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걸스의 정규 3집 < REBOOT >

원더걸스의 정규 3집 < REBOOT > ⓒ JYP 엔터테인먼트

 
지난 수년간 대중 문화의 키워드를 읽는 데에 있어 '뉴트로'라는 콩글리쉬 신조어를 빼놓을 수 있을까('새롭다(New)'와 '복고(Retro)'의 합성어). 대중은 멀지 않은 과거를 다시 현재로 소환한 후, 다시 '힙하고 새로운 것'으로서 소비했다. 20대 음악팬들은 타케우치 마리야의 시티팝을 들으면서, 겪어본 적도 없는 80년대 버블 경제 시절의 일본을 꿈꿨다. 김현철과 빛과 소금의 지난 명곡들이 소비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문화 가운데에서 읽힐 수 있는 일이다.

인디 밴드 아도이는 80년대를 연상하게 하는 신스팝을 불렀다. 잔나비는 예스러운 옷을 입고 손편지 같은 노래를 불렀다. 팝 음악계도 마찬가지다. 신스웨이브를 내세운 두아 리파(Dua Lipa)의 < FUTURE NOSTALGIA >, 위켄드의 < After Hours >, 레이디 가가의 'Stupid Love' 등은 과거지향적인 면을 많이 담고 있었다.
 
케이팝 계에서도 뉴트로라는 키워드로 읽을 수 있는 앨범이 있다. '뉴트로'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 전인 2015년에 발표되었던 원더걸스의 < REBOOT >다. 원더걸스가 3년 만에 발표했던 정규 앨범이다. 국내 최정상에 오른 이후, 야심차게 미국으로 진출했지만 실패로 끝났고, 잦은 멤버 교체를 겪으면서 팀의 중심도 흔들렸다.

< REBOOT >는 당시 리더 선예와 소희가 탈퇴하고, 선미가 재합류한 가운데 발표되었다. 티져 영상 속에서 네 명의 멤버는 기타와 드럼, 베이스를 쥐고 있었다.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웠던 '밴드'의 모습이었다(물론 앨범 녹음에서 연주자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한계는 있겠으나).
 
 
 원더걸스의 정규 3집 < REBOOT >

원더걸스의 정규 3집 < REBOOT > ⓒ JYP 엔터테인먼트

 

모두가 함께 만든 레트로

데뷔 이후 원더걸스는 '레트로' 콘셉트를 통해 성공 신화를 만들어 왔다. 원더걸스는 이 앨범에서도 레트로의 기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전 앨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것이 단순히 콘셉트에만 머물지 않고, 음악 전반에 고루 녹아 있다는 것이다. 이 앨범은 노골적으로 과거를 소환한다. 'Freestyle'(8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부흥했던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한 갈래)을 표방한 타이틀곡 'I Feel You'가 대표적이다. 산뜻한 신시사이저 사운드, 뇌쇄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멤버들의 목소리가 몰입감을 높인다.

앨범의 문을 여는 'Baby Don't Play', 팔로알토의 묵직한 랩이 긴장감을 선사하는 'Candle' 등의 트랙은 모두 뉴웨이브의 영향권에 있었다. 서정적인 선율의 신스팝 'Rewind'도 추천할 만한 트랙이다. 수려한 편곡이 매력적인 '사랑이 떠나려 할 때(선미 작곡)'는 시티팝 팬들의 플레이 리스트에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다.
 
나는 이 앨범이 예은의 재능에 상당히 기댈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4년, '핫펠트'라는 이름으로 훌륭한 솔로 앨범을 만들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이 앨범에서 예은은 'One Black Night'처럼 드라마틱한 노래를 만들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 앨범은 음악적 비중이 어느 한 명 중심으로 쏠리지 않았다. 네 명의 멤버 전원이 작사, 작곡의 재능을 뽐냈다. 한편 프로듀서 박진영은 타이틀곡 'I Feel You'를 제외한 어떤 수록곡의 작업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멤버들이 작업한 곡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은 단연 유빈이 작곡한 'John Doe'다. 리사 리사 앤 컬트 잼을 연상시키는 펑키한 사운드 위에 매력적인 멜로디와 브라스 섹션이 조화롭게 놓인 곡이다. 예상을 깨는 재치있는 구성으로 귀를 즐겁게 한다. 아이돌 음악에 대한 편견이 있다면 꼭 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유빈과 혜림은 직접 랩 가사를 쓰면서 (라임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기존의 JYP식 랩에서 탈피했다. 나름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라인도 보여 주었다. 특히 원더걸스의 하락세를 비웃는 헤이터들을 향해 '고인 됐다 말해 절이라도 해"라고 응수하는 'Back'의 가사는 꽤 통렬하다.
 
이 앨범이 발표된 지도 어느새 5년이 되었다. 좋은 아이돌 음악은 그 이후로도 많이 등장했다. 해외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는 작품도 심심찮게 나타났다. 그러나, 여전히 < REBOOT >만큼 멤버 전원이 주도적인 역할로 참여했던 걸그룹 앨범은 드물다.  'Tell Me'로 후크송 시대의 문을 열었던 이들은,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주체적인 변화를 모색했고, 그 결과물은 성공적이었다.

< REBOOT >가 열어젖힌 원더걸스의 2막은 이듬해 'Why So Lonely(2016)'의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더걸스의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박수칠 때 떠난' 이들의 모습이 그리워질 때마다, 나는 < REBOOT >를 듣게 된다. 언젠가 이들이 모여 'I Feel You'를 다시 연주할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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