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선하든 악하든 드라마 속 캐릭터가 매력있어 보이려면 개연성과 입체성을 지녀야 한다. '저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겠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개연성, 그 인물만이 지니는 배경과 개성을 바탕으로 드러나는 입체성, 그 두 가지가 만나 감정이입을 유발하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한 캐릭터들이 공감을 이끌어내고 이야깃거리를 풍성하게 이끌어간다.
 
현재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JTBC 금토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어떠한가. 등장인물은 많지만 그런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불륜을 소재로 한 여타의 다른 드라마였다면,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 지선우(김희애 분)는 그 상황 자체만으로도 가장 강력한 감정이입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회가 거듭될수록 그녀에게로 향하던 동정심은 점차 근거를 잃어가는 느낌이다.
 
자신이 남편의 외도로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왔으면서도 아들을 두둔하며 오히려 잘못을 며느리에게 전가하는 시어머니에게 지선우는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다. "돌아가시면 안돼요, 어머니. 태오씨가 어떻게 망하는지 똑똑히 지켜봐야죠. 여기 가만히 누워서." 살 날 얼마 안 남은 노인네가 불쌍히 자란 아들이 애잔해 그런 거라고 넘어가기에는 자신의 고통이 너무 컸던 탓일까. 그렇다해도 죽을 날만 기다리며 누워있는 시어머니에게 한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섬뜩하다.
 
아들의 양육권을 얻어내고자 자신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몰아가려 한 이태오(박해준 분)에게 택한 방법은 더욱 독하기 그지없다. 엄마가 이상하다며 울부짖는 아들과 차 안에서 아슬아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자신과 함께 살자고 강요하며 아들을 위태로운 순간까지 몰아간다. 집에 돌아온 뒤에는 스스로 아들을 죽였음을 암시하는 듯한 말로 이태오를 극단까지 자극해 자신에게 상해를 입히도록 유도해서 결국엔 양육권 뿐 아니라 접근금지명령까지 받아낸다. 드라마의 장르가 스릴러로 바뀌는 건가 싶었던 순간이다. 2년간 자신을 철저히 속이고도 여전히 기만으로 일관하는 남편에 대한 분노에 십분 공감한다 해도 과하단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남편 이태오라는 캐릭터는 '분노 유발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능력은 없지만 다정한 남편이자 친구같은 아빠로서 행복한 가족구성원의 명분을 유지해온 이태오는 외도 사실이 발각되자 이 세상 모든 찌질한 외도남들의 최고봉 자리를 점하며 매회 시청자들의 분노를 촉발시킨다. 지선우는 비참함을 억누르고 이태오에게 고백과 사과의 기회를 내민다. 그가 진심으로 후회하며 울어준다면 '한꺼번에 부모를 모두 잃은 불쌍한 계집애'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자신이 달려온 세월, 그렇게 이룬 사회적 지위와 번듯한 가정 그 둘을 모두 지킬 수 있을 터였다.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그러나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며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지 않냐"고 항변하는 이태오에게 애당초 죄책감 따위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 부인인 "지선우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는데 그렇다고 "창작자로서의 영감을 주는 애틋한" 내연녀 여다경(한소희 분)을 놓칠 수도 없다. 그는 이전처럼 두 사람 모두를 양손에 쥐고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될까 불안할 뿐이다. 아버지 없이 자랐다는 서러움과 '불쌍한 내 아들' 신드롬에 갇혀 그 서러움을 공고히 뒷받침해주었던 어머니에 힘입어 채 어른이 되지 못한 이태오는 자신의 아들 또한 아빠 없는 유년기를 보내게 될까 두려울 뿐이다.
 
또 한 명의 주연급 인물인 내연녀 여다경(한소희 분) 역시 기대를 걸 만한 인물은 못된다. 20대 중반인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그려지는 바가 거의 없다. 그저 '엄청난 재력가 부모를 둔 젊고 예쁜 여자' 정도가 그녀를 묘사할 수 있는 정보의 전부다. 젊고 예쁘고 돈 많은 여자가 능력 없고 나이 많은 유부남을 사랑한다. 게다가 그 사랑은 자신의 배경이 되어주는 아버지를 등진 채 임신을 받아들이고 그 남자를 택할 수 있을 만큼이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사랑에 목숨 거는 타입이 요즘 세상이라고 없으란 법 있나.
 
문제는 거기에 있다기보다, 여다경이 보이는 모습들이 그 누구라 하더라도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사실에 있다. 유부남을 사랑하고, 그 남자가 부인과 헤어져 자신과 새로운 가정을 꾸리길 바라고, 그 부인에게 적대심을 품고, 임신 사실에 괴로워하고… 내연녀라면 누구나 보일 법한 반응에 '여다경이라서' 더해지는 디테일은 없다는 말이다. 이는 결국 여다경이라는 인물이 입체적인 매력을 지니지 못한 평면적 캐릭터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그 외에 이 드라마의 대다수 등장인물들 역시 평면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들은 오직 지선우와 이태오의 불화라는 한 가지 갈등에 불을 붙이기 위해 존재하는 들러리들로서 기능한다. 친구들은 이태오의 불륜을 오래전부터 은폐해왔음은 물론 두 사람과 함께 여행까지 다녀옴으로써 적극적인 공범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친구라 믿었던 이들이 자신만 철저히 배제하고 속여왔다는 배신감은 지선우의 복수심에 불을 당긴다. 한편, 손제혁(김영민 분)은 지선우와 이태오의 불화가 가시화되기 시작하자 이태오의 회사 법인자금 및 개인계좌 내역 제공을 미끼로 지선우를 향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민현서는 데이트폭력에서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지선우 대신 이태오를 미행함으로써 기꺼이 이용 당하기를 자처한다.
 
'불륜'을 둘러싼 갈등에 일조하지 못한다면 이 드라마에서 그들의 존재가치는 사라지고 만다. 공감을 얻는 캐릭터가 되지 못하는 것은 그들만의 전사(前事) 부족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다. 전사를 바탕으로 생동감을 부여받은 인물들이 각자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얽키고 설키며 진행되는 드라마는, 하나의 굵은 가지에서 여러 개의 잔가지가 뻗어나와 풍성해지는 나무처럼 보다 풍성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주게 마련이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JTBC의 전작 <이태원 클라쓰>는 그런 점에서 매우 성공적인 드라마였다. 선과 악이 어느 작품보다 뚜렷했고 시청자들은 누구를 응원하게 될는지 초반부터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선악구도를 취하고 있다고 해서 스토리라인까지 단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각 캐릭터들은 드라마의 굵은 줄기를 향해 긴밀히 엮여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승부욕이 강했고 선생님으로부터 소시오패스 성향이 보인다는 말까지 들었던 천재소녀, 하지만 사랑을 만나 인간애를 알아가고 그 사랑 앞에 누구보다 헌신적인 조이서. 지독한 가난으로 온갖 천대를 받으며 가족까지 잃어야했던, 그래서 온 생애를 바쳐 일구어온 '장가'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장대희 회장. 고아원에서 후원을 받으며 자라나 스스로의 힘으로 안락한 삶을 일구고자 하는 열망이 삶의 원동력인, 사랑만을 좇기에는 지난 날의 삶이 너무나 지난했던 오수아. 아버지에 의해 감정 없는 후계자로 사육되며 마음 한켠에 죄책감을 묻고 사는 장근원. 개성을 지니고 입체감을 뽐내는 등장인물들은 이외에도 더 열거할 수 있다.
 
권선징악의 고전적 구조를 취하고 있었고 선이 흥하는 과정이 다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나, 그것을 충분히 상쇄할 만큼의 몰입도를 가지고 시청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각자의 서사를 바탕으로 개연성을 지닌 입체적 인물들이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부의 세계> 등장인물들에게 그러한 면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는 건, 숨 쉴 틈 없이 사건들을 긴밀히 엮어가는 작가와 연출자의 힘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또다시 어떤 갈등과 사건들이 전개될지 궁금증을 참을 수 없는 건, 분명 이 드라마가 가진 전개의 힘이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단순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외에, 인물들에게 빠져들어 함께 응원하고 비난하게도 하는 힘 또한 더해지기를 기대해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23년째 손 맞잡고 함께 걷는 한 남자, 그리고 꽃같고 별같은 세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