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배우자의 휴대폰을 뒤지는 장면은 익숙한 추측을 불러온다. 배우자의 외도를 예상하고 심증을 물증화하는 하는 장면이라는 추측 말이다. JTBC 새 금토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선우(김희애)가 남편 태오(박해준)의 휴대폰을 뒤지는 장면에서, 이 드라마의 서사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면 얽히고설킨 '막장' 불륜 드라마인가?
 
'막장'이 아니라고 전면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하지만, 드라마는 스릴러 형식을 통해 긴장감을 일으킨다. 이 드라마의 흥미로운 지점은, 남편이 아닌 주변인들의 '가스라이팅'이다. 마치 모두 힘을 합쳐 선우의 의심을 과민한 것으로 몰아가는 묘한 정황에 있다. 선우는 공공의 적이었던 것일까? 남편을 믿고 싶어 하는, 아니 남편의 외도를 부정하고 싶어 하는 착잡한 심리, 그럼에도 남편을 쫓다 찾아지는 의심의 조각들이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면서 점차 확증에 이른다. 선우는 마치 범인의 범행 증거를 찾는 형사와 같은 촉으로 추리를 벌이며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으로 서사를 조여 간다. 불륜 막장인가 싶어 채널을 돌리려다 멈춘 이유다.
 
선우는 사십 대 초반의 남부러울 것 없는 여자다. 사십 고개를 넘은 나이란 보통의 여성에겐, 자원의 고갈과 함께 찾아드는 힘든 생애 주기가 시작되는 시점이지만 선우는 그렇지 않다. 유리천장을 뚫은 여성은 남성과 다를 바 없는 특권을 누리게 마련이니. 그러나 드라마는 이런 남부러울 것 없는 여자가 남편의 외도로 분열되는 심리를 본격적으로 노출하는데, 이는 이런 잘난 여자도 남편은 다루기 힘든 영역이라고 우기고 싶은 걸까? '폴리 아모리'(다자간 비독점적 연애)를 승인한 관계가 아닌 한, 부부에게 있어 배우자의 외도가 옆집 개가 발정난 일이 될 수는 없을 터다. 외도한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거짓말은 용서할 수 없다는 잘난 여자 선우의 남편 불륜 응징기는 어떻게 펼쳐질까. 남편의 외도에 배신감을 느끼는 선우의 심리는 아직 추궁할 만하다. 그가 진정 분노하는 것은 배신당한 사랑일까, 아니면 이로 인해 망가질 위기에 처한 완벽한 부부의 상일까.
 
또 <부부의 세계> 속 부부의 모습은 놀랍도록 젠더 편향적이다. 선우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엄마이자 아내이지만, 놀랍게도 아들과 남편을 살뜰히 챙긴다. 아침 식사를 정갈히 내어 먹이고 아들의 잠자리를 돌보며, 무엇보다 아들과 남편의 나무랄 데 없는 '정서적 지지자'다. 드라마의 이런 설정은 시대착오적인 것일까, 상상력의 부재일까? 병원의 부원장까지 해내며 커리어를 쌓은 여성도 집에 들어서는 순간 '집안의 천사'로 귀의한다는 젠더 고착화를 고민 없이 재현하니 말이다.
 
커리어 우먼은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느냐, 물론 아닐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커리어를 쌓으면서도 저토록 가정에 헌신한다는 규범적 여성성을 드라마가 무람없이 재현하는 지점이 문제적이라는 것이다. 저 정도 지위에 있는 여성도, 그저 가사 노동에만 전념하는 그림자 노동 여성도, 규범적 여성성을 선우처럼 완벽히 수행하지는 않는다. 현실은 그렇게 할 여력이 없다. 드라마는 그게 어떤 계급에 처한 여성이건, 여성을 '집안의 천사'로 자연화하는 재현에 문제의식을 가지기 바란다.
 
이 드라마가 막장성을 아슬아슬 노출하는 순간은 '여적여' 서사를 내비치려는 시도에 있다. 선우는 남편의 불륜녀가 누구인지를 알아챈다. 그 불륜녀가 당당히 선우가 일하는 병원으로 찾아와 진료를 받는 순간, 그 팽팽한 적의의 밀당은 유구한 '여적여' 주문을 불러내려한다. 하지만 여기서 여성은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 그로테스크한 상황(방귀 뀌어 냄새를 피운 자는 따로 있는데 냄새의 근원이 서로이라도 한 것처럼 노려보며 적대시하는)을 연출하도록 만든 자는 여성들이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이 드라마를 '여적여'의 소모적인 싸움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이 시대의 치정은 적어도, 여성이 여성을 향해 겨누던 칼날의 방향을, 이런 고약한 상황을 무책임하게 파생시킨 당사자에게로 향하도록 교정해야 한다. 선우가 남편의 가슴에 비수를 겨눈 것처럼. 비록 상상이었지만.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분명 '막장' 전개를 암시하고 있는 데도 <부부의 세계>에 채널을 고정하게 한 더 큰 이유는 현서(심은우)에 있었다. 그는 계급으로도 나이로도, 선우와 어울리기 힘든 인물이다. 현서는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한다. 부모의 배경이나 학력 등 문화적 자본이 전무한 젊은 여성에게 자본은 몸 밖에 없다. 그렇게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남친'에게 또 부서져라 맞는다. 그는 '남친'에게 폭행당하는 현장에서 선우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선우는 외면한다. 그런 선우는 왜 현서를 찾게 된 걸까. 기름과 물처럼 좀처럼 섞이지 않는 둘의 계급성은 어떤 지점을 경유해 만나지게 될까.
   
현서를 찾아 남편의 불륜 현장을 포착하기를 부탁하는 선우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선우의 말처럼, 남성에 의해 침탈당하는 여성의 삶이란 본질적으로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일까. 선우는 수치심을 뒤로하고 현서는 낯선 부탁의 위험함을 뒤로하고 거래를 시작한다. 선우 남편의 불륜 현장을 마치 중계하듯 알리는 과정에서 둘은, 어느덧 동질감이라는 묘한 감정 선에 놓인다. 그렇다면 "별로 다르지 않"음을 절감하게 된 둘의 동질감은 연대의 서사로 나아갈까.
 
현서를 찾아간 선우는 다시 한번 폭행의 현장을 맞닥뜨린다. '남친'에게 혹독하게 얻어맞고 있는 현서,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현서의 피해에 분노한 선우는 위기의 현장에서 현서를 구해 내지만, 정작 현서는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을 내보인다. 말도 안 되는 폭력을 당하고도 견디는 이유가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이 '나쁜 남자'를 받아줄 사람도, 제대로 된 사람으로 만들 사람도, 오직 자기라는 '구원자 타이틀'을 신념화한 채.
 
뭐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며, 고작 자기를 사랑하는 여성에게 폭행으로 분노를 표출할 때에만 우월함을 느끼는 이 저열한 '나쁜 남자'를, 현서는 왜 이토록 처절한 인내로 구제하려는 것일까. '나쁜 남자'가 제대로 바뀌면 '좋은 남자'가 된다는 믿음은 어떻게 그녀를 집어삼킨 걸까. 해서, 선우가 현서를 위기에서 건져 올린 행위가 단순히 동정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왜 아직도 여성의 삶이, 행불행이, 늙건 젊건 간에, 남성에 의해 결정되도록 두는가라는 질문을 집요히 좇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기에 처한 서로의 처지를 알아챈 촉수는 더 깊게 서로를 향해 더듬이를 뻗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둘의 묘한 관계가 급박한 위기의 파고를 견디게 할 구명조끼가 될 것을 바란다. 이 기대를 안고, <부부의 세계>를 본방 사수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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