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훈의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 < MY PERSONAS >

신승훈의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 < MY PERSONAS > ⓒ 도로시컴퍼니


나는 한동안 발라드 가요에 지쳐 있었다. 발라드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선율로 사랑을 그리는 것을 싫어할 이유는 없다. 정확히 말하면, '타성에 젖은' 특정 발라드 가요에 대한 피로함이라고 보아야겠다. 특히 음원 차트만을 노리고 있는 듯한, 그런 발라드에 지쳐 있었다.

자신의 음역이 얼마나 높게 올라갈 수 있는지를 과시하는 목소리, 무성의로 일관하는 편곡, '네가 보고 싶어서 술을 마시고 담배도 피웠어...'로 대표되는 형식적인 게으름이 싫었다. 사랑처럼 좋은 소재를 이렇게 다룬다는 것이 싫었다.
 
이때 나의 귀에 들어온 앨범이 있었다. 지난 8일 발표된 신승훈의 신보 < My Personas >다. 이 앨범은 신승훈의 데뷔 30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발표된 스페셜 앨범이다. 1990년 11월 1일, 그러니까 신승훈은 특유의 깨끗한 목소리와 담백한 감성, 그리고 탁월한 작곡 능력을 겸비한 뮤지션이었다.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보이지 않는 사랑', '그 후로 오랫동안',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등 수많은 히트곡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누가 뭐래도, 그는 1990년대의 패자(覇者) 중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도 'I Believe'이라는 불멸의 히트곡이 탄생하지 않았는가.
 
대중성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에 집중했던 9집 < Ninth Reply > 이후, 신승훈의 노래는 과거와 같은 흥행 신화를 기록하지 못했다. 이것은 세월 앞에서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신승훈의 음악 여정은 과거에 머물지 않았다. 단순히 발라드 가수의 앨범에 댄스곡 한 두 곡을 곁들이는 수준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 모던록 스타일을 받아들인 '라디오를 켜봐요'를 듣고 그 산뜻함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과정이었다. 특히 엠넷 <더 콜>은 그가 지금의 세대와도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기회였다. 카이고(Kygo) 같은 트로피컬 하우스 스타일을 받아들인 'Fly Away'는 가장 좋은 사례였다.
 
30년을 회고하는 방법 
 
 가수 신승훈

가수 신승훈 ⓒ 도로시컴퍼니


신승훈의 새 앨범 < My Personas >는 가장 신승훈다운 음악들로 그 문을 연다. 타이틀곡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와 '그러자 우리'는 피아노와 스트링 사운드 등, 전통적인 발라드의 문법을 따르고 있는 곡들이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헤어짐 이후의 시간을 노래한다. 일상적인 언어를 활용하면서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심현보의 가사, 그리고 신승훈 특유의 '절제의 미학'이 빛나는 창법이 있다. 듣기 편안한 발라드가 이어진다.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는 것
평소처럼 화분에 물을 주고 읽던 책을 마저 읽는 것
그래야 버틸 것 같아서 흐트러지면 무너질 테니까"
-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 중


신승훈은 어렵지 않게 앨범의 분위기를 전환한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늦어도 11월에는'은 피아노 한 대만으로 구성된 차분한 재즈 넘버다. 그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재즈 가수에 대한 꿈을 앨범에 녹여냈던 바 있다. 발매되었을 때 크게 빛을 보지 못했던 가수 원우의 'Walking In The Rain(2007)'을 커버했다. 브리티시 록 스타일을 추구했던 원곡의 편곡을 거의 바꾸지 않고, '좋은 음악'을 알리고 싶다는 의도에 충실했다.

노래하는 신승훈, 그가 전하는 위로
 
2019 백상예술대상에서 <눈이 부시게>로 대상을 수상한 배우 김혜자는 소감을 통해 "우리는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신승훈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내가 나에게' 역시 위로라는 키워드로 읽을 수 있는 곡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하는 힐링 서적과 달리, 신승훈은 가끔은 손을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오십 줄을 한참 넘긴 그는, 다른 이들의 삶의 무게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그저 차분하게 다독이고자 한다.
 
"애써 버티다가 울고 싶을 땐 그냥 용감하게 손을 놓아버려
다 버린 뒤에야 시작할 수 있잖아"
- '내가 나에게' 중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이 앨범에는 신승훈의 과거와 오늘이 모여 있다. 신승훈의 이름 앞에 붙어 있는 '발라드의 황제'는 물론 부정할 수 없는 왕관이다. 그러나 뮤지션 신승훈의 커리어를 단순히 '발라드의 황제'로만 요약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차라리, 그를 '노래하는 신승훈'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 좋은 음악이다. 더 많은 사람이 < My Personas >에서 '신승훈의 오늘'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의 오늘은 젊은 감각의 창작자요, 관록을 증명하는 베테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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