질서를 대변한다. 그는 기장의 권위와 의무, 책임을 내세워서 탑승객들을 통제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는 원하는 대로 사람들을 이끌지 못한다. 당장 현실의 생존만이 목표인 사람들에게 과거로부터 내려져 오는 권위는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마티외의 반대편에는 테렌치오가 있다. 나토에서 근무했던 군인인 그는 마티외에게 "당신의 항공사도 망했고, 따라서 당신의 의무도 존재하지 않아"라고 일갈하며 과거의 질서를 철저히 부정한다. 대신 그는 음식의 분배부터 목적지까지 모든 것을 다 함께 투표로 결정하자고 제안한다. 태양에 대한 진실을 가장 먼저 알아챈 후 비행기의 항로를 서쪽으로 돌려 탑승객들의 생명을 모두 구하는 공을 세운 만큼 그의 말은 나름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테렌치오는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데 실패한다. 모두가 동등하게 결정권을 가지자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은 총과 무력으로 사람들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자기모순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자리는 실비에게 넘어간다. 전역한 공군인 실비는 비행기가 이륙한 직후 자신의 의지로 공석이었던 부조종사의 역할을 맡는다.

그녀는 탑승객들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고 해결하며, 갈 곳이 없어 헤맬 때마다 빠르게 목적지를 결정하는 등 본래 마티외에게 요구되었던 리더십을 발휘한다.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것도 아니고,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거나 자기모순에 빠지지도 않은 채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이러한 대조는 드라마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테렌치오가 죽는 장면을 보여준 후, 빛이 들어오지 않는 벙커에 들어선 실비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끝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어둠 속으로>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어둠 속으로>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흥미로운 것은 비록 실비, 마티외, 테렌치오 세 주인공의 서사가 두드러지기는 해도, 드라마가 특정 인물의 행보나 가치관에 힘을 실어주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점이다. <어둠 속으로>는 6편의 에피소드 제목들을 작중 6명의 등장인물 이름에서 가져온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에서는 제목에 해당하는 인물의 과거사를 짤막하게 보여준다.

주요 캐릭터들이 특정 상황을 제각기 다른 개인사, 가치관, 이익 등에 근거해 해석하고, 이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담는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정상적인 사람 대 비정상적인 사람, 선역 대 악역 등의 단순한 이분법적 갈등구조에서 벗어난다. 더 나아가 다양한 대립각들을 제시하면서 캐릭터들 간에 더 복합적인 긴장감을 자아내는 데 성공한다. 

주어진 상황과 소재들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연출도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작중 비행기 탑승객들은 기본적으로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반면에 관객들은 에피소드의 제목을 통해 누가 이번 화의 중심인물이 될지, 또 그들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의 불균형은 드라마가 서스펜스를 강화하거나 반전을 주는데 용이하게 활용된다.

또한 폐쇄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 그 안에서 좋든 싫든 같은 방향으로 인물들이 함께 해야 하는 상황은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강력한 추진력으로 기능한다. 스토리가 늘어지거나 중심이 분산될 우려가 애초에 없는 환경을 설정한 뒤 <부산행>처럼 숨 돌릴 틈도 없는 사건들의 연속으로 러닝타임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공포와 서스펜스를 적절히 활용하며 장르 영화로서의 미덕을 갖추고 있지만, 단점이 없지는 않다. 특히 반복되는 행운은 가장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전문 파일럿이 아닌 실비는 유튜브를 보면서 비행기를 공항에 착륙시킨다. 의사가 아닌 간병인 '로라(바베티다 사조)'는 패혈증 수술을 성공적으로 집도한다. 이처럼 개인 본연의 능력을 뛰어넘는 전개가 연속적으로 등장하다 보니,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위험이 닥치더라도 '누구든 그 상황을 타개하겠지'와 같은 안일하고 느슨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이 <어둠 속으로>의 감상을 크게 해치지는 않는다. 이 작품의 진정한 힘, 우리가 아는 세계가 뿌리째 흔들리고 파괴되는 상황을 묘사하는 스토리텔링의 방향성 자체를 뒤집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에 알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고,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강렬한 공포와 두려움을 경험한 지난 몇 달간의 현실 역시 넷플릭스 사용자들이 꾸준히 <어둠 속으로>을 찾는 이유들 중 하나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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