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JTBC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해서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일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일 때문에 상처받는 자가 자신의 욕망을 사랑이라고 믿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들이라는 데 있다. 남자가 진심이건 아니건 관계 없다.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일로 두 여자가 겪을 일은, 정작 공격할 상대를 오인함으로 파생되는 '여적여'의 피 말리는 자기 분열이다. 그렇기에 이 상황을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사랑이라 말하며 그 뒤에 숨는 남자의 나르시시즘은 용서받을 수 없다. 태오 또한 마찬가지다.
 
"이혼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던 선우(김희애 분)는 태오(박해준 분)와의 단절을 결심한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태오가 자신을 속이고 주택 담보 대출과 아들 준영(전진서 분)의 보험 약관 대출까지 받은 사실은 선우의 복수심에 보다 화력 센 연료를 제공한다. 태오가 그저 다른 여자와 바람만 난 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뒤흔들고 있음을 감지한 선우. 그는 이 붕괴의 난관에서 자신과 아들을 어떻게 구해 낼 것인가.
 
선우를 둘러싼 모두가 벌이던 '가스 라이팅'은 차츰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태오와 선우의 부부생활에 이상을 감지한 제혁(김영민 분)은 적나라하게 욕망을 드러내며 선우에게 접근하고, 태오의 외도를 알고 눈 감고 있던 예림(박선영 분)은 다경(한소희 분)을 압박한다. 그런데 기실 예림과 제혁 커플의 관계 또한 위기에 처해있긴 마찬가지다. 제혁 또한 상습적인 불륜을 저지르고, 미션이라도 수행하듯 가정을 수호하려는 예림은 제혁의 휴대폰 위치 추적까지 벌이지만 번번이 배신감과 절망감에 처절하다. 예림이 이토록 가족을 사수하려는 건 대체 무엇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일까.
 
선우와 태오의 이상 관계를 감지한 제혁은 본격적으로 욕망의 질주를 시작한다. "본능은 남자한테만 있는 게 아니"라는 선우가 제혁의 유혹에 기꺼이 응하는 장면을 고작 맞바람 정도로 단정하기엔 성급하다. 배신자 태오만 도려내 흠결 없는 이혼을 완성하려는 선우가 맞바람이라는 허수를 둘 리 없기 때문이다. 제혁에게 태오의 법인 계좌 내역과 개인 계좌 내역을 하나도 빠짐없이 넘기라는 서슬 퍼런 협박으로 선우의 의도는 선명히 드러난다. 이 장면에서 드라마를 같이 보던 내 남편은 "저 여자 무섭네"라고 했지만, 나는 반박했다. 정작 공포스러운 자는, 기만으로 모든 비행을 은폐하고 가족을 지옥에 동행시키려는 저 악당 태오이지 않은가.

가족이란 결국 이익공동체라는 씁쓸한 현실
 
 JTBC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JTBC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지난 3, 4일 방송된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불륜 남편 태오에 대한 선우의 응징기를 큰 축으로 가져감과 동시에, 이성애 부부 관계의 실체란 무엇인가 또한 집요히 좇고 있다. '쇼윈도 부부' 혹은 '섹스리스 부부'가 어떤 이유로 그 명맥을 유구하게 잇고 있는지를 드라마는 가감 없이 내보이고 있다. 공고한 이성애 가족주의라는 게 들여다보니 실상, 허당이지 않은가라는 메시지를 발신하면서. 애초 결혼에 무슨 사랑 따위가 연루되어 있느냐고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다 문득, "내 집, 내 아들, 내 인생" 어느 것 하나 잃지 않은 채, 남편 "태오만 도려내겠다"는 선우의 이글거리는 분노는 순결한 것일까 하는 의문에 이른다. 선우는 결혼을 단지 사랑으로만 구성해왔던 것일까?
 
성병에 감염되어 선우의 진료를 받게 된 고산 지역 유지 최회장(최범호 분)의 부인(서이숙 분). 그에게 감염의 원인에 대해 "남편이 다른 여자와 벌인 무분별한 성관계의 결과"라고 돌직구를 날리는 선우는 다분히 가학적이다. 하지만 이만한 일로 이혼하지 않겠다는 여성은 "이혼으로 그간 쏟아부은 정성을 허공에 날려버리기 싫"다고 자신의 인생을 항변한다. 남자에게 "섹스는 배설 같은"것이라는 가부장의 오래된 주문을 불러내 마법을 걸어, 남편에게는 면죄부를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포용심을 가장한다. 이 장면은 결혼이라는 제도의 한 축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유지되는가를 적나라하게 전시한다. 결국 가족이란 너와 나의 이익공동체라는 씁쓸한 현실. '도구적 가족주의'로 전락한 배타적 가족주의의 실체를 이제는 더 이상 위선으로조차도 포장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결코 정상이지 않은 자신들의 가족을 '정상가족'이라 명명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정서적 친밀함이라는 가족의 의미는 이미 박제화된 지 오래라고 코웃음을 치는 듯하다.

정상가족에 대한 집착은 고급 요양 병원에 기거하는 선우의 시어머니에게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선우가 태오의 외도를 알고 있으면서 숨겨왔던 시어머니를 추궁하자, 시어머니는 오히려 "니가 숨 쉴 틈만 줬어도 딴 눈 안팔"았다며 선우를 비난한다. 그에게 아들의 외도는 그저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며 "자식 앞 날 생각해서 용서하고 살"라며 훈계까지 마다않는다. 게다 죽어가며 자신의 아들을 며느리에게 부탁하다니, 자식 돌봄이라는 어머니의 역할을 끝끝내 며느리에게 상속시키고야 눈 감겠다는 막다른 모성. 무책임한 결격 어른 남자 태오의 연원이 어머니 포궁 속에서 한가로이 유영하고 있으려는 남자아이의 유약함이었구나.
 
아들을 낳아야 그 아들을 통해서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앞선 세대의 여성에게 아들은 자신의 지위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렇기에 어머니에게 아들을 둠으로써 가부장 남성중심 사회에서 최하층 식민지 계급인 며느리라는 계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죽어서도 아들이 이혼당하는 꼴은 볼 수 없다는 그의 일성은, 남루함을 뒤로하고 지켜온 자신의 '자궁가족'을 고작 며느리 따위에게 무너지게 두진 않겠다는 화석화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유령의 출몰이다. 진저리 처진다. 허면, 어떻게든 아들 준영을 지켜내려는 선우의 의지는 시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그의 아들 태오를 지키려 한 이유와 결코 다른 의미의 수호일까.
 
데이트 폭력범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현서
 
 JTBC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JTBC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아들 준영의 심리를 전달하는 드라마의 의도는 불순하다. 준영은 이미 아버지 태오가 내연녀 다경과 은밀한 관계임을 목격했다. 잠깐 혼란스러워하던 준영은 곧 평정심을 찾는다. 물론 아이에게 부모의 불륜이 이해 가능한 영역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갈등 없이 아빠와 야구 캠프를 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아들이, 엄마에게는 이혼이 싫다고 직설하는 장면은 비상식적이다. 아빠의 불륜엔 눈 감으면서 엄마에게는 당당히 이혼 거부를 거리낌 없이 전달하는 아들의 재현은, 마치 가정의 평화가 엄마라는 일인의 희생으로 구성된다는 무감각한 젠더 부정의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이런 아들을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로 치부하며 양육하는 선우는 과연 태오를 길들인 시어머니와 얼마나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성적 존재가 아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믿고 싶을 뿐이다. 엄마의 몸을 불법촬영해 인터넷에 올리고, 'N번방 사건'으로 여성들을 성착취한 가해자의 상당수가 10대라는 이 무참한 현실은, 아이가 더 이상 무성적 존재가 아니라는 매우 높은 레벨의 경고음을 이미 울리고 있다. 선우가 시어머니의 못난 아들 태오와 다른 아들로 준영을 키워내고 싶다면, 선우 또한 모성을 자연화하는 사회의 공모와 단절해야만 한다. 선우에게도 모성을 재구성할 환골탈태의 자성과 노력이 필요한 시간이다.
 
1, 2회와 마찬가지로 내 관심은 현서에게 향한다. 선우의 도움으로 "지긋지긋한 남친"에게 벗어나 새 출발을 할 수 있을듯 했던 현서,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다. 선우와 현서의 공모를 눈치챈 남친 인규(이학주 분)는, 선우의 병원을 찾아와 하급 인간의 진수를 보이며 아직 현서의 새 출발이 미완임을 알린다. 선우에 대한 고마움으로 "나를 이용하라"는 현서는 어떤 역할로 선우의 응징에 기여하게 될까. 또한 현서와 선우는 '나쁜 남자' 인규의 협박을 어떻게 따돌리고 연대의 행보를 이어가게 될까. '나쁜 남자' 격퇴기에 대한 기대를 이어가며 5, 6화를 본방사수하겠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