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7일 군산월명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현대모비스 KBL 전주 KCC와 서울 SK의 경기. SK 전태풍이 패스할 곳을 찾고 있다

SK 전태풍 ⓒ 연합뉴스


한국농구는 최근 두 명의 레전드가 잇달아 은퇴를 선언했다. '귀화혼혈선수 1세대' 전태풍과 '울산 모비스의 심장' 양동근이다. 프로농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조기 종료된 가운데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마저 잇달아 떠나보내게되어 농구팬들의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전태풍과 양동근은 플레이스타일도 개성도 전혀 다르지만 나란히 한국농구의 한 시대를 이끈 선수들이었다. 같은 포지션에서 최고의 자리를 다투며 팀의 승리와 우승을 놓고 수없이 격돌했던 선의의 경쟁자이기도 했다.

최근의 한국농구는 언제부터인가 '스타'도 '롤모델'도 부족해졌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전태풍과 양동근의 각기 다른 농구인생이 남겨준 메시지는 현재 한국농구에 절실하게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전태풍은 이전부터 한국농구의 현실에 대하여 종종 쓴소리를 해왔다. 미국 농구 명문대학인 조지아 공대 출신의 전태풍은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귀화까지 했지만 한국농구에 적응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한바 있다.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지도자들, 농구를 즐기거나 팬들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성적지상주의에만 연연하는 농구문화, 비효율적인 훈련방식 등이 대표적이다.

전태풍은 한국 선수들의 가장 큰 문제가 '창의성 부족'이라고 지적한바 있다. 1대1 능력이 너무 부족하다보니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고 싶어도 할수가 없다. 자신이 없으니 공을 돌리게 되고,  뛰어난 외국인 선수에게 의존하거나 뒤늦게 시간에 쫓겨서 무리한 슈팅을 남발하게 된다. 1대1을 개인플레이 혹은 혼자하는 농구로 여기고 억제하려는 지도자들-선배들의 분위기도 젊은 선수들의 자유로운 플레이가 위축되는데 한몫을 담당한다. 한국농구 문화 자체가 어릴때부터 '이기는 농구'에만 익숙해져서 기본기를 차근차근 가다듬는 것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팀 훈련시간이 필요이상으로 많은 것도 지적했다. 훈련할 때는 필요한 것만 집중력 있게 해야 하는데, 공연히 훈련시간만 길어질 뿐,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한국 프로농구단의 훈련시간 대부분이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체력과 조직력을 가다듬는데 집중된다. 팀훈련시간을 줄여야 남는 시간에 기술적인 부분을 가다듬거나 선수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을수있는 연구해야 하는데, 팀훈련만으로 이미 선수들의 피로도가 높아지다보니 별도로 개인훈련에 집중할 시간이 부족해진다.

전태풍 본인도 어떤 면에서는 한국농구의 '피해자'라고도 할수 있다. 전태풍이 처음 한국농구에 진출한 2009년 무렵만 해도 전태풍은 앨런 아이버슨이나 제임스 하든처럼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는 공격형 가드에 가까웠다. 하지만 가드의 경기운영과 안정성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한국농구 스타일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전태풍은 자신의 개성을 상당히 희생해야했다. 지도자의 권위를 중시하는 감독들과는 종종 문화차이에 오는 갈등을 빚기도 했다. 전태풍은 훗날에도 이때 자신의 농구스타일을 잃은 것이 후회된다고 여러 차례 고백한 바 있다.

농구는 팀 스포츠이지만 양질의 플레이는 결국 뛰어난 개개인의 능력의 총합이 모아져서 만들어진다. 팬들은 팀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좋은 경기내용과 화려한 스타들의 모습을 보고싶어서 경기장을 찾는다. 외국인 선수가 없던 농구대잔치 시절에는 국내 선수들끼리만 경쟁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스타들이 탄생했고 인기도 높았다. 하지만 프로화 이후 국내 선수들은 능력과 신체조건이 우월한 외국인 선수들에게 에이스 자리를 내주고 조연으로 전락했다. 프로농구 10개구단중 국내 선수가 에이스나 1옵션 역할을 하는 팀은 전무하다. 국내 선수중에서 '스타'나 나올래야 나오기가 어려운 환경이다.

또한 전태풍은 농구선수로서 기술뿐만 아니라 쇼맨십도 뛰어난 선수였다. 전태풍은 뒤늦게 한국어를 배워서 어눌한 발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모든 인터뷰를 한국어로 소화하기 위하여 노력했고 유머감각도 출중했다. 팬들은 코트에서 보여주는 승부욕 못지않게 코트 밖에서는 한없이 친근한 전태풍의 반전매력과 진심으로 팬들과 소통하려는 진정성있는 노력에 더 호감을 보였다.

프로선수라면 운동을 잘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자신의 이미지를 가꾸고 팬들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도 필수다. 오늘날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농구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지만 전태풍만한 개성을 지닌 선수는 여전히 드물다. 귀화혼혈선수 출신인 전태풍이 한국농구에 겪었던 시행착오는 현재 한국농구가 왜 농구대잔치 시절처럼 대형 스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지 이유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전태풍이 귀여운 '반항아'라면 양동근은 한국농구가 배출한 대표적인 '모범생'이라고 할수 있다. 양동근은 프로 데뷔 이래 16년간 상무 시절을 제외하고 오직 울산 현대모비스 한 팀에서만 선수생활을 이어간 원클럽맨이자 현역 최다인 6회의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우승, 정규리그 MVP 4회를 달성한 올타임 넘버원급 선수다.
 
 지난해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 울산 현대모비스의 경기에서 울산 양동근이 드리블하는 모습.

울산 양동근 ⓒ 연합뉴스

 
양동근이 한국농구에 남긴 업적은 독보적인 우승이나 수상경력도 있지만 그가 살아온 농구인생 자체가 주는 '인간미'에 있다. 양동근은 프로 1순위 출신이지만 데뷔 초창기만 해도 이른바 특A급 선수라는 평가는 아니었다. 이상민, 강동희, 김승현 등 뛰어난 패싱력과 화려한 플레이를 자랑하는 정통 포인트가드들이 대세를 이루던 시대의 끝자락에 등장하여 '패스못하는 가드' '모비스에서나 어울리는 선수'라는 저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양동근은 특유의 성실함과 노력을 바탕으로 선수인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는 한국농구가 배출한 역대 어떤 선수들도 도달하지못한 위대한 커리어를 구축한 '노력형 천재'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특히 양동근이 16년간 모비스의 원클럽맨으로 남을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희생과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양동근은 선수인생 내내 그 흔한 사건사고나 사생활과 관련된 구설수가 단 한번도 없었다. 코트 내에서도 심판에 대한 잦은 항의나 상대선수와 충돌, 플라핑같은 매너 문제로 지적받지도 않았다. 에이스급 선수로서는 드물게 팀내에 경쟁자가 될수있는 후배들이 들어왔을때는 개인기록과 팀내 주도권을 기꺼이 양보하기도 했다.

스타 선수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있기 마련이고, 기록과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양동근은 항상 자신보다 팀을, 동료를, 주변을 먼저 생각할줄아는 열린 자세를 초심으로 유지했다. 양동근이 역대 농구선수중 최고의 재능을 지닌 선수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수많은 지도자들, 후배 농구선수들이 양동근을 '이상적인 농구선수의 귀감'이라고 찬사를 보낸 이유다.

한국농구에 사실 양동근보다 위대한 재능을 지녔다고 할만한 선수는 많았다. 더 화려한 기록을 남기거나 더 많은 인기를 누린 선수들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농구인으로서 단지 성공(Successful)했다는 것을 넘어 인간적으로도 존경받을만한(Respectful) 인물은 얼마나 되는지 돌아봐야할 필요가 있다. 허재나 서장훈, 강동희, 이상민, 신동파, 이충희 같이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들도 저마다 농구인생에 남긴 업적만큼이나 음주운전, 승부조작, 감독 경력 논란 등 크고작은 얼룩도 있었다. 양동근처럼 선수인생내내 농구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이정도로 흠결이 드물만큼 완벽한 농구인생을 살아온 인물은 역대를 돌아봐도 쉽게 찾기 힘들다.

스포츠 세계에는 화려한 스타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을 뛰어넘는 사회적인 롤모델도 필요하다. 차범근이나 박지성, 박찬호, 김연아같은 인물들이 종목을 넘어 은퇴한지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은, 그들이 살아온 인생이력 자체가 성적을 넘어 팬들에게 주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헬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NBA 농구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는 전세계적인 추모를 받았다. 그를 우상으로 삼았던 수많은  농구스타들은 하나같이 '맘바 멘탈리티'(코비의 별명)를 언급하며 그가 농구계에 남긴 유산을 계승하겠다는 후계자를 자청하기도 했다. 이처럼 위대한 레전드들이 남긴 족적은, 시대를 뛰어넘어 다음 세대에게는 본받고싶고 따라잡고 싶은 목표가 되어야 한다.

한국 농구는 야구나 축구처럼 비록 세계무대에서도 활약을 인정받은 국제적인 스타가 드물다. 하지만 더 가슴아픈 것은 후배들에게 세월이 흘러서도 영감을 줄만한 이상적인 롤모델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농구에서는 슈퍼스타에 가까운 커리어를 쌓았으면서도 끝까지 겸손하고 모범적이었던 양동근의 농구인생이 주는 감동이 더욱 희소성있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태풍과 양동근은 한국농구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자 혹은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다. 두 선수 모두 각자 개성을 다르지만 한국농구에 다시 나오기 힘든 선수들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한국농구에서 스타 혹은 롤모델을 꿈꾸는 선수들이라면 전태풍과 양동근이 걸어온 농구인생을 꼭 참고로 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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