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재즈를 사랑하는 대학생 '개츠비(티모사 샬라메)'는 학내 언론에서 활동 중이며 영화광인 여자 친구, '애슐리(엘르 패닝)'가 영화감독 '롤란 폴라드(리브 슈라이버)'의 인터뷰를 위해 뉴욕으로 가게 되자 함께 동행한다.

그는 애슐리와의 근사한 뉴욕 데이트를 꿈꾸지만 그녀가 인터뷰를 위해 각본가인 '테드(주드 로)를 만나면서 관계는 점점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불안해진 개츠비는 뉴욕의 길을 걷다 우연히 알고 지내던 동생 '챈(셀레나 고메즈)'을 만나고, 비 내리는 뉴욕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하며 우연 같은 운명을 따라나선다.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스틸 컷.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스틸 컷. ⓒ (주)버킷스튜디오


우디 앨런 감독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영화 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앨런 감독은 하비 와인스타인 성범죄 파문 당시 그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에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 출연한 티모시 샬라메, 셀레나 고메즈, 레베카 홀 등의 배우들은 그의 발언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출연료 전액을 성폭행 피해자 지원 단체에 기부했다.

또한 감독 본인도 입양 딸인 딜런 패로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는 등 어려움에 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영화에도 부적절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는 의심을 받는 등 개봉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공개된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영화 내적으로도 여러 문제를 지닌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수많은 장르에 도전했던 우디 앨런 감독이지만, 그의 영화들은 스토리 전개 상의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 중산층의 남성이 등장한다. 그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인생의 절정기를 지났거나,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등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의 여자 친구 혹은 배우자는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소통이 잘 되지 않고, 그에게 그다지 큰 위안과 힘이 되지 않는다.

그런 그의 앞에 자신과 말도 잘 통하고, 관심사도 같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같은 어느 여성이 등장한다. 이 남자와 여자는 우연인 듯 운명처럼 계속해서 만나고 사랑을 만들어간다. 우디 앨런의 대표작인 <미드나잇 인 파리>, <카페 소사이어티> 등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새롭지 않은 진부한 스토리

문제는 이 규칙들을 그대로 따른 결과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이 마치 배경만 뉴욕으로 바뀐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뉴욕을 사랑하는 개츠비의 입에서는 뉴욕에서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낭만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는 파리를 가장 완벽한 도시로 여기며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오웬 윌슨)'처럼 뉴욕을 열심히 돌아다닌다.

그러다 그는 우연히 챈을 만난다.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낸 후 그는 뉴욕을 가기로 한 순간부터 서로 다른 이야기만 하던 애슐리가 아닌 챈이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는다. 길이 약혼자였던 '이네스(레이첼 맥아담스)'와 헤어지고 파리에서 만난 '가브리엘(레아 세이두)'과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또한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두 가지 악수를 두면서 새롭지 않은 스토리를 더욱 진부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우선 영화는 지나칠 정도로 우연을 남발하며, 우연이 아니라면 사건을 전개하지도 못한다. 물론 우연이 없으면 영화의 스토리는 시작조차 되지 않을지도 모르며, 우연은 운명적인 사랑을 강조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스틸 컷.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스틸 컷. ⓒ (주)버킷스튜디오

 
하지만 영화는 시작뿐만 아니라 결말에 이르기까지 우연으로 가득하다. 작중 개츠비가 챈을 만나 그녀의 집과 미술관에 가는 것, 애슐리가 영화 스타들을 한명씩 만나게 되는 계기들은 말 그대로 우연의 연속이다. 이처럼 인물들의 성격, 시간 및 장소적 배경, 논리적인 흐름 안에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대신, 뉴욕과 비라는 소재를 운명적인 사랑과 연관 지으려는 시도의 결과 클리셰로 가득한 진부한 영화가 탄생했다.

다른 하나는 영화가 여성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중년 남성을 좋아하는 여성, 잘생기고 인기 있는 스타에게 무조건 사랑에 빠지는 여성 등 여성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있는 그대로 투영시킨다. 대표적인 결과물이 애슐리다. 

그녀가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기자로서 목적과 직업 정신도 철저하다는 설정이 무색하게 그저 파도에 떠밀리듯 상황에 떠내려 다니는 수동적인 인물로 묘사할 뿐이다. 이에 더해 남성이 권력과 사회적 위치를 이용해 여성을 원하는 대로 이용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기보다는 어설픈 유머로 포장하고 청춘의 사랑싸움으로 치부한다. 영화의 초점 자체가 개츠비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는 감독의 행보와 분리시켜 생각하기 어렵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매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눈을 뗄 수 없는 확실한 매력을 뽐내기도 한다. 우선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분위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영화의 주제를 부분적으로나마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데 성공한다.

우디 앨런의 경우 유달리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많이 제작해왔다. 뉴욕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재즈 음악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것도 아련하고 약간의 긴장감이 넘치는 분위기를 잘 살려주는데, 특히 티모시 샬라메가 직접 부른 "Everything happens to me"가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는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작중 개츠비는 어머니가 숨겨왔던 진실로 인해 본인도 모르게 고통받아 왔던 인물인데, 티모시 샬라메의 퍼포먼스는 개츠비의 캐릭터를 적절히 살려주면서 극의 중심을 확실히 잡아준다.

지난 2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프랑스 최고 권위의 영화제인 세자르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자 젠더와 인권 관련 문제가 있는 감독과 그의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가 논쟁의 대상이 된 바 있다. 이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과거와 달리 현재 그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으며 그들의 영화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디 앨런도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그가 만들어 온 뛰어난 필모그래피와 별개로, 지금까지의 상황만 보면 그 역시 사라지게 될 감독 중 한 명이 될 것 같다. 다만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그 이유가 단지 영화 외적인 논란과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여성 차별적인 시각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디 앨런은 이제 진부하고 치밀하지 않은 스토리와 자기 복제로 인해 과거의 영광을 잃을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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